기록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본격적으로 핸드위빙 공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즐겁고 재밌는 수업을 들으니 삶의 활기가 도는 것 같았고 일주일에 한 번 수업 가는 날이 기다려졌다. 그러나 공방 창업 목적으로 창업반을 수강하고 있지만 내가 정말 이걸 배워서 먹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생계 걱정을 미뤄두고 취업 준비 시기에 너무 재미만 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공방을 창업한 이들은 이런 현실적인 고민 앞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답을 얻기 위해선 직접 물어보는 수 밖에 없었다. 정규 수업 외에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 내가 수업을 듣고 있는 아솜# 서진주 작가님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지만 ‘밥벌이가 되는가?’에 대한 답은 아직 내리지 못했다. 선생님께 매주 수업을 들으면서도 이 문제 때문에 항상 불안했다.
밥벌이 문제는 나도 항상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다. “이걸로 진짜 먹고 살 수 있어?”하고. 이 문제는 공방을 오픈하고 나서도 계속 하게 되는 평생 숙제 같다. 솔직히 공방 운영만으로는 쉽지 않다. 어떤 직업이든 돈은 본인이 발로 뛰는 만큼 버는 것 같다.
-예전에 위빙 외에도 다양한 공예를 하셨다고 들었다. 그 많은 공예 중 위빙에 정착하게 된 이유가 있나?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위빙 하시는 걸 보고 자랐다. 공방까지 여실 계획이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취미로만 지속하셨다. 그래서 여려 공예 분야 중 위빙이 나에겐 가장 익숙했다. 또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가 계속 있었는데 실로 그림을 그리면 독특하고 재밌을 것 같았다. 위빙 실도 엄마가 위빙하던 시절보다 종류가 훨씬 다양해지기도 했고, 캔버스에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너무 많고 다들 쟁쟁하니까.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가 위빙 작업으로 실현된 것이 흥미롭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흰 도화지만 보면 머리가 하얘지고 울렁증이 생겼다. 그런데 위빙 할 때는 이미지를 어떤 식으로 작업하면 되겠다는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 천을 짜는 작업이다 보니 캔버스보다 표현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은 것 같고 그래서 지금까지 질리지 않고 하고 있다. 주로 여행 다니며 찍은 사진이나 풍경을 표현하는 위빙을 하고 있다.
아솜샵 창업반을 수강하며 직접 만든 벽장식
-본인이 잘 하고 좋아하는 위빙을 통해 수익 활동을 하고 계셔서 여러 가지 궁금한 게 많다. 현재 온라인클래스와 중학교 방과 후 수업, 개인 공방 정규 수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개인 작업할 때와 가르치는 일을 하는 건 완전히 다른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은데, 공예 클래스는 어떻게 운영해왔나.
처음엔 막막했지만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겼다. 예전에는 A to Z를 다 가르치다보니 한 수업 당 4~5시간이 걸렸다. 그러면 나와 고객 모두 진이 빠질 수밖에 없다. 나중에는 경사실 걸기, 실 뒷정리 등 귀찮은 건 내가 하고 고객은 재미만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
-방과후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공예 클래스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나.
개개인 맞춤 수업이 힘들다는 단점이 있지만 영상으로 두고두고 보며 익힐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생각보다 학생들이 잘 따라와준다. 물론 아이들을 집중시키는 일은 너무 어렵지만.
-방과 후 수업이나 문화센터 출강은 경쟁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합격(?)하셨나. 자격증 없이도 지원 가능한가?
지금 수업을 하는 학교는 담당 선생님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나는 자격증도 없고, 경쟁률이 그렇게 센지 몰랐다. 백화점이나 문화센터는 강사를 채용하는 기준이 있다. 사업자등록을 한 지 2년 이상 되어야하고, 그동안 활발히 활동했다는 증빙 서류도 갖춰져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출강보다 개인 공방에서 수업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체력적으로나 금액으로나 후자가 더 좋다. 일단 외부로 출장을 갈 때마다 갖가지 재료를 다 챙겨서 가야하는데 공방에 있는 모든 실을 가져갈 수 없다보니 고객이 고를 수 있는 실이 제한적이다. 차도 막히면 안 되니 캐리어 끌고 지하철 타고 다니기도 했다. 페이 역시 출강을 통해 받는 것보다 개인 공방에서 원데이클래스 한 번 열어 받는 금액이 더 많다. 출강의 장점이 있다면 기관에서 알아서 홍보해주니 편하고 수입이 안정적이라는 거다. 일단 강사로 등록되면 학교의 경우 적어도 한 학기는 고정적인 일이 있는 거니까.
-오전 시간에 카페 일도 다니고 있다고 하셨는데, 카페 창업에도 뜻이 있는 건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인지 궁금하다. 병행하기 힘들지는 않나?
예전에 고향 대구에서 카페와 위빙 수업을 함께 운영한 적이 있다. 위빙도 마냥 수강생을 기다릴 수는 없고 카페도 나름의 특색이 있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당시엔 혼자 모든 것을 운영하던 시기여서 동시에 두 일을 지속하기 힘들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공방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이전에 해왔던 카페 일을 아르바이트로 병행하고 있다. 카페 일은 나에게 워낙 익숙해서 자연스럽게 부업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수강생이 없는 오전 시간을 활용해 일주일에 4번 카페 일을 하고, 오후에 수업 하고, 저녁에는 개인 작업을 한다. 그런데 카페 일을 하는 비중이 내 사업을 하는 시간보다 점점 커지고 있고 체력적으로도 힘에 부쳐서 개인 작업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아무래도 카페 비중을 줄여야겠다고 느끼고 있다.
-위빙 공방을 운영하며 겪는 개인적인 고민이 있다면 무엇인가?
일단 작가로서의 커리어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지금은 개인 작업보다 수업을 더 많이 하고 있다. 아솜샵 인스타그램만 봐도 내 작업보다 수강생 작품이 더 많다. 코로나19 때문인지 요즘 들어 돈에 쫓기고 있는 느낌이다. 처음 작업실을 차렸을 때, 같은 업계 종사하는 친구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넌 작가가 되고 싶어, 장사꾼이 되고 싶어?” 그 질문을 지금도 스스로에게 항상 한다. 이에 답을 명확히 할 줄 알아야 돈이 잘 벌리지 않아도 자책하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돈 때문에 내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 작가가 되고 싶어?”로도 변형할 수 있다. 수강생이 점점 많아질수록 내 작업할 시간이 줄자 스스로에게 저렇게 질문하게 되는 거다. 이에 대한 답으로 작가가 되고 그 후에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내 작업을 보고 사람들이 배우러 왔으면 싶은 거지, 원데이 클래스 가르치는 사람, 단순히 위빙 스킬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니까.
-상사가 없는 개인 사업자로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개인 공방을 운영하다보면 나태해지기 쉬울 것 같은데, 회사 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처음 시작할 때는 주변에서 더 말이 많았다. ‘그거 해서 돈 벌고 살 수 있겠어?’ 같은. 그런데 지금은 회사 다니던 사람들이 나이가 차면서 퇴직 이후의 삶을 걱정하고 있다. 지금 회사에서 정년을 채우고 나올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 나이에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건 어려우니까. 그러면서 나한테 하는 말이 “결혼하고 애낳은 이후에도 계속 할 수 있는 일이 네가 지금 하는 일인 것 같아. 너는 회사 안 가길 잘했다.”이다.
나도 직장 생활을 했고 일도 꽤 잘하는 편이었지만 이제는 회사 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결과가 남 좋은 일이 되어버리는 게 허무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간에 내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그렇게 한 달을 잘 버티면 월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겠지. 물론 그 틀 안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는지, 그 틀을 깨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지는 결국 성향의 차이인 것 같다.
-위빙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주변 사람들도 내 작업을 인정하고 존중해준다. 현재 온라인 공예 클래스를 진행 중이고 사람들도 내 작업을 많이 찾아주고 있다. 나 또한 이 작업을 오래 하고 싶은 마음에 장사꾼이나 강사 이전에 좋은 작가가 되려고 노력한다.
-작가 마인드가 참 중요함을 배운다. 나에게 과연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다.
하나의 주제를 갖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작가 마인드다. 본인 역시 본인의 소신을 위빙이라는 도구를 통해 만들어가고자 하고 있지 않나. 단순히 ‘위빙이 좋아서’ 창업반 수업을 들으러 오는 수강생들에게 나는 항상 콘셉트를 잡아야한다고 말한다. ‘내 작업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고 싶은가?’가 있어야 한다. 내가 다루는 주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나를 찾기 때문이다.
사실 창업반 수강생 중 이런 작업(‘환경 보호의 메시지를 담은 공예’)을 하고 싶다고 말한 사람은 수경씨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도 더 적극적으로 수경씨를 돕고 있는 거다. 본인은 스스로 작가마인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누구나 다 그런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그런 생각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없다. 수경씨가 나에게 위빙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비전을 이야기 했을 때 본인 스스로 매우 밝아 보였다. 그걸 듣는 나도 ‘창업 준비하는 사람들은 역시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다. (폭풍감동)
면사로 작업하는 것 솔직히 어렵지 않나. 그러나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이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고 대중에게 내가 알리고자 하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면 돈은 따라온다. 공방은 그렇게 운영해야 한다. 즐겁게 일하고 싶으면 공방 운영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고,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회사를 다니면 된다.
아솜샵 창업반을 수강하며 만든 면사 티코스터
-코로나 시대에 공방을 운영하면서 미래 운영 계획을 많이 고민했을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그래서 지금 이렇게 발악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나(웃음)(당시 인터뷰를 진행한 아솜샵 공방은 새로 들여온 가구 정리가 한창이었다.) 위빙 작업을 영상으로 남기기 위해 공방 인테리어에 변화를 주고 있다. 영상에 얼굴 나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온라인 취미 클래스와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공개해야 해서 고민이다. 지금은 나만 안되는 상황이 아니라 전부 어려운 상황이니 커리어를 발전시켜나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다. 물론 이런 불황에도 잘 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면 한없이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난 오늘도 주어진 작업을 하며 내 길을 갈 뿐이다.
인터뷰 이전까지 나는 생계에 대한 걱정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수익화하는 방법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날 인터뷰에서 ‘나만의 주제를 갖고 꾸준히 작업해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이 먼저다. 돈은 이후에 따라온다.’는 서진주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고 지금까지 수단과 본질을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 환경을 생각하는 위빙을 하고 싶다는 처음의 목표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나는 환경 문제를 얼마나 깊게 이해하고 있는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혹시 이 문제를 돈이 될만한 사업 아이템 중 하나로만 여기지는 않았는지 다시 고민해야했다. 그리고 내 질문은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을까?’ 가 아닌, 나의 신념과 목표에 대한 주제로 바뀌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세상에 어떤 유익을 줄 수 있나?’, ‘내가 세상에게 하고 싶은 말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