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 간에도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신데렐라에게 밤 12시의 종소리는 자신의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소리를 의미했다. 나에게 밤 12시는 이제부터 시작될 아이 울음소리와의 전쟁을 의미했다.
큰 아이는 밤 12시만 되면 2시간에 한 번씩 깨서 울어댔다. 어떤 날은 자지러지게 울고, 또 어떤 날은 그냥 끙끙 거리는 것으로 정도의 차이일 뿐 새벽에 깨는 것은 똑같았다. 너무 오래 빨아 더 이상 나오지도 않는 빈 젖을 빠는 소리는 예민한 내 귀에 걸려 떨어질 줄을 몰랐다. 잠든 남편을 깨우지 않기 위해 아이가 엥 하는 소리만 들려도 바로 젖을 물렸는데 그 빈도수가 점점 더 늘어나더니 신생아도 아닌 돌 지난 아이가 아직도 2시간에 한 번씩 깨어 젖을 찾으니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었다.
그런 아이를 매몰차게 떨어 뜨려 울리기도 했다. 너무 허리가 아팠고, 어깨가 아팠고, 무엇보다 너무 졸렸다. 밤에 3시간을 연속으로 잠을 자지 못했지만, 아이는 또 오전 7시만 되면 눈을 반짝 떴다. 눈을 떠 마주한 아이 얼굴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뻤지만, 내 깊은 마음은 예쁘다는 마음 하나로 괜찮을 수가 없었다. 야경증이라는 것일까? 낮에 놀이가 부족해서일까? 낮잠을 재우지 말아 볼까? 밤에 잠을 푹 자지 않으니 낮잠을 견디지는 못하는 아기 그리고 나였다. 밤낮이 바뀐다는 건 생각보다 더 많은 무기력을 낳는다.
이런 고민에 빠져있는 나를, 진료가 아닌 상담도 해 준다는 소아과로 데려간 건 동네 언니였다. 안 간다고 버티는 나를 차까지 가지고 와서 말 그대로 모시고 갔다. 선생님께 고민을 털어놓으면서도 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이가 깨서 울면 얼마나 있다가 반응하시나요? 바로 안아 주시나요?" 그 질문을 왜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이가 울면 당연히 안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바로 안아 준다는 나의 말에 선생님은 이렇게 덧붙이셨다. "아이들은 낮인지 밤인지 잘 몰라요. 잠시 깼을 뿐인데, 엄마가 바로 반응하고 안아 올리면 아이는 깰 시간이 되었나 보다. 그러니까 그걸 놀자는 신호로 받아들여요. 바로 안지 말고, 조금 기다려 보세요. 그리고 엄마는 앞으로 아이 옆에서 자지 말고, 잠자리를 분리해 보세요."
첫 아이가 태어나고 남편과 나는 용수철과 같았다. 조금이라도 엥~하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뛰어 들어갔다. 밤에도 그랬다. 초보 엄마 아빠 귀는 얼마나 예민한지, 아이가 자다가 뒤척이기만 해도 벌떡 일어나 아이를 안아 올렸던 것이다. 심지어 유모차에 태워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남편과 나는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나누며, 결심했다. 앞으로는 아이 혼자 재우고, 침대에 누워 아이가 깨서 찾더라도 속으로 100을 세면서 기다려 보기로. 아이와 거리두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다짐한 첫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같은 방에서 부부는 침대, 아이는 바닥에 놓아둔 범퍼 침대, 잠들어 있는 아이와 침대, 딱 그 정도 거리가 멀어졌을 뿐인데 왜 이리 허전하던지, 오랜만에 누운 남편의 옆자리도 너무나 어색했다.
시곗바늘은 어느새 12시, 아이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침대 밑을 붙잡고 서서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았다. 정확하게는 그 시선이 느껴졌다. 울지도 않고 그렇게 혼자 옹알이하며 바라보다가 100을 모두 세지도 않았는데, 제 혼자 누워서 스르르 잠이 드는 것이 아닌가? 그 이후로 아이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숫자 100을 세다가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내가 실패했던 건 엄마 노릇이 아니라, 아이와의 거리두기였다는 것을.
둘째 아이는 성격이 급한 편이다. 얼마나 급한지 배밀이를 생략하고, 걸음보다 빠른 기어가기를 선보였고, 급기야 8개월 때부터 시작된 걸음마 훈련은 9개월 때 뛰어다닐 정도로 완성된 상태였다. 그렇지만 자신의 마음만큼 다리는 따라와 주지를 못했다. 마음은 벌써 형아를 따라잡았는데, 다리는 저만치, 그래서 자주 넘어지는 아이였다. 아이는 넘어지면 가장 먼저 엄마를 쳐다본다. '나를 일으켜야지!' 그럴 때 나는 딴청을 부리고는 한다. 그리고 속으로 100을 센다. 100이 뭐야, 10도 다 세기 전에 제 혼자 일어서서 손까지 야무지게 툭툭 털고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부모와 자식 간에 끈끈한 정보다 필요한 것은 어찌 보면 거리두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마음속에서 자주 올라오는 불덩이가 있었다. 나의 부모에 대한 원망이었다. 나를 안아 준 기억도, 100점짜리 시험지를 보여줘도 잘했다 수고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기억도 없었다. 그런 부모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아이의 작은 행동과 감정에도 바로 반응해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했다. 그게 아이에게 사랑을 확인시켜 주는 방법이라 여겼다. 좋은 엄마가 되는 방법이라 믿었다. 나는 그런 사랑을 못 받았지만, 나는 그런 부모를 가지지 못해 이렇게 가슴에 불덩이를 안고 살지만,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다르고 싶었다. 내 사랑의 크기를 증명하고 싶었다.
엄마라는 이름이 익숙해지면 질수록 느낀다. 나 역시 부모와의 거리두기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과 나는 다른 사람이고, 처한 환경이나 상황도 다르다. 그러니 같을 수 없음에도 나는 수시로 비교하며 괴로워했던 것이다.
그들의 생활 방식이나 행동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육아를 하며 나의 부모와 나의 모습을 비교하고, 또 나의 어린 시절과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비교하며 저울질하던 몹쓸 습관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이해하게 된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함을 말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두기는 각자의 고유함을 지켜주기 위함이다. 편견 없이 사람대 사람으로 마주하기 위함이다. 나와 나의 아이들, 그리고 나와 나의 부모, 각자의 고유함으로 살아간다. 좋고, 나쁨으로 가를 수 없는 중간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