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육아를 하면서 크고 작은 힘듦을 겪는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잘 안 먹어서 걱정이 되기도 하고, 평균 키와 몸무게에 미달된다고 걱정한다. 잠을 잘 자지 않는다고, 이쯤 되면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 언어 치료를 받아야 하나 하고 걱정을 하기도 한다.
아이가 잘 먹고 잘 자고 쑥쑥 잘 자라 준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그런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의 고민은 왜 이리도 소리에 예민한 엄마일까? 하는 것이다.
나는 왜 이리도 소리에 예민한 엄마일까?
아이의 울음 섞인 소리나 싸우는 소리에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아이 둘이 싸우는 소리나 우는 소리가 들려올 때면 순간적으로 짜증이 솟구쳐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화를 느낄 때도 많다. 심지어는 밤에 아이가 자다가 내는 작은 잠꼬대 소리에도 심장이 벌렁 거려서 아이가 잘 자는지 몇 번이나 확인할 때도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오랜 시간 고민해 왔지만, 그저 그렇게 귀가 예민하게 생겨먹은 사람이라는 사실 외에는 별다른 근거를 찾지 못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한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금쪽이들을 상담해 주는 그 프로그램이다.
평소 찾아서 보는 프로그램은 아닌지라 그날도 그냥 넘기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눈길이 머물렀다. 출연한 아이 부모의 고민은 밤에 잠을 좀 푹 자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셋이 있는데, 셋 다 잠이 드는 것도 어려워했고, 잠을 자더라도 자주 깨어나서, 물을 마신다 화장실을 간다는 말 등으로 부모의 잠을 깨우곤 했다. 그렇게 몇 년을 버티다 버티다 도저히 안되어서 사연을 신청한 모양이었다.
암막 커튼을 낮에는 열고 밤에는 닫는 다던지,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 부르거나 물을 마신다고 하면 살짝 모른 척하는 기술을 동원한다던지, 낮에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바깥 활동을 늘린다던지, 잠자리 의식을 만든다던지 등등 해결 방법이 이어지던 그때,
오은영 박사님께서 비디오를 멈추고는 아이들 아빠에게 물으셨다.
"아버님 혹시 아이들 울음소리가 듣기 힘드세요?"
아빠는 이내 끄덕였다. 아이들이 울면 그게 너무나 신경 쓰이고 신경이 예민해진다고 말이다.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이어진 말은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아빠는 울음소리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사연인즉, 20대 초반에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셔 상주가 되었다 한다. 오는 사람들마다 크게 울며 슬퍼했는데 그 소리가 너무나도 크고 무서워서 그다음부터 울음소리에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울 때마다 그때의 기억과 겹쳐져 참기가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올랐다. 나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는 걸. 우리 부모님은 밤에 술을 마시고 자주 다투셨다. 처음엔 평소와 같았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물건까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려올 때면 그런 밤엔 베개를 한참 적시며 몸을 벌벌 떨며 겨우 잠이 들곤 했었다. 아침에 일어 나서는 엄마와 아빠가 모두 있는지 꼭 확인을 하곤 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자 부모님께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릴 때마저도 혹여나 다툼으로 번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지금도 늦은 저녁 시간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나를 깜짝 놀라게 한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며 우는 소리나 싸우는 소리에 신경이 예민해지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가 혹시나 그런 것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오은영 박사님 조언처럼 휴지를 말아서 귀에 꽂고 있어야 할까?
아이들이 싸우는 상황이나 우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각자의 모든 요구 조건을 들어주며, 전전긍긍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정면 승부를 택했다.
아이들의 소리에 가장 예민해지는 때가 언제인지를 떠올렸다. 바로 내가 집안일을 하고 있을 때 뒤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리였다.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둘이 싸워서 어느 한 명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그럴 때 가장 컨트롤이 안 될 정도로 화가 올라오곤 한다. 소리를 소리로 묻히려고 하는 것처럼 내 목소리가 계속해서 더 높아진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아이들이 서로 우당탕하며 싸우거나 우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대처할 수 없다. 그래서 나쁜 일이 벌어질까 봐 무서웠던 것이다. 그래서 우선은 내가 목소리를 크게 내어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면 안 좋은 상황을 우선은 정지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릴 때 내가 좀 더 힘이 셌더라면 엄마 아빠 싸움을 말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나는 왜 일어서서 부모님 방에 들어가 그만 싸우시라고 크게 소리칠 수 없었을까?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해서 엄마 아빠 사이가 더 안 좋아졌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아이들이 싸울 때, 부모님의 싸움처럼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릴까 봐, 혹 어릴 때의 나처럼 아이들에게도 후회하는 일이 생겨 버릴까 봐 너무 무서웠었다는 걸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집안일을 할 때 내 신경을 예민하게 만드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오면 우선은 하던 걸 멈추고 아이들 근처로 가서 얼굴을 본다. 소리만 들을 때보다는 얼굴을 보고, 상황을 보고 나서, 이유를 묻고 어느 정도 해결을 하고 다시 돌아오면 또다시 소리가 들려도 처음만큼 화가 올라오진 않았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내가 왜 소리에 예민한지를 깨닫고, 어릴 때와 어른이 된 지금은 전혀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소리로만 판단하지 말고 눈으로 꼭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자 마음먹으니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