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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구름 Dec 13. 2020

잠깐 눈 감은 사이에

아빠를 미워 할 수 없는 이유


다 됐다.







그 사이 잠겨 있던 목소리가 에헴 하고 터져 나온다.





빙글빙글 도는 듯한 형광등 불빛을 마주한 것도 잠시, 커다란 무릎에 기대 한쪽으로 기울여 누운 나는, 까무룩 단꿈에 빠졌다가 나온다.










© kymasm, 출처 Unsplash









조심조심 부드럽게, 울퉁불퉁 까맣고 거친 손이지만 유달리 귀도 작고 귓 속은 더 작은 큰딸의 귀를 청소해 줄때 그의 손은 피아노 건반 위의 부드러운 그것이 되어 있다.





철이 덜 들었을 게 분명한 어느 어린 날, 저녁을 먹고 나면 아빠의 무릎을 차지하고 귀를 맡겼다. 더 이상 청소할 것도 없을 내 귓불을 잡아 작은 귀안을 살폈을 아빠와의 그날이 눈을 감으면 떠오른다.









아빠의 발가락은 조금 특이하게 생겼다. 엄지발가락은 크고, 검지 발가락은 엄지발가락 보다 살짝 긴데 그 발가락이 엄지발가락 위로 살짝 다리를 꼬고 있는 것처럼 올라와 있다. 살을 자주 파고드는 엄지발톱 때문에 아빠가 사용하던 비슷한 모양의 뾰족한 도구를 보면, 아빠의 발이 떠오르곤 한다.





그 발을 바라보며 참 특이하게 생겼네, 발이 참 크네. 콤콤한 냄새도 나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저절로 눈이 살며시 감겼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걱정도 없이 그저 아빠를 믿고 귀를 맡긴다. 그냥 아빠의 큰딸이 되었다.






아빠는 분명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아니, 아빠와 이런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겠지만) 너한테 잘 해 준게 많을 텐데, 고작 그런 걸 기억하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 ElisaRiva, 출처 Pixabay










하지만 그게 아빠와 나 사이의 아주 단단하고도 유일한 끈이었다. 아빠에게 실망하고, 돌아서고 싶을 때마다 인연이라는 실이 눈에 보여 내가 끊고, 묶고 가 가능한 것이라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돌아서서 가다가도 아빠라는 사람을 다시금 마주하게 불러 세워 준 기억은 바로 그 기억이었다. 고작 귀를 후벼 주었던 짧은 시간.





사람이 빛나는 순간은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순간이 아닐까. 그 누구보다 제 부모에게 온전히 사랑받은 아이는 매 순간 당연히 빛이 난다. 안에서부터 진정으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당해낼 재간은 없다. 아무리 할 수 있다는 다짐으로 사랑의 빛을 내보려 중무장한다고 해도 그와는 품고 있는 씨앗의 품종부터 다르니까.





아빠는 우리에게 늘 솔직하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에게 어른으로 남고 싶은 욕심이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예전의 아빠들은 당연히 울면 안 되었고, 힘든 내색을 해도 안되었고, 그것을 가장 잘 숨겨야 하는 대상이 바로 자식들이었을 테니까.





'그랬기 때문일 거야'라고 생각을 정리하게 된 것도 아이를 낳고 기른 한참이 흐른 뒤였다. 이해할 수 없는 물음표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화가 났던 일들을 떠올리며 밤을 새웠던 날들도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들도 분명 어느 누구보다 자식들을 아끼고 사랑하고 싶었던 부모였을 것이다. 설명을 덧붙여 억지로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고, 누구의 잘잘못을 따져 핏대 세워 화내지도 않으려 한다. 어쩔 수없이 내 안에서 울분이 터져 나온 다면, 그 또한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나의 빛나는 순간의 첫 기억이 귀를 청소하는 장면이라니 조금은 허무하기도 하지만, 나는 안다.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나의 부모들도 한때 뜨겁게 나를 사랑했음을. 그렇게 모인 빛들을 모른 척할 수 없음을. 그게 나를 분명 빛나게 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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