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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구름 Apr 24. 2023

덧셈이 뭐라고, 구구단이 뭐라고!

아이는 아이 속도대로 갈 테니 불안함으로 에너지 쓰지 말고

부제: 아이는 아이 속도대로 갈 테니 불안함으로 에너지 쓰지 말고, 그 에너지 나에게 쓰면 어떨까요?



그날은 아이에게 덧셈을 가르치고 있었다. 1+10은 11이라는 답을 함께 공부하고 나서, 10+1은 뭘까? 하고 물었는데, 아이가 자꾸만 엉뚱한 대답을 하는 거다. 같은 실수가 여러 번 반복되자 머리에서 슬슬 스팀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도대체 몇 번째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거야?” 하고 소리치는 사이, 손이 아이 머리를 동시에 내리치고 말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도 비슷한 일이 생겼다. 그때는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못했던 시기였기에 모든 공부를 엄마표로 하고 있었는데, 학교에서 내준 과제로 구구단을 가르치게 되었다.



요즘은 뭐든 시기가 빠른지, 나 때는 3학년 때 배운 것 같은데... 어쨌든 교과 과정이 그러하니 어쩌겠나 싶어 아이와 구구단 2단부터 차근차근 외우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잘 외우지 못하는 아이를 여유롭게 받아 주었는데, 외우고 나면 다시 까먹고를 반복하는 아이에게 결국엔 화를 내고 말았다. 엄마에게 혼나고 서럽게 울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덧셈을 가르치던 1학년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날 밤 정말 잠이 오지 않았다. '어릴 때야 엄마가 혼내도 조금 있다가 풀려서 쪼르르 와서 안아주지만, 사춘기 때는 과연 어떨까?’ 덜컥 겁이 났다.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똑똑한 것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언제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고 싶은데... 그놈의 덧셈이 뭐라고, 그놈의 구구단이 뭐라고! 머리를 때리고 아이를 울리는 엄마라면 그런 관계는 어려울 것 같은데...



왜 아이 공부를 가르치면서 화를 참지 못하고 이렇게 자꾸 화를 내는 걸까? 그 원인을 찾고 싶었고, 앞으로 내가 원하는 아이와의 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었다.



아이와 수학 공부를 하면서 화가 났던 이유 중 하나는 나를 닮아 수학을 포기하게 되는 아이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들이 아이에게서 관찰될 때면 그게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었다. '왜 내 못난 부분만 저렇게 닮았을까?' 하면서...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런 부분은 내 아이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발견될 수 있는 작은 실수나 결점일 뿐이었다. 지금은 수학을 싫어하지만, 나중에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수학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나와 닮아서 그렇다는 생각으로 감정 이입을 하는 것은 아이를 하나의 다른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일지도 몰랐다. 내가 낳았기 때문에 갖는 책임감은 필요하지만, 아이와 감정적으로 너무 많은 연결이 되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하나는 남들 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1학년 때, 심지어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구구단을 다 외우고 간다고 하더라. 그런데 우리 아이는 아직도 구구단을 외우지 못한다는 생각에 불안했고, 아이가 창피 당할까 봐, 구구단을 외우게 도와주지 못한 엄마의 무능함을 들추게 될까 봐 불안했던 것 같다.



구구단 하나 늦게 외운다고 인생 전체를 봤을 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솔직히 어른 되면 스마트폰 계산기를 꺼내지 않나? 4살 때까지 말문이 터지지 않아 걱정했지만, 지금은 아이랑 말싸움하면 말문 막히는 건 오히려 내 쪽인걸? 구구단 하나로 아이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조금 드넓게 생각하면 이해되는 부분을 너무 좁은 시야 안에 아이를 가둬 놓고 너무 쉽게 단정 지어 버린 것은 아닐지 천천히 다시 돌아 보았다. 다른 아이들과 나란히 세워놓고 비교하던 마음에서 벗어나 내 아이를 기준에 놓고 살피는 마음으로 다져가게 되었다.



그렇게 한발 물러서서 아이와 나의 관계를 살펴보다 보니, 아이에 대한 불안감의 뿌리는 결국 나 자신에 대한 불안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어릴 때 느꼈던 감정을 아이도 느끼면서 힘들까 봐 두려웠던 마음과 엄마가 부족하여 아이의 교육을 책임지지 못할 것만 같은 낮은 자존감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쏠리던 과도한 관심을 편안하게 만들 수 있을까? 아이에게 나의 감정과 행동을 대입하여 섣불리 판단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고민 끝에 앞으로는 아이에게만 쏠리던 과도한 시선을 거둬, 나를 바라봐 주겠다는 다짐하게 되었다.



아이는 언제나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잘 해주고 있었다. 어린이집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유치원 버스를 혼자 타고 갈 수 있을까? 학교에 입학해서 수업 시간에 잘 앉아 있을 수 있을까? 화장실에 혼자 갈 수 있을까? 이런 걱정들은 아랑곳없이 아이는 자신의 속도대로 잘 자라고 있었다. 맞다. 아이는 아이 속도대로 잘 갈 것이다. 아이에게서 독립해야 하는 건 어쩌면 엄마인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런 것을 깨달은 뒤에는 아이에게 갖는 불안함으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앞으로는 그 에너지를 나를 성장시키는데 쓰기로 했다.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을 통해 자신감이 생기고, 나 자신을 믿어 주게 된다면, 그게 결국 아이에게 건강한 에너지로 다시 흐를 것이라 믿고 있다.



처음에는 아이 교육에 방관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엄마가 엄마 할 일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아이는 자연스럽게 배운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주부로서의 일을 사랑하고, 효율적으로 해 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학교에 다니지는 않지만, 항상 책 읽고 공부하고 글 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엄마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보단, 함께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초등 3학년부터 영어 수업이 시작된다.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영어 시험에서 한 개만 맞고 다 틀리는 바람에 점심시간에 재시험을 쳤다고, 다른 애들은 영어를 잘 하는 데, 자기는 영어를 너무 못해서 영어가 싫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잘 다스려놓았던 마음에도 차가운 바람이 쌩하고 들이쳤다.



"너 정말 최선을 다했던 거 맞니? 최선을 다했는데도 1개를 맞았다면 엄마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 영어 공부하는 거 엄만 못 본 거 같은데? 최선을 다하지도 않아 놓고,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영어가 싫다고 하고, 잘 하는 친구들 부러워만 하면 어떻게 하니?"



그 말을 내가 하면서도 가슴이 찔리도록 듣게 된 것도 나였던 것 같다. 새해 다짐으로 매번 영어 회화 공부를 하겠다고 적었으면서, 최선을 다한 적이 있었던가? 아이에게 영어 공부에 최선을 다하라고 하기 전에 나부터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다음번에 이와 같은 얘기를 떳떳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올해 3월부터 다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아이가 남들보다 뒤처진다는이유로 가기 싫다는 학원에 억지로 보내는 건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나의 기준을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결코 없다. 단지, 그것이 세상의 기준인지, 우리 가족의 기준인지는 한 번 점검해 보면 어떨까 싶다. 누군가의 눈에는 이런 내 모습이 답답하고 어리석게 보일지는 몰라도 나는 나다운 엄마의 기준을 만들어 가는 것을 선택했다.



시끄럽던 세상에 대한 귀를 반쯤 닫고, 나와 아이를 동일시하던 마음에서 홀연히 독립해 나오면서 시작된 변화이자 성장인 것 같다. 나에게 맞는 육아 기준을 세우고, 복잡한 환경을 심플하게 하고, 불필요한 관계를 정리하고, 나 자신이 느끼는 부족함을 메워줄 공부를 시작하자, 아이들의 시답잖은 관심사에도 함께 웃어 줄 수 있고, 뜨거운 여름 날 땀을 비오 듯 흘리며 매미도 잡으러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전과는 달리 육아에 대해 행복을 느끼며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발전이니까! (여전히 가끔은 짜증 내고, 화내고, 또 후회하고, 사과하고, 같이 우는 그런 보통 엄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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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자랄수록 육아가 더욱 힘겹게 느껴지시나요?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을 충분하게 주지 못하는 것만 같아서, 자꾸 화를 내는 부족한 엄마라 미안하신가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나에게 맞는 육아 기준, 일상의 기준을 만들어 나가 보면 어떨까요?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엄마인 내가 먼저 행복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에게 과도하게 들어가던 에너지를 나에게 돌려야 하는 이유랍니다. 행복하려면, 내 안에 에너지가 충분해야 하거든요! 그 방법으로 저는 아이를 키우 듯, 나를 키우며, 그저 나다운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엄마가 자신에게 책을 읽어 주는 시간보다 엄마 책을 읽는 시간이 늘고, 집안일을 함께 하자고 부축 이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어린 둘째는 떼도 많이 부렸지요. 하지만 점점 익숙해졌고, 이제는 우리 둘째도 ‘우리 엄마는 집에서 글 쓰는 사람이야’ 하고 말합니다. 네! 저는 그렇게 아이 둘을 키우는 육아(育 기를 육, 兒 아이 아) 맘일 뿐 아니라, 엄마인 나도 함께 키우는 육아(育 기를 육, 我나 아) 맘으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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