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미워 할 수 없는 이유
다 됐다.
그 사이 잠겨 있던 목소리가 에헴 하고 터져 나온다.
빙글빙글 도는 듯한 형광등 불빛을 마주한 것도 잠시, 커다란 무릎에 기대 한쪽으로 기울여 누운 나는, 까무룩 단꿈에 빠졌다가 나온다.
조심조심 부드럽게, 울퉁불퉁 까맣고 거친 손이지만 유달리 귀도 작고 귓 속은 더 작은 큰딸의 귀를 청소해 줄때 그의 손은 피아노 건반 위의 부드러운 그것이 되어 있다.
철이 덜 들었을 게 분명한 어느 어린 날, 저녁을 먹고 나면 아빠의 무릎을 차지하고 귀를 맡겼다. 더 이상 청소할 것도 없을 내 귓불을 잡아 작은 귀안을 살폈을 아빠와의 그날이 눈을 감으면 떠오른다.
아빠의 발가락은 조금 특이하게 생겼다. 엄지발가락은 크고, 검지 발가락은 엄지발가락 보다 살짝 긴데 그 발가락이 엄지발가락 위로 살짝 다리를 꼬고 있는 것처럼 올라와 있다. 살을 자주 파고드는 엄지발톱 때문에 아빠가 사용하던 비슷한 모양의 뾰족한 도구를 보면, 아빠의 발이 떠오르곤 한다.
그 발을 바라보며 참 특이하게 생겼네, 발이 참 크네. 콤콤한 냄새도 나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저절로 눈이 살며시 감겼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걱정도 없이 그저 아빠를 믿고 귀를 맡긴다. 그냥 아빠의 큰딸이 되었다.
아빠는 분명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아니, 아빠와 이런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겠지만) 너한테 잘 해 준게 많을 텐데, 고작 그런 걸 기억하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아빠와 나 사이의 아주 단단하고도 유일한 끈이었다. 아빠에게 실망하고, 돌아서고 싶을 때마다 인연이라는 실이 눈에 보여 내가 끊고, 묶고 가 가능한 것이라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돌아서서 가다가도 아빠라는 사람을 다시금 마주하게 불러 세워 준 기억은 바로 그 기억이었다. 고작 귀를 후벼 주었던 짧은 시간.
사람이 빛나는 순간은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순간이 아닐까. 그 누구보다 제 부모에게 온전히 사랑받은 아이는 매 순간 당연히 빛이 난다. 안에서부터 진정으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당해낼 재간은 없다. 아무리 할 수 있다는 다짐으로 사랑의 빛을 내보려 중무장한다고 해도 그와는 품고 있는 씨앗의 품종부터 다르니까.
아빠는 우리에게 늘 솔직하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에게 어른으로 남고 싶은 욕심이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예전의 아빠들은 당연히 울면 안 되었고, 힘든 내색을 해도 안되었고, 그것을 가장 잘 숨겨야 하는 대상이 바로 자식들이었을 테니까.
'그랬기 때문일 거야'라고 생각을 정리하게 된 것도 아이를 낳고 기른 한참이 흐른 뒤였다. 이해할 수 없는 물음표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화가 났던 일들을 떠올리며 밤을 새웠던 날들도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들도 분명 어느 누구보다 자식들을 아끼고 사랑하고 싶었던 부모였을 것이다. 설명을 덧붙여 억지로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고, 누구의 잘잘못을 따져 핏대 세워 화내지도 않으려 한다. 어쩔 수없이 내 안에서 울분이 터져 나온 다면, 그 또한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나의 빛나는 순간의 첫 기억이 귀를 청소하는 장면이라니 조금은 허무하기도 하지만, 나는 안다.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나의 부모들도 한때 뜨겁게 나를 사랑했음을. 그렇게 모인 빛들을 모른 척할 수 없음을. 그게 나를 분명 빛나게 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