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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스타그램이 재미없는 이유

남을 위한 기록과 나를 위한 기록, 그 사이에서.

by 기록하는 슬기


지금까지 내가 가입한 sns 계정은 총 7~8개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중에서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운영 중인 플랫폼은 브런치, 블로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까지 총 네 개다. 만약 이 네 개 중에 요즘 가장 재미없는 sns를 내게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고민 없이 인스타그램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근 1년 동안 내가 인스타그램 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흥미를 가지고 인스타그램에 자주 포스팅을 했던 때는 2~3년 전이던 2017년과 2018년이다. 그때 나는 세계 여행 중이었고 적어도 이틀에 한 번 꼴로 포스팅을 하곤 했다. 물론 여행할 당시 인스타그램 이외에도 블로그도 꾸준히 운영을 해오긴 했지만 인터넷 환경이 좋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보니 사진 위주로 간략하게 업로드를 할 수 있는 인스타그램이 더욱 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 여행 중에는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은 사진들이 차고 넘쳤다.


매일매일 이벤트 가득한 장기여행이라는 일상 속에서 가장 바쁜 건 카메라였다. 휴대폰 카메라와 미러리스 카메라를 번갈아 가며 태어나 처음 맞닥뜨리는 장면들을 쉴 새 없이 담아냈다. 그리고 밤마다 나는 고민했다. 하루 종일 두 눈으로 본 이미지와 오늘 겪은 재미난 여러 에피소드 중 어떤 것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할지를. 오랜 고민 끝에 고른 사진은 분위기를 한껏 살리기 위해 보정을 한 후, 그 아래 짧은 글을 적어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과 함께 많은 하트를 받곤 했다.




인도 여행 했다면 필수로 인스타그램에 올려야 할 사진 두 장 <좌 : 라다크 판공초 / 우: 타지마할>


그땐 특별한 일들이 가득하던 일상만이 특별한 줄 알았다. <좌 : 인도 바라나시 / 우 : 네팔 안나푸르나 라운딩 중>



물론 1년 7개월간의 여행이 끝난 후에도 인스타그램에 자주 접속을 했다. 내가 팔로우한 계정에서 올라온 포스팅에 열심히 '좋아요'를 눌렀고, 가끔은 댓글도 달았다. 그런데 점점 내 계정에 올라가는 새로운 포스팅의 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급격히 줄어들었다.


어떤 의도를 가지거나 혹은 다른 sns에 집중을 해서 인스타그램에 소홀해진 것은 아니었다. 워낙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인스타그램에 접속할 때마다 '오늘은 어떤 사진을 올려볼까?' 하는 고민을 했었다. 휴대폰 사진첩으로 가서 근래에 찍은 사진들을 눈여겨보곤 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사진은 늘 없었고, 스크롤을 올리고 올리다 보면 작년 사진까지 올라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 사진을 안 찍은 건 아니었다. 단지 내 사진첩에는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사진'이 없었다. 인스타그램은 특히나 글보다 사진을 위주로 하는 소셜미디어이다 보니 인스타그램에 어울리는 사진을 고르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인스타그램에는 특별한 장소에 갔다거나 근사한 음식을 먹었다거나 누군가를 만났다거나, 아니면 시각적으로 예쁘고 멋진 풍경이나 외모를 자랑할만한 사진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후부터 지금까지, 특히나 최근 4~5개월간 나의 일상은 신기하리만큼 반복적이고 평범하다. 실제로 휴대폰 카메라를 실행시키는 숫자도 줄었지만 대부분 새로 저장된 사진은 파란 하늘과 초록 나무, 노을 지는 주황빛 하늘, 가족과 외식 중 급하게 찍은 음식 사진,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들어 찍어놓은 한 페이지, 영어 공부 중 외워야 할 표현들, 아주 가끔 어플의 힘을 빌려 찍어 본 노메이크업 셀카뿐이다. 그러니 당연히 최근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사진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인스타그램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결국 0을 지나 최근에는 마이너스 영역까지 떨어졌었다. 그리고 며칠 전이었다. 그날따라 글도, 공부도, 심지어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마저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았다. 역시나 새로 뜬 피드도 하나같이 재미가 없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계정으로 들어가 이전에 올렸던 포스팅을 차례차례 눌러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시간이 꽤 지나버린 지난 여행 때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조금 놀랐다. 생각보다 그리 멋지거나 예쁘게 나오지 않은 사진들도 내가 이미 많이 업로드를 했던 것이었다. 분명 그 당시 나는 고르고 골랐던 사진이었을 텐데 말이다. 심지어 보정도 안 하고 올린 사진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문득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기 전에 신중에 신중을 가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왜 나는 요즘 들어 인스타그램에 포스팅을 못하고 있는 건지, 그 이유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여행 속 나는 생각보다 늘 멋지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다. <좌 : 인도 암리차르, 숙소 주인과 대판 싸운 후 / 우 : 미얀마 인레, 낮맥은 절대 포기 못한다.>



처음에는 여행 때 느낀 강렬한 행복감 때문에 그 사진들을 보는 내 눈에 콩깍지가 씌웠었나 싶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한국에서 보내는 일상 또한 나는 매우 만족하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 더 나아가 나는 꼭 행복의 감정만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었다. 가끔은 우울할 때, 슬플 때도 자주 사진과 글을 업로드했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유독 요즘 들어 더욱 인스타그램에 포스팅을 하기 전에 망설였던 걸까? 아니, 왜 아예 올릴 사진이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 속 계정을 운영하는 사람은 '나'였지만
그 계정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던 것이다.

분명 그곳을 '나'를 위해 기록하는 공간이라고 해놓고 결국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을 했던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계 여행 중 나는 더욱 자유롭게 사진과 글을 올릴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누군가에게 뽐낼만한 기록을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특정한 환경 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금은 덜 까다롭게 사진을 골랐고, 덜 망설이며 글을 쓸 수 있었다. 멀리 떠나 오랜 기간 여행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 나에게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랑거리였으니까.


여행이 끝난 후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작년 한 해 많은 일이 있었다. 특히나 귀국 후 초반에 신체와 정신의 건강이 심하게 아팠던 후에 나는 더욱 주변의 시선을 신경 썼던 것 같다. 딱히 특별한 일이 없거나 좋은 소식이 없다면 굳이 인스타그램에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계정에 올린 지난 포스팅을 거의 다 봤을 무렵, 휴대폰 사진첩에 들어가 저장된 사진들을 차근차근 둘러보았다. 그 안에 기록된 내 기억들은 조금 전에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몇몇의 사진들과는 달랐다. 때로는 아프기도 했고, 우울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더 많은 순간들이 아늑했고 평화로웠다. 아무런 보정 없이도, 화사하게 만들어주는 필터 없이도 충분히 빛나고 있었다.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할 시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항상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석양.



사진첩에 저장된 사진의 날짜가 2019년 1월에 다다를 때까지 스크롤이 올라가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진 한 장 일지라도 분명한 건 그 순간 내가 카메라를 들어 올렸던 이유는 그 순간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때 느낀 감정이 꼭 설렘, 기쁨, 행복과 같은 감정이 아니라 우울함, 아련함, 슬픔과 같은 감정일지라도 그때 나는 그 감정을 기억으로 간직하고 싶었다는 것을 말이다.



기록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때의 잊고 싶지 않은, 잃고 싶지 않은 나를 기억하는 일이 아닐까.

그러니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기록이 아닌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기록을 만드는 일, 그리고 그러한 기록을 위해 조금 더 솔직해지는 일이다.






오랜 시간 화면을 밝히고 있던 휴대폰은 이미 뜨끈뜨끈해졌고, 동시에 내 오른쪽 손목은 뻐근해져 왔다. 건조해진 두 눈을 한 번 꾹 감으며 동시에 휴대폰 화면을 껐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다이어리를 펴고 방금 떠오른 한 줄의 문장을 급하게 옮겨봤다.



'특별한 일상이어야 기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기록해야 그 일상이 특별해진다.'





그땐 그저 그런 일상인줄 알았지만 돌아보니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꼈고, 소중함을 느꼈다. <사진은 모두 2019년의 일상>








오늘도 끝까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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