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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 글은 얼마였나요?

프리 하지 않은 프리랜서를 꿈꾸는 한 사람의 이야기.

by 기록하는 슬기


며칠 전, 한 sns에 들어가 피드를 구경하고 있을 때 화면 하단에 추천 친구 목록이 떴다. 아는 사람인가 싶어 초반에 뜨는 몇 개의 프로필 사진과 아이디를 보니 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남은 계정들도 모르는 사람이겠거니 하고 스크롤을 내리려고 하는데, 그다음 프로필 사진 속 한 남자의 뒷모습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홀린 듯 그 아이디를 꾹 눌러 그 계정 홈에 들어가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 그 사람이 누군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이전 직장 동료였던 J였다. 그리고 동시에 회사 다닐 때 J와의 에피소드 하나가 떠올랐다.


때는 3년 전, 따스한 봄바람이 불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같이 여유 있게 회사에 도착한 나는 자리에 앉아 그날따라 맑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곧바로 사회생활 미소를 장착하고 뒤를 돌아봤다. 내 뒤에는 같은 팀 동료 J가 서 있었다. J와 나는 같은 팀이긴 했지만 서로 맡은 업무의 관련성이 적어서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가깝게 지내지 않던 사람이었다.


업무가 시작되기도 전인 이 시간에 내 자리에 찾아온 J가 의아했지만 일단 J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나는 물었다.

"어? J님! 안녕하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슬기님.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저 사실.. 슬기님한테 뭐 좀 여쭤 볼 게 있어서요. 음.. 괜찮으시다면 오늘 퇴근하실 때 잠깐만 시간 내어주실 수 있으세요..?"


입사 이후로 단 한 번도 J와 나는 사적인 친분을 쌓을만한 기회도 없었고, 그런 시도 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가 대뜸 내 자리에 찾아오더니 '따로' 할 말이 있다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그가 나에게 할 말이 무엇인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도 겉으로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그에게 대답했다.


"아.. 네. 저 오늘 괜찮아요. 그럼 이따 6시 15분쯤 회사 바로 옆 00 카페에서 볼까요?"



봄의 맑은 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가끔 그날이 떠오른다. <사진 2019. 05>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6시가 되었고, 늦지 않기 위해 J와 약속한 00 카페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카페 문을 열자마자 미리 테이블에 앉아있는 J가 보였다. 어색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나누고 J의 맞은편에 앉았다. J는 바로 내게 질문을 했다.

"슬기님, 이번 달까지만 일하시는 거 맞죠? 그러면 퇴사하고 바로 세계여행 시작하는 거예요?"


그렇다. 당시 나는 퇴사를 2주 남기고 있었고, 이미 같은 팀 사람들은 내가 곧 세계여행을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J의 질문에 '퇴사 후 한 달 뒤에 여행을 시작할 것 같다고' 대답했고, J는 너무 부러워하며 자신도 한때 세계여행이 꿈이었다고 말했다. 곧바로 J는 내 여행 계획에 대해서도 비교적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슬슬 여행에 대한 대화가 마무리될 무렵 J는 머뭇거리다가 이내 말문을 열었다.

"음.. 제가 슬기님한테 정말로 드릴 말씀이 있어요. 사실은 저 2개월만 회사 더 다니다가 창업해보려고 해요. 오래전부터 준비한 게 있거든요. 제가 창업하려는 곳에서 부가적인 프로젝트로 매달 주제를 바꿔가면서 책자를 직접 만드려고 하는데요. 제 생각에는 그 책자 속에 정규 코너로 슬기님 여행 글이랑 사진을 담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0.1%도 예상하지 못했던 J의 퇴사 선언과 창업 계획을 듣고 당황스러웠지만 처음 받아보는 협업 제안에 내 심장은 눈치 없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해 본 경험이 없어서인지 걱정도 앞섰고 또 궁금한 점도 많았다. 나는 J에게 '내가 쓴 글을 제대로 읽어봤는지', '내 글이 J가 기획하는 그 책자와 어울리는지', '만약 일을 함께 한다면 글을 보내는 횟수와 기간, 그리고 비용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질문을 했다.


J는 나와 친한 동료인 S를 통해 나의 퇴사 이유는 물론이고 향후 여행 계획, 내 sns, 그리고 내가 '작가'라는 꿈이 있다는 것까지 모두 알게 되었다고 했다. J는 내 sns에 올라온 한 포스팅을 콕 집어 말하며 그런 스타일의 글이 자신의 프로젝트에 어울릴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2주에 한 번씩 글 하나와 그와 관련된 사진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J는 '비용'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저도 이런 일을 처음 하다 보니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준비하면서 좀 알아봤는데요. 생각보다 글 한 건당 단가가 낮더라고요. 저는 그래도 평균보다는 조금 높게 생각했어요. 글이랑 사진 포함해서 한 건당 만원에 해드리면 어떨까 생각 중인데.. 혹시 슬기님이 생각하시는 금액이 따로 있으신가요?"


글 한편 당 글자 수와 사진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직전에 J가 말한 마음에 든다는 그 포스팅을 기준으로 한다면 적어도 그렇게 글을 쓰고 수정하는데만 5~6시간은 걸린다. 그렇다면 당시 최저시급(2017년 : 6,470원)을 감안하더라도 만원은 조금 심한 거 아닌가 싶었다.


물론 나도 주변을 통해 유명 작가나 sns 스타가 아닌 이상 글 한편당 금액이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적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만원이란 금액 자체가 그리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J에게 "좋아요! 만원으로 해요."라는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일단 나는 J에게 생각할 시간을 갖고 다시 이야기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J는 알겠다며 내게 언제든 다시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렇게 J와의 대화는 끝났다.


그날 이후 나는 고민을 오래 하다가 뒤늦게 J에게 연락을 했고, 당시 J는 함께 사업하려던 친구와 문제가 생겼다며 창업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했다. J는 그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연락을 준다고 했다. 몇 개월 후 그가 다시 나에게 연락을 했을 때 이미 나는 한창 여행 중이었고, 게다가 인터넷이 거의 되지 않던 북인도에 있을 때였다. 허무하지만 프리랜서로서 처음 받아 본 프로젝트 제안은 그렇게 무산되었다.




3년 전 그때의 나. <2017.08. 북인도 라다크 가는 길>



그로부터 3년 후, 지금도 나는 여전히 작가의 꿈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3년 전에는 막연하게 '글을 쓰고 싶다.'라는 꿈이었고, 지금은 '내 글을 쓰고, 그것으로 먹고살고 싶다.'라는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인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지금 나의 꿈은 '글 쓰는 프리랜서'이다.


나는 아직 프리랜서로서 어떻다 할 성과나 수익을 만든 경험은 없지만, 나보다 먼저 이 길을 선택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정말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부터 든다. 특히 비용과 관련된 문제는 더욱 힘든 것 같다. 그래서 나도 그들에게 3년 전 J와의 에피소드를 말해주곤 했었는데 그때 그 반응은 극명하게 둘로 나뉘었다.

전자는 "아무리 그래도 긴 글에, 사진까지 보내는데 만원은 너무 한 거 아니야?"라는 의견이었고, 후자는 "네가 이쪽 경력 없는데 만원이면 괜찮은 거지. 원래 다 그런 거야."라는 의견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중에 어떤 쪽이 정답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내가 정말 절박하다면, 꼭 잡아야 할 기회라면 아무리 열악한 조건이라 해도 일을 시작하겠지만 아직 예비 프리랜서인 나는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이 더욱 많다.

도대체 어떤 글이 비싼 글인지, 어떤 글이 싼 글인지.

어떤 글이 백만 원인지, 어떤 글이 천 원인지.

어떤 기준으로 금액의 평균이 생겨나는 것이고, 그 값은 애초에 어떻게 매겨지는지.

그리고 나는 어느 정도까지를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고 돈을 벌어야 하는 건지 말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 더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따로 있다. 이렇게 프리랜서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여전히 나는 '내 글로 먹고살 수 있는 프리랜서'라는 장래희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 장래희망을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몰라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처음에 최저시급보다도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을 받더라도 지금처럼 글에 매진해도 수입이 '0'인 시간들을 떠올리면 그것 또한 '성장'한 것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성장은 또 다른 성장을 가지고 오고, 나는 그것들을 견뎌내고 받아들일 사람이라는 것을 믿고 있다.


아직은 내 마음대로, 내가 쓰고 싶은 대로 글을 쓰는, 그야말로 돈 못 버는 "free"랜서지만

머지않은 날에 일에 쫓겨 'free 하지 않은 진정한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나를 간절히 그려본다.

그때가 되면 지금의 free 한 삶을 그리워하겠지만 말이다.









오늘도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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