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행복은 손가락 지문과 같다.

너와 나의 행복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

by 기록하는 슬기


3년 전, 1년 7개월 간 떠난 세계여행 중에 나는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었고, 그중 몇몇은 아직도 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여행 때 만난 인연이니 만큼 연락을 할 때면 여행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코로나 19의 출현 이후로 우리들의 대화는 조금 더 답답했고, 암울하기까지 했다.


그중 가장 최근에 H와 긴 통화를 했다. H는 코로나 19로 인해 몇 년 전부터 준비한 해외에서의 사업 계획이 모두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덤덤한 목소리로 전했다. 그래도 다행히 몇 개월 동안 생각 정리를 끝낸 H는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 홀로 제주도 여행을 한 달 정도 할 거라고 말하며 그 여행 계획을 내게 이야기해줬다. H의 여행 계획을 듣고 나는 "우와.. 좋겠다.. 나도 그렇게 여행하고 싶었는데.."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H의 제주도 여행 계획은 홀로 배낭 하나, 작은 텐트 하나를 메고 오직 걸어서만 제주도 한 바퀴를 여행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혼자 캠핑을 하면서 여행을 해본 적은 없지만 지난 세계 여행 때 해본 경험 중 2주간 내리 산을 탔던 히말라야 트레킹이 내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았기에 언젠가 나도 도전해보고 싶은 여행의 유형이었다. 나는 부러움을 한껏 담아 H에게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을 하고 오라고 말하며 전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며칠 뒤였다. 오랜만에 들어간 sns에는 대학교 친구 중 한 명인 A가 남자 친구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사진들이 연속적으로 올라와 있었다. 평소 A가 추구하는 여행 스타일답게 그녀의 사진 속 제주도는 정말 예뻤다. (A는 그 시기에 유행하는 핫 플레이스 혹은 유행하는 아이템은 꼭 가보고 해봐야 하는 성향이다.)


A가 갔던 카페, 숙소, 소품점 등은 다른 sns에서도 한 번쯤 봤던 기억이 나는 익숙한 곳들이었다. sns에 딱 어울리는 색감과 감성 가득한 A의 포스팅에 나는 차례대로 '좋아요'를 눌렀다. 내가 연이어서 누른 '좋아요' 알림이 한꺼번에 그녀의 폰에 울렸는지 A는 바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오랜만에 연락을 하는 A와 나는 짧은 안부를 서로 주고받았다. 그리고 나는 A에게 제주도 여행 사진이 너무 예쁘다고 이야기했고, 요즘 제주도 분위기에 대해 물어보았다.

"제주도 요즘에 사람 많지..? 어땠어? 여행하기에 불편하지는 않았어?"

"음.. 나도 걱정돼서 일부러 평일에 갔어. 관광지는 사람이 좀 있는데 생각처럼 막 붐비지는 않았어. 근데 후기 보면 주말에는 사람들 꽤 많은 것 같긴 해. 근데 왜? 너도 제주도 가려고?"

"아.. 아니, 나 여행 때 만난 친한 친구가 곧 제주도로 한 달 동안 여행 간다고 해서. 어떤가 궁금해서."

"정말? 제주도 한 달 살이 하나 보네. 안 그래도 이번에 제주도 여행 준비하면서 숙소 엄청 알아봤는데 예쁜 곳 많더라.. 그 친구는 숙소 구했데? 아니면 내가 좀 추천해줄까? 나 알지? 이런 거 다 정리해 놓는 거."


워낙 A는 꼼꼼하고 철저한 성격에 자신이 알아둔 정보를 여러 친구들에게 공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몇 년 전 제주도 카페를 한 곳만 추천해달라고 하자 그녀는 이전에 자신이 가고 싶었던 제주도 카페 리스트를 따로 정리해 놓은 엑셀 파일을 내게 보내줄 정도였으니까. 그녀는 얼굴도 모르는 내 친구 H에게 자신이 알아둔 숙소 정보를 공유할 생각에 이미 신나 보였다.


그런 A에게 나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

"A야. 그 친구는 텐트 챙겨간데.. 걸으면서 제주도 한 달 여행할 계획이라고 하더라. 가끔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는 거 빼고는 아마 숙소는 필요 없을 것 같아. "

A는 내 대답을 듣고 김이 빠진 듯, 그렇지만 조금은 예상했다는 듯 이어서 말했다.

"아.. 너 세계 여행할 때 만난 친구구나? 걸어서 제주도? 근데 텐트? 와.. 네 주변에는 그런 특이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한편으로 멋있기도 한데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고생하면서 여행하는 게 난 이해는 잘 안가. 참..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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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있잖아. 나도 왜 이런 내가 좋은지 정확히 이해는 안가.. <사진은 2017. 11.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라운딩 중>



사실 마지막 A의 대답은 어제 들은 말처럼 내겐 익숙하다. 내가 장기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실제로 여행 도중 한국보다는 많이 열악한 환경의 여행지를 좋아하는 나를 보았을 때, 겉보기에 위험해 보이는 여행지를 가는 나를 보고, 그리고 여행 막바지에 (동시에 20대 끝자락에) 떠난 워킹 홀리데이를 가는 나를 보았을 때. 등등 내 주변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이유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신기해."

"대단해."

그런데,

"난 이해할 수 없어."


처음에는 A와 같이 말하는 사람들에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고, 동시에 나 또한 그들이 이해가지 않았었다.

'왜 남들이 다 가는 곳에 꼭 가야 하고, 꼭 사진을 찍어야 하는 곳에서 찍고, 그 순간에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다 몇 주전에 미리 알아둔 유명한 곳에 가서 줄을 서서 밥을 먹어야 하는 거지? 저 사람들은 그게 좋은 걸까? 그게 정말 행복한 걸까? 꼭 깨끗하고 예쁜 곳에 가야 그와 닮은 추억을 만드는 것도 아닌데.'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길었던 여행의 기간만큼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후, 이제야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각자 사람들이 겉으로 보이는 외모도 다 다르듯이 보이지 않는 내면 또한 다르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고 나니 나와 다른 타인의 생각, 취향들이 그렇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우리가 나와 겉모습이 다르게 생긴 타인들을 당연하게 생각하듯이, 우리의 손가락 지문이 모두 다르듯이 내면 또한 그와 같다고 생각했다. (간혹 소름 끼치게 닮은꼴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결국 말 그대로 '닮은' 사람일 뿐 같지는 않다.)


A와 H는 둘 다 똑같이 '제주도'라는 곳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 제주도를 여행하는 방법은 다르고, 그렇기에 그 안에서 각자가 만족하며 행복을 느끼는 방법은 다르다. A는 sns에서 유명한 곳에 가서 예쁜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sns에 올렸을 때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H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고, 텐트를 치고 잠을 자는 경험을 했을 때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아마 예전 같았다면 나는 A의 마지막 대답을 듣고 H처럼 여행하는 사람들을 대변해서 A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A의 취향을 알고, 또 인정한다. 그래서 굳이 A와 다른 H의 행복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감정이 그러하지만 행복이라는 감정은 특히 누군가의 설명만으로는 느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그리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이제는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마지막 A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맞아. 사람은 다 다른 것 같아."








이 세상에는 각기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비슷한 듯 모두 다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와 비례하는 각기 다른 행복들이 살아간다. 그러니 나와 같지 않은 타인의 행복에 꾸짖을 필요도 없고, 타인과 같지 않은 나의 행복을 초라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저 우리가 우리와 다른 행복을 맞닥뜨렸을 때 해야 할 것은 특별히 없다.

"아 너의 행복은 이렇게 생겼구나."하고 말면 된다.


혹시 지금 '나는 불행해. 행복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그 이전에 먼저 이 질문을 먼저 하고 싶다.

"당신의 행복을 만난 적이 있나요? 있다면 언제, 어떻게 당신을 찾아갔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스스로' 찾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혹시라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못 찾았다 할지라도 실망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행복이란 생김새도 그 성질도 다르듯 나에게 맞는 행복을 발견하고 느끼는 그 시기 또한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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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복'을 찾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계기와 시기는 찾아오리라 믿는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유독 자주 '나의 행복'을 노래했던 때.>









오늘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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