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우리 이제 눈치 없이 '행복 배틀'해요.
며칠 전, 친구 P와 안부 인사차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했다. P는 간단히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대뜸 몇 개월 간 극도로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불면증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은 한 사람으로서 P의 힘듦을 공감할 수 있었다. 곧이어 나는 불면증 때문에 전날도 잠을 설친 이야기를 P에게 해줬다.
"나는 어제 일부러 많이 걷고, 커피도 안 마셨는데 거의 2시간 가까이 이불에서 뒤척였어. 아마 총 4시간도 못 잔 것 같아. 오늘 하루 종일 정신이 멍-하고, 계속 하품만 나와. 몸도 축축 처지고."
그러자 P는 내 불면증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야. 나는 몇 개월 동안 쭉 그래 왔어. 게다가 1~2시간 간격으로 계속 깨는 것 같아. 그리고 정말 심한 날은 병원에서 처방받아온 수면제 없이는 아예 잠에 들지도 못한다니까.."
생각보다 심한 P의 불면증 증세에 나는 놀랐고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자연스레 우리의 대화 주제는 '건강'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게 되었고, 자신이 각자 겪고 있는 고질병에 대해 털어놓게 되었다. P도 나와 비슷하게 예민한 신경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대부분 신경성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 같았다. 우리의 대화는 길어져서 서로의 고통에 대해 공감을 해주는 것을 넘어 각자의 '아픔'에 대해 늘어놓는 시간이 되는 것 같았다.
꽤 뜨거워지고 있는 볼 옆에 휴대폰을 살짝 떼어 통화 시간을 확인해 보니 30분을 막 넘기고 있었다. 마침 전화가 들어오고 있다며 P는 나중에 다시 연락을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급하게 마무리 인사를 했다.
"어? 나 지금 아빠한테 전화 온다. 슬기야, 내가 다시 연락할게!"
"어어, 그래. 너도 조심히 다니고 연락하ㅈ.."
'뚝-'
내 마지막 멘트가 채 끝나기 전에 전화는 끊겼고, 그 순간 P와 내가 오늘 나눴던 통화 내용이 떠올랐다. 분명 서로를 걱정해주고,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 것 같았지만 내 머릿속에 남은 것은 '건강하지 못한, 어딘가가 아픈 P와 나'뿐이 없었다. 우리의 의도와는 달리 30분 동안 결국 각자의 '불행 배틀'을 한 것 같았다.
나는 흔히 말하는 '불행 배틀'을 하지 않기 위해 평소에 최대한 경계하는 편이다. 서로의 아픔과 힘듦을 공감하는 선에서 멈춘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자칫 잘 못하면 각자의 아픔과 힘듦을 부각하는 시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의 불행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이야기의 끝에는 정말 '불행한 나와 상대방'만이 남는다. 그래서 불행 배틀의 대화가 끝나고 나면 항상 내 기분은 찝찝했다. 정말 행복하지 않은 나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 같았다.
물론 힘든 상황을 겪었거나 고민되는 어떤 사건이 있다면 가까운 관계인 사람에게 털어놓고 의견을 묻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습관처럼 나누게 되는 '불행 배틀'은 오히려 그 반대인 '행복 배틀'보다 훨씬 못하다. 예전부터 나와 내 주변 가까운 사람들은 대부분 '자랑' 보다는 '자책'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쉬웠다. 겸손이 미덕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겉으로는 최대한 '행복'하지 않은 척을 하려고 했다. 굳이 따지자면 서로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자리보다 '불행'을 말하고 들어주는 자리가 더욱 익숙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매번 서로 힘든 이야기, 고생한 이야기, 아픈 이야기만 주고받다 보니 '과연 이 대화가, 이 대화를 나누는 이 관계가 건강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어떤 관계든 매번 좋을 수 없고, 행복한 이야기만을 나눌 수는 없지만 반대로 매번 부정적인 이야기만을 나누어서도 안된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건강한지, 이대로도 괜찮은 건지 확인해 볼 수 척도는 그 사람과 나눴던 대화와 그 대화를 나누며 느꼈던 감정이 될 테니까.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한 후, 그 끝에 부정적인 감정만이 남는다면 그 관계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없다. 본능적으로 사람이란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그 감정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되도록이면 '불행 배틀'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누군가 힘든 상황에 놓여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기꺼이 진심을 다해 듣지만, 거기서 굳이 상대방과 비슷한 나의 불행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렸을 때는 힘든 사람에게 '너만 힘든 게 아니야.'라고 말해주려는 위로의 의미에서 말했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는 진심을 다해 들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불행에 불행을 더하면 결국 몸집이 더 커진 불행뿐이 남지 않는다는 것을.
항상 행복한 일만 가득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제는 나도, 내 주변도 '행복'에 대해, '좋은 일'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가끔은 서로에게 얄미울 정도로 얼굴에 행복을 잔뜩 묻히고, 자신에 행복에 대해서 눈치 없이 말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좋은 생각'을 하고, 그에 따른 '말'을 하고, '행동'을 먼저 해야겠지.
"이제는 우리 눈치 보면서 불행 배틀 하지 말고, 눈치가 없어도 좋으니 행복 배틀 해요.
그 끝에는 행복한 당신과 내가 남아 있을 테니까요."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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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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