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 앞에서 더욱더 내 감정에 솔직해져야 하는 이유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지만 제대로 된 연애 경험이 1도 없던 중학생, 고등학생 때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연애 상담을 잘해주기로 유명한 친구였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 시절에도, 그 후에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도 남녀 가리지 않고 자연스레 내게 연애 상담을 줄곧 해왔다. '상담'이라는 단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뭔가 자신의 뜻대로 안 되거나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를 때 나를 많이 찾았는데 가장 빈도수가 높은 상황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사귀기 직전 썸을 타는 관계에서 서로 눈치만 보고 그 누구도 확실하게 표현하지 않을 때, 두 번째는 이별 직후 다시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할 때였다.
그중에는 압도적으로 첫 번째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자신의 상황을 쭉~ 이야기한 후 내게 물었다.
"이 사람 지금 무슨 생각인 것 같아? 나한테 어떤 감정인 거 같아? 호감은 있는 거 같아?"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름 상황 판단을 한 후 내 생각을 말하면 친구들은 그다음에 꼭 이렇게 물었다.
"그럼 너 같으면 이 상황에서 어떡할 것 같아? 먼저 연락해? 아니면 그냥 기다려?"
질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남녀 불문하고) 내 친구들의 성향은 대부분 상대방의 연락을 기다리는 편이었는데 내가 들어도 하나같이 상대방의 표현과 행동은 애매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친구들에게 이 질문을 던졌었다.
"근데 가장 중요한 게 지금 네 마음이지. 그래서 네 마음은 어떤데? 그 사람이 좋은 거야? 아니면 그냥 이대로 끝나도 괜찮은 거야?"
그러면 대부분 친구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사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 길게 만나본 건 아니니까.. 호감은 있는데 지금 내 마음에 막 이렇다 저렇다 할 확신은 없는 것 같은데.. 연락은 기다려지는 정도?"
"네가 이 정도의 헷갈리는 감정이라면 상대방도 그렇지 않을까? 그러니까 섣불리 상대방도 뭔가 확실한 표현을 못 하는 것 같은데.. 뭐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럼, 넌 그 사람이 궁금해? 그 사람 자체가 궁금할 수도 있고,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궁금할 수도 있고."
"음.. 그래도 궁금은 해. 그러니까 연락 기다리고 있겠지..?"
"그럼 한 번 딱 두 눈 감고, 네가 먼저 연락해봐 봐. 그래서 만나서 이야기 나눠봐. 그럼 너도 네 감정이랑 그 사람 감정을 조금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다른 건 몰라도 네가 먼저 만나자고 해서 이야기하고 나면 네 감정은 선명해질 거야. 괜히 타이밍 놓치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내가 이렇게 솔루션을 내어주면 대부분 50%의 친구들은 그대로 실행을 하고, 나머지 반은 "에이.. 나 먼저 못해.. 그러다 문자 씹히면 어떻게.. 나 그냥 일주일 정도 더 기다려보고 연락 안 오면.. 접을래. 그 사람도 나한테 딱 그 정도 감정이니까 연락 안 하겠지."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똑 부러지게 연애 상담을 해주는 나는 전자와 후자 중 어떤 사람이었냐고? 참고로 나는 겁 많고 소심하고 자존심만 더럽게 센, 사랑 앞에서는 찌질미가 한층 더 해지는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후자였다. 무엇보다 나는 이성을 만날 때면 상대방에 대한 내 감정, 내 마음보다도 그 상대방이 내게 어떤 감정인지, 그리고 내게 어떻게 표현하는지 그게 가장 중요했다. 한마디로 난 관계의 시작에서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내가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아니, 내가 좋아할수록 상대방이 내게 적극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모든 표현과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처 받을 내가 두려워서 애초에 마음을 더 빠르게 접었었다. 상대방의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먼저 용기 내어 다가가는 것보다도 먼저 관계를 잘라버리는 게 슬프지만 내겐 더 쉬웠다.
지금까지 긴 연애, 짧은 연애, 혹은 썸 같은 관계 속에서 나를 쭉 돌아본다. 내게 연애 상담을 받은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그와 그녀들에게 해결책이라고 내준 그 말을 제대로 이행해본 적이 거의 없다. 막상 나는 알쏭달쏭하게 표현하면서 늘 모든 것을 먼저 다 보여주고, 달려와 준 사람들에게만 마음을 천천히 열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패턴이 긴 시간 동안 반복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큰 문제를 발견했다. 매번 상대의 마음과 표현에 의해 내 마음이 시작되다 보니 정말 내 마음, 내 감정이 어떤 건지 모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알고도 막상 새로운 인연이 강렬한 감정을 자극할 때면 내 감정을 느끼고 살피기보다는 우선 나를 방어하기 바빴다.
연인 관계나 친구 관계는 가족과 같이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관계가 아니라 내가 능동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관계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관계의 시작을 가볍게 여기는 만큼 끝 또한 가볍게 내기도 한다. 그리고 반대로 누군가는 그 관계의 시작을 진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끝내야 할 때도 쉽사리 그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나 더, 나같이 관계의 시작과 끝을 모두 무겁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시작 조차 하지 못한다. 내가 무겁게 생각하는 만큼 그 관계의 끝에서 받을 가슴을 짓누를 상처부터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는 없다 할지라도 늘 고파하는 관심과 사랑 또한 동시에 받지 못하고 있는 외로움이 넘쳐흐르는 나만이 남아있다.
며칠 전 오랜만에 소개팅을 하고 온 친구 한 명은 한참 동안 나를 붙잡고 삼십 대의 사랑은 왜 이리도 힘든 거냐며 푸념을 했다. 요즘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친구와 한참을 맞장구치며 이야기를 나누고는, 대화의 끝무렵 그럼에도 친구의 사랑을 응원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기 좋은 때는 따로 없는 것 같아. 그리고 확신이라는 감정도 따로 없는 것 같아. 우리가 말하는 감정의 확신, 마음의 확신은 상대방과 내가 충분한 시간을 함께해야 어렴풋이 서서히 느껴지는 게 아닐까. 그 사람이 궁금하고,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다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봐. 지금 당장 상대방에게 거절당하면 그것도 너에게 큰 상처이지만, 지금 아무것도 못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때 한 번만 용기를 내볼걸..'이라는 후회가 든다면 그건 더 깊게 길게 너 자신을 괴롭힐 거야."
다른 건 몰라도 '후회'라는 감정이 얼마나 힘든지 말할 수 있던 이유는 지독하게 그 후회를 겪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난 누군가로 가득 차오르는 내 마음을 애써 속였었고, 나에 대해 확신 없어 보이는 그 사람 곁을 먼저 떠났었다. 꾸역꾸역 진심을 누르고 눌렀지만 기어코 그 진심은 참다못해 흘러넘쳤다. 그때 나는 늘 하던 대로 어떻게든 그 진심을 다시 숨겨보려 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 진심에게 졌고, 용기를 내어 내 진심을 그 사람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나에 대한 마음을 이미 정리한 후였다. 진심이 컸던 만큼 상처도 컸지만 내 마음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했던 나를 탓하며 그렇게 하루하루 견뎌냈었다. 그렇게 사계절이 몇 번 바뀐 후, 어느 날 그 사람은 내게 모질게 말한 후에 오랫동안 후회했다고, 그리고 나를 궁금해했다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이런 게 타이밍이고, 인연이고, 운명일까. 그때 나는 다른 사람과 새로운 사랑을 막 시작하고 있었다. 그에게 솔직하게 말했고 우리는 그날 이후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과는 결국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서로에 대한 마음만 각자 끙끙 앓다가 그렇게 끝나버렸다. 긴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사람에게 어떤 특별한 감정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그 사람을 떠올리면 '솔직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 사람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내 모습보다도 나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가슴 아프게도 너무 선명히 떠오른다.
가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만약 그때 그 사람의 진심과 나의 진심 둘 중 어떤 진심이라도 조금 더 가벼웠다면, 둘 중 한 명이라도 조금 빨리 용기를 냈다면 우리의 타이밍은 맞았을까. 그 사람을 기다리던 그때 나는 무책임하지만 간절함이 묻어나는 이 말을 좋아했었다.
"인연이라면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된데."
지금에서야 이 말에는 가장 중요한 단서가 빠져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이 문장의 완성형은 "자기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사람과 인연이라면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된데."가 아닐까.
그 사람과 인연이 될 수 없던 이유는 나는 저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안다. 나는 늘 나를 속여왔고, 나를 숨겨왔다는 것을. 언제부터인가 상처 받는 내가 두려워서 내 감정 앞에서 수없이 나를 속이고, 머뭇거리고, 주저했던 나였다. 그러고 보니 자기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도 일종의 습관이었다. 지난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이런 내 습관을 그저 타고난 성향, 성격 정도라고 치부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 누가 항상 사랑 앞에서, 상처 앞에서 당당할 수 있고, 덤덤할 수 있을까. 그들도 다 무섭고, 겁났는데 한 번쯤은 순간을 놓쳐버려 '사람'을 놓치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후회했고 아파했던 그 상처의 깊이와 길이를 느꼈기에 그 습관을 고치려고 부단히 애썼던 것일 수 있다.
원래 모든 습관은 만들 때 딱 처음 그 한 번, 그 첫 번째 시도가 가장 어렵다.
모든 성장은 늘 해오던 것보다 내가 하기 싫어하는 것들,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을 하면서 시작된다.
이제는 내 습관을 다시 만들 때다.
내게 새로운 사람이, 사랑이, 사랑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어떤 감정이 나를 흔들 때면
그때는 정말 나를 속이지도, 그 감정을 숨기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순간의 상처가 두려워 나를 속이는 일은
단순히 그 사람 하나를 잃는 게 아니라
나란 감정을, 나란 사람을 잃고 산다는 것임을."
오늘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자분들의 공감과 응원은 글 쓰는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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