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

#02. 우리는 결국 믿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

by 기록하는 슬기


대학교 2~3학년 즈음 무지 덥던 여름날로 기억한다. 방학을 맞이해서 본가에 내려와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까지 아빠가 태워주신다기에 단 둘이 차에 타고 시내로 향하고 있었다. 엄마보다도 아빠랑 더 친한 나는 아빠와 평소에도 일상적인 대화를 잘 나누는 편이다. 그날도 아빠와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화 도중 아빠는 뜬금없이 내게 이 질문을 하셨다.


"슬기야. 너는 뭘 할 때 가장 즐거워?"

원래 이런 간단명료한 질문이 대답하기에는 가장 어렵다. "음......" 소리를 길게 낸 후 나는 대답했다.

"글쎄.. 나는 여행 가서 카메라로 사진 찍고, 그 사진이랑 함께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그 후에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이런 게 가장 재밌는 것 같아."

"그러면 너는 한 번 글을 써봐. 글 쓰는 직업을 가져도 잘할 것 같아."

아빠의 이 말이 끝난 후, 내가 어떤 표정과 말투로 대답했는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에이~ 아빠. 어떻게 내가 글로 돈을 벌어. 난 전공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분야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블로그에 글 올리는 사람인데?!" 라며 글로 돈을 번다는 건 내게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빠의 한 마디는 8~9년 전 그 당시에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 후로 한참을 돌고 돌아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은 서른 살이 된 이후에야 내 귓가에 더욱 자주 아른거렸다.

아빠는 운전 중이라 정면을 응시하고 있어서 눈을 쳐다보지 못했지만 어느 때 보다도 단호하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글로 왜 못 먹고살아. 글로 먹고살 수 있어 분명히.

지금처럼 블로그에도 계속 글을 써서 올리고, 너 혼자서도 꾸준히 글을 써봐 봐.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분명 기회는 올 거야."



그때 아빠에게 어떤 대답도 하지 못 한채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나는 급하게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불과 1~2년 뒤 정말 블로그만으로도 돈을 벌고, 여러 활동을 하는 파워 블로거들의 세상이 열렸었다. 그리고 점점 세상은 빠르게 변해 지금처럼 자신의 글과 영상, 사진 등등 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가끔 상상해본다. '내가 그때 글로 돈을 벌 수 있다고 믿고, 매일매일 열심히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렸다면 글로 어떤 수익을 만들 수 있었을까? 지금보다는 빨리 글 쓰는 사람으로서 자리 잡지는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상상.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머릿속에 노크 없이 훅 하고 들어오는 과거의 한 장면이 있다. 그리고 그 장면 속에서 유독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 대화가 있다. 그 당시에는 너무도 평범한 일상이라서,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구분이 가지 않던 순간들이 가끔 내게 말을 걸어온다. 당시 20대 초반이던 나는 꿈이라고 할 것이 딱히 없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내 전공인 '역사학'을 살려서 학예사를 하려고도 했고, 공부를 더 해서 교수 쪽으로 나가보고 싶기도 했었다. 그때 내가 그런 직업을 떠올린 이유는 단 하나다. 남들에게 뭔가 있어 보이고 싶은 허세 가득한 마음에서 나왔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기쁜지를 고민하기 이전에 그저 남들 보기에 그럴싸한 어떤 직업만을 꿈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불안정하게 먹고살아야 하는 작가라는 직업을 애써 외면해왔던 것 같다. 안 봐도 뻔히 보이는 미래였으니까. 그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시기를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아빠께서 말씀해주신 "글로 먹고살 수 있어."라는 말을 일부러 흘려보냈던 것이다.


사람이 참 신기한 건 내가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고 믿었던 것이 불과 몇 년, 몇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는 정확히 그 반대로도 생각하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글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내게 주변 사람들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작가라는 직업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인 불확실성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그때마다 이제 나는 8~9년 전 어느 날 내가 들었던 아빠의 목소리처럼 단호하고 단단하게 말한다.

"글로 충분히 돈 벌 수 있어.

앞으로도 꾸준히 쓴다면, 뭔가를 만들어낸다면 어떻게든 먹고살 수는 있어. 걱정 마."




P20201110_132938768_4944AD5D-FD31-4BBD-8E49-1D2A45709107.JPG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심'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2020. 10. 기록 노동자의 일상>



지금 와서 고백하자면 글에 전념하기 시작한 작년 8월 이후로 내가 쓴 글로 수익을 내본 건 작년에 한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게 전부다. 이런 내가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다는 그 믿음이 어디서 온 거냐고 물어본다면 안타깝지만 그 믿음의 근본은 없다. 말 그대로 지금 나는 무작정 믿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경험과 기억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 그저 매일매일 쓰며 믿을 뿐이다.


한 심리학자가 말하길 '인간이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이나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결국은 과거에 자신이 겪었던 어떤 경험과 기억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게 된다.'라고 했다. 그만큼 한 사람에게 경험과 기억은 미래까지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이 말은 즉, 한 번의 경험과 한 번의 기억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 첫 번째 경험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믿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1등도 해본 사람이 한다.'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이 말이 주는 메시지를 일차원적으로만 이해했었고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이 말의 속뜻을 알게 되었다. 1등을 해봤던 사람이 계속 똑똑해서,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해서 또 1등을 하는 걸까? 아니다. 1등을 해봤던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이다. 나는 하면 된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고, 그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그 믿음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또다시 집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면 안 되는 점이 있다. 누구나 태어나서 한 번도 1등의 경험은 없다는 것. 그 한 번의 기억을 만들어내기 위해 무작정 '나'를 믿고 했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나'를 믿고 열심히 무엇인가를 했음에도 결과적으로 상처만 받았을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과정이란 그렇다. 하지만 그 실패의 상처가 두려워 나에 대한 '믿음'을 놓쳐버린다면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성공, 성취의 경험과 기억'도 함께 놓쳐버리는 것과 같다.



우리 모두는 각자가 생각하고, 믿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주변에서 '할 수 있다!'라고 해도 내가 자신이 없으면 못하는 것이고, 거꾸로 주변에서 (심지어 경험자가) '할 수 없어.'라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다.'라고 믿으면 일단은 해보게 된다. 그러니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생겼다면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갖기 이전에 '할 수 있을 거야.'라는 믿음을 가지고 해 보자. 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 결론은 해보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매일매일 쓴다.

그리고 이런 나를 믿는다.

그리고 또다시 쓴다.

이렇게 반복되는 꾸준함이 결국 내가 꿈꾸는 나로 만들어줄 것임을 알고 있기에.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자분들의 관심과 공감은 글 쓰는 저에게 가장 큰 힘이자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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