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제주 여행이 내게 알려준 것

#04. 여행 라떼가 말하는 7년 전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추억.

by 기록하는 슬기


요즘이야 '게스트 하우스'라는 형태의 숙박시설이 흔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다니던 때 (2010년)만 해도 여러 명이 한 방에서 자는 도미토리룸도,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 그런 문화도 생소했다. 내가 처음으로 '게스트 하우스'라는 곳을 접하고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건 바로 2013년, 장소는 바로 '제주도'였다.


2013년도에 어떤 어마 무시한 사건이 있던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심적으로 힘든 시기이기도 했다. 그 해에 기억에 남는 일 중에 몇 가지를 말하자면 3년 넘게 만나던 남자 친구와 헤어졌던 일,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준비해야 했던 졸업 논문과 각종 시험 점수에 대한 스트레스, 그리고 이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나 하는 진로 대한 고민, 당시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문제들이 있었다.


2013년 초겨울의 어느 날, 방에 누워 멍 때리던 나는 대뜸 지금 내 전재산이 얼마인지 확인해보았다. 당시 내 모든 통장에 있는 숫자들을 긁어모으고 보니 27만 원 남짓하는 액수가 찍혔다. 그 돈으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문득 항공사 마일리지 점수가 생각났다. 곧장 홈페이지에 들어가 마일리지를 확인해보니까 국내선은 왕복으로 다녀올 수 있는 마일리지였다. 고민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예매해버렸다. 이어서 가장 저렴한 숙소를 찾다가 발견한 게스트 하우스의 도미토리룸. 비수기 기준으로 12,000-15,000원이면 1박이 해결되었다. 게다가 저녁 식사를 원하는 사람들은 만원을 추가로 현장에서 지불하면 간단한 주류까지 함께 제공이 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늘 그랬듯 아무 계획 없이 비행기 표와 도착하고 첫날 숙소만 예약하고 제주도로 떠났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11월 중순 즈음, 지금보다는 몇 배 더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2013년 그 이전에도 한 달 넘게 유럽 배낭여행, 국내에서는 내일로 기차 티켓으로 2주 정도 전국을 여행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모두 동행자들이 있었다. 정말 온전히 '혼자'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창가에 앉아 비슷한 하늘 사진을 지겹게 찍고 오렌지 주스를 한 컵을 마셔주고 나니 착륙을 준비한다는 안내 멘트가 들렸다. 숙소는 제주시에서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어서 서둘러 움직였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제주시 터미널로, 터미널에서 동일주 버스를 타고 어느 초등학교 앞에서 내렸다. 게스트 하우스 블로그에서 읽은 대로 버스 정류장에 내려 직원분께 전화를 하니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한 봉고차가 내 앞에 섰다.


"방금 전화하신 게스트분 맞죠? 성함이.. 슬기 씨?"




PB182227.jpg 아마 내 그리움은 제주에서 시작됐던 것 같다. <2013. 11.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비행기 안에서>



직원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황토방 건물 앞에 도착했다. 지금은 워낙 게스트하우스의 종류도 다양하고 인테리어나 시설도 대부분 최신식에 깔끔하고 개성 있지만 당시 내가 갔던 곳은 딱 '제주도의 한 시골 마을에 있는 별장' 같은 느낌이었달까. 남녀 숙소는 따로따로 분리가 되어있었고, 가족이나 단독으로 쓰는 방은 독채로 띄엄띄엄 떨어져 있었고, 식당 겸 리셉션으로 쓰는 건물은 입구 쪽에 있었다. 나를 태우러 나왔던 직원분께서 이제 곧 저녁 시간이니 짐 정리를 대충 하고 바로 식당으로 나오라고 말씀하셨다. 시킨 대로 배낭은 빈 침대 옆에 내려놓고 손만 후딱 닦고 식당으로 향했다.


이미 4~5명의 게스트분들은 직원분과 함께 저녁을 만들고 계셨고, 그중 1~2명의 게스트분들은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멀뚱멀뚱 테이블과 주방 사이에 서 계셨다. 그때 직원분이 "여기 와서 김치전 좀 부치는 것 좀 도와주세요~"라고 하시길래 누구보다 빠르게 짧은 발걸음을 옮겨 프라이팬을 잡았다. 음식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스텝분, 게스트분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금세 적응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단 돈 만원이라고 하기에는 푸짐한 저녁 한 상이 금방 완성됐고, 각자 자리에 앉아 어색하게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곧이어 게스트 하우스의 매니저분께서는 한라산 토닉을 게스트들에게 한 잔씩 만들어 주셨다. 처음 맛 본 한라산 토닉은 상큼하고, 약간 씁쓸한, 그런데 청량한 아이스 레몬차 같았다. 커피 마시듯 홀짝홀짝 마시면서 주변에 앉아 계신 여행자분들과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당시 함께 계셨던 여행자분들의 연령대도, 하는 일도 모두 다양했고, 제주에 여행을 온 이유도 모두 다 달랐다. 같은 한국에 살고 있었지만 태어나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사람들, 그리고 내가 제주에 오지 않았다면, 이 게스트 하우스에 오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살뻔했던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가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러웠고, 재미있었다. (요즘 젊은 분들이 가는 파티 게스트 하우스 같은 느낌의 게스트 하우스는 아닙니다..)


오래전 여러 매체를 통해 흔히 들을 수 있던 "여행은 결국 사람을 여행하는 것이다."라는 한 문장에 나는 그다지 공감할 수 없었다. 제주도를 혼자 여행하기 전까지 내게 여행은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낯선 곳에 가서 낯선 장면을 눈으로 보고 느끼고, 사진으로 남기고 올 뿐이었으니까. 이미 익숙한 사람들과 떠나는 여행은 '사람'이 주인공이라기보다 눈으로 보이는 '장면'이 주인공인 것 같았다. 하지만 홀로 떠나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곳에서 나눴던 그 장면과 그 대화는 다른 여행지에 봤던 어떤 멋진 장면보다도 오래 보였고 들렸다. 그때 이후로 내게도 여행이란 '사람'을 여행하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여행하는 것과 같았다.



PB212544.jpg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건 멋진 장면 그 자체보다 그 장면을 함께 하던 사람들과 이야기. <2013. 11. 위미리 앞바다>



문득 오늘 나의 첫 게스트 하우스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7년 전 그때 느꼈던 감정이 무척 그립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코로나 19라는 말도 안 되는 전염병이 출현하고 나서 우리의 일상과 일상 속 유일한 꿈이던 여행은 일시 정지되었고, 남은 것들 마저도 변해버렸다. 이제는 낯선 사람의 얼굴은 마스크로 반 이상 가려진 모습만 기억할 수 있고, 그 사람의 웃는 미소, 다양한 표정 같은 것들은 모두 목소리로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이 마저도 실물이 아닌 인터넷이나 전화를 통해 가상으로 소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분명 여행이라는 목적으로 온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으로 지내다 보니 요즘따라 부쩍 낯선 여행자들끼리 경계심 없이, 마스크 없이 이야기를 나누던 그 장면과 그 속에서 들리던 목소리, 웃음소리, 감탄사, 그리고 그들의 미소가 사무치게 그립다. 분명 다시 그 장면 속에 나와 지금은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도 없는 낯선 사람들이 다시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너무 늦지 않게 다시 '사람'을 여행하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행하고 싶다.








여행이 아닌 살아보고자 떠나온 2020년의 제주는 훗날 어떻게 기억될까.

그리움이란 감정이 온몸에 가득 찬 나란 사람은 나중에 기어코 2020년 제주에서 보내는 이 시간 속에서 그리워해야 할 것들을 셀 수 없이 찾아내겠지.

그럼에도 확실한 건, 그리움이란 녀석은 혼자 있던 나보다 누군가와 있던 나를 더 좋아한다는 것.

먼 훗날 2020년 제주에서의 나를, (알 수 없는 누군가를) 많이 많이 생각보다 더 많이 그리워하길.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자분들이 읽어주시고 느껴주실 때, 제 글과 저는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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