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건강'도, '후회'도 결국은 '관리'하는 것.
제주도에서 지낼 기간이 그리 길진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꼭 지키고자 하는 몇 가지 생활 규칙이 있다.
1. 일주일에 최소 5번씩, 회당 40분 이상 홈트레이닝하기
2. 일주일에 5일 정도, 저녁식사는 가볍게 단백질과 과일 위주로 먹기
3. 매일매일 한 끼는 든든하게 먹고 영양제 챙겨 먹기
4. 매일매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많이 걷기
5. 미지근한 물은 생각날 때마다 자주 마시기
언뜻 보면 지금 다이어트를 하고 있나 싶을 수도 있지만, 위에 몇몇 생활 규칙의 주목적은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건강을 크게 잃은 후, 위의 규칙들을 지켜온지 벌써 1년 하고도 7개월이 지났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10년 넘게 줄곧 타지 생활을 했던 나는 건강에 대해서 무지했고 무관심했다. 정말 말 그대로 '방치'했던 사람이었다.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매 끼니를 꼭 챙겨 먹어야 하는 타입은 아니어서 하루에 한 끼만 제대로 먹고 매일 밤에는 술을 마셨다. 위가 작은 편이라 안주를 많이 먹으면 술을 못 마시게 되는 걸 알고부터는 거의 술만 마셨었다. (지금도 안주보다는 술이다.) 그래도 20대 때는 나이 체력이 짱짱했는지 이렇게 건강을 홀대해도 몸이 버텨줬었다.
조금씩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한 때는 대학교 졸업을 앞둔 시기부터였다. 4년 간의 불규칙한 식사 습관과 잦은 음주의 결과는 '만성 위염과 만성 소화 불량'이라는 병명을 안겨줬다. 성격도 예민한 편이고 잠도 푹- 잘 못 자는 편이라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을 때면 항상 위부터 아파왔다. 그때만 해도 2~3일 조심해서 부드러운 음식을 먹으면서 약을 챙겨 먹으면 깔끔하게 회복이 됐었다. 그렇게 자주 위통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건강 관리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지금까지 나의 건강 악화 그래프에서 절정을 찍은 건 서울에서 회사 생활을 하던 27살 때랑 세계 여행과 호주 워홀을 마치고 잠시 한국에 들어왔던 30살 때다. 신기한 건 두 번 다 같은 증상과 같은 병명이었다. 비정상적으로 체내 염증 수치가 높아지면서 평소 무리하던 부위로 염증이 터져 부어올랐었다. 3~4년 동안 바리스타로 하루 9시간씩 일했었기에 염증이 손목과 발목 그리고 무릎의 인대와 근육에 터진 것이다. 염증은 대부분 피부나 몸 안에서 생기기 때문에 이렇게 근육과 인대에서 붓는 경우가 생소하겠지만 뼈가 부러진 것과 똑같이 깁스를 해야 하고 그 부위를 아예 움직이지 못한다. (힘을 주면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오기 때문에)
27살 때 몸을 회복하는 데 6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30살 때는 증상이 더 심해서 아예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고 총 회복 기간은 3개월이 걸렸다. 특히 27살 때 한쪽 손, 한쪽 발목, 무릎에 깁스를 차고 처음으로 휠체어 위에 앉았을 때, 그 당시에는 '왜 20대 때 나는 건강 관리를 하지 않았는지, 왜 그렇게 불규칙하게 먹고 다녔는지, 운동은 왜 안 했는지' 후회를 했다. 하지만 그런 후회도 잠시였고, 마음속으로 굳은 다짐을 했다. '진짜 이제 건강 관리해야겠다. 먹는 것도 건강하게 먹고 운동도 정말 열심히 해야지!'
하지만 3년 뒤, 30살의 나는 그보다 더 좋지 않은 건강 상태가 된 후, 그 전과 같은 후회를 반복하고 있었다.
'조금만 내가 빨리 건강 관리를 했다면, 대학생 때 그렇게 위장을 버리지 않았다면, 3년 전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그 회사를 그때 관뒀더라면, 호주 가서 그렇게 너무 무리해서 일하지 않았다면, 주변 사람들 말을 듣고 매일 운동을 열심히 했다면'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아프지 않지 않았을까.
매일매일 뭔가를 반복해서 한다는 것, 그것도 몸에 좋은 행동들을 한다는 것은 보통 의지로는 유지될 수 없다. 습관으로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머릿속에서 '편안한 게으름'과 '불편한 부지런함'이 계속해서 싸운다. '사람은 다 자기 자신이 직접 겪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한 번 겪어서는 몰랐다. 자잘 자잘 여러 번을 겪고, 크게 한 번 겪고, 두 번째로 더 큰 고통을 겪고 나서야 '건강의 소중함'에 대해 안 것이다.
그런데 나도 사람인지라 지금 당장 내 앞에 도톰한 제주 흑돼지가 노릇노릇 불 판 위에서 구워지고 있고 그 옆에는 투명색 병에 담긴 21도 한라산 소주가 있다면, 규칙이고 나발이고 일단은 고기 한 점을 액젓에 '콕' 찍어 입으로 넣은 후 소주잔에 소주를 '골골골' 따라 한 입에 사악 털어버릴 것 같다. 이제 아팠던 그 고통은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남아있어서 억지로 상기시켜야 하지만 눈 앞에 보이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에서 바로 느낄 수 있는 온갖 고소함과 짭짤함은 과거가 아닌 현재니까. 지난 고통과 후회를 머리와 가슴속에 아무리 진하게 새겼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망각의 동물 아니던가.
맞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한다. 나는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일부러 1년 전 봄, '혼자서 화장실만이라도 갈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나를 떠올린다. 그리고 곧장 그때 일부러 한쪽 손으로 겨우겨우 찍어놓은 깁스를 하고 있는 내 팔목 사진을 찾아본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 전, 27살 때도 신기하리만큼 비슷한 각도로 찍어놓은 또 다른 쪽의 팔목 깁스 사진을 본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린다.
'지금 또 무너지고 나서 후회하지 말자. 지금부터 잘 관리하면 오랫동안 건강하게 하고 싶은 거 하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살 수 있어.'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이어서 같은 후회를 반복하며 배운 것이 있다면, 지나간 후회를 그저 흘러가게 잊히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똑같은 후회를 한 번 더 겪게 된다면 아마 지나온 후회보다는 더욱 그 아픔과 상처가 클 것이다. 지난 후회에 얽매여 갇혀 살지는 말아야 하되, 우리는 후회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가슴이 아프고 뼈가 저릴 정도로 후회가 아프다 할지라도 그 후회를 직시하고, 그 후회를 인정하고, 그다음 후회를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후회를 꾸준히 관리하며 그 후회를 줄이고 없앨 수 있다면, 분명 그때 우리는 한층 더 성장해 있을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20년의 후회를 돌아보고 그 후회를 앞으로 꾸준히 잘 관리해서
우리 모두 다가 올 2021년에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요.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자분들의 따뜻한 관심과 응원은 글 쓰는 제게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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