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장점이 단점으로 느껴질 때

#08. 우리가 반했던 그 사람의 장점은 결국 그 사람의 단점과 같다.

by 기록하는 슬기


일주일 전, 친한 동생 K는 꽤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묵직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요즘 그녀에게 남자 친구에 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둘은 이제 만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점점 K는 남자 친구의 단점만이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남자 친구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녀를 먼저 짝사랑을 해왔고, 사귄 후에도 한결같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했다. K는 그런 남자 친구의 마음을 알기에 일부러 남자 친구의 단점으로 보이는 점들을 안 보려고 하고, 신경이 쓰였다 할지라도 흘려보내려고 노력하는데도 잘 안된다며 속상하다고 말했다.


나는 K에게 남자 친구의 어떤 부분이 자꾸 부정적으로 보이는 건지 조금 더 자세히 물어봤다. 이야기를 쭉 듣고 나니 대부분 남자 친구의 단점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대부분 K의 성격과는 정반대 되는 것들이었다. 솔직하고, 직설적이고, 성격이 급한 K와 반대로 남자 친구는 조심스럽고, 생각이 많고, 그래서 늘 뭔가 행동이 느렸다. 그리고 그녀를 짝사랑했던 기간이 길었고, 그 과정에서 예전에 받은 상처 때문인지 가끔 그녀에게 소극적이고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불현듯 불과 8개월 전 K는 내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 오던 그녀의 들뜬 목소리가 떠올랐다. 뜬금없는 그녀의 연애 소식에 나는 놀란 목소리로 "그.. 그.. 너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그분? 그분이랑 사귄다고? 너 그분 네 스타일 아니라고 계속 거절했었잖아."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묻지도 않은 남자 친구 자랑을 한참을 늘어놓았었다. "알고 보니까 남자 친구는 저랑 다르게 엄청 차분하고 신중해요. 그래서 그런가. 그 사람이랑 있으면 안정감이 느껴져서 좋아요. 이렇게 나 오랫동안 좋아한 것도 그렇고.. 나처럼 감정적이고 즉흥적이지 않아서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이대로 내버려 두면 남자 친구 자랑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내가 중간에 커트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처음 반했을 때 그 마음이 영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너무 쉽게 그 빛이 사라지지 않기를. <사진 : 2020. 11. 제주 서귀포>



참 재미있는 건 8개월 전 그녀가 말했던 남자 친구의 장점과 일주일 전 그녀가 말했던 남자 친구의 단점은 결국은 같다는 것이다. 물론 같은 행동과 표현일지라도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해석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행동과 표현 모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 '그 사람'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했던 그 사람의 어떤 성격과 성향이 어떤 상황에서는 더욱 빛을 발하고 멋져 보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다른 상황에서는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어떤 성향과 그로 인한 어떤 태도와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그 근본'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이런 점은 비단 남녀 관계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가 좋은 감정을 가지고 맺고 있는 모든 관계에 적용될 수 있다. 특히 성인이 된 후에 친해진 관계는 더욱 그러하다. 분명 내가 그 사람에게 느꼈던 좋은 점, 멋진 점, 배우고 싶은 점이 어느 순간부터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되기도 한다. 관계가 시작할 땐 '나에게 없어서, 나와 달라서 좋았던 점'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나와 달라서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한 점'으로 변해 있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 있는 이 곳, 제주에서 오래전 만났던 한 사람이 떠오른다. 7년 전, 제주도 어느 게스트 하우스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한 살 많은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와 나는 여행과 술을 좋아한다는 그 공통점에 첫 만남부터 쿵짝이 잘 맞았었다. 육지에 올라가서도 자주 만나면서 근 3년 동안 그 인연을 이어나갔었다. 나와 달리 직설적이고 솔직한 언니의 성격이 좋았고, 언니는 반대로 잘 받아주고 잘 참는 내 성격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꽤 가까워진 후 언니는 술기운에 자주 이런 말을 했다. "슬기야. 너는 왜 이렇게 다 친절해? 가끔은 가식 같을 때도 있어. 그만 좀 참아. 보는 내가 답답해." 신기한 건 그로부터 1년 전 언니는 "너는 어떻게 이렇게 침착하고 잘 참아? 난 그런 네 성격이 너무 부럽고 배우고 싶어.."라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동시에 미워할 수 있는 이유도 생기는 일. <사진 : 2018. 06. 호주 퍼스>



사람은 다 생각하는 대로 보인다. 그리고 내가 보이는 대로 믿는다. 그래서 항상 그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K에게 나는 한때 K처럼 누군가의 장점이 단점으로만 보였던 경험과 반대로 누군가가 나의 장점을 단점으로 바라봤던 경험을 차분히 이야기해줬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느냐보다 내가 지금까지 바라보고 느껴 온 '그 사람' 자체에 대한 나의 감정과 생각이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나'라는 사람도 때때로 변하고 스스로 알지 못했던 내 모습을 만나기도 하지 않나. 결국은 '사람' 자체, 그 본질에 대한 내 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이성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좋아하는 '그 사람'의 장점은 언젠가 단점이 될 수도 있고, 거꾸로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너무 쉽게 장점을 장점으로만, 단점을 단점으로만 단편적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또한 누군가를 바라볼 때 그러지 않으려고 무지하게 애쓰고 있다.






여전히 마음이 정리되지 않는 듯 보이는 K에게 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 상대방의 단점이 너에게 상처를 주고, 너를 아프게 한다면 그건 더 이상 만나면 안 되는 관계인 건 분명해. 하지만 그 단점이 너를 조금 귀찮게 하고, 네 마음에 조금 안 드는 정도라면 난 네가 조금 더 노력해봤으면 좋겠어. 너무 쉽게 그 사람을, 그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도 일단은 이 관계를 지키고 싶은 거잖아.

글쎄. 이미 내가 너무 많이 쉽게 사람을 보내보고, 떠나와서 그런 걸까. 그렇게 쉽게 손을 다 놓고 나니까 다시 누군가의 손을 잡는다는 게 이젠 상상조차 못 할 정도로 어려워.

그러니까 있잖아.. 너는 어렵게 잡은 그 손, 너무 쉽게 너무 가볍게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처럼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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