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라는 말 뒤에 가려진 것들

#10. 이제야 보이는 재능의 가치와 꿈의 가치

by 기록하는 슬기


돌이켜보면 중 고등학생 때부터 나는 음악을 한다거나 글을 쓴다거나 그림을 그린다거나 이렇게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특히 중 고등학생 시절 내 감수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라디오 때문인지 당시 즐겨 듣던 라디오의 DJ 언니, 오빠는 나의 이상향이자 이상형 같은 존재였다. 그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라디오 DJ들의 직업은 가수였고(이소라와 성시경 프로그램 광팬이었다.), 요일마다 나오는 고정 게스트들 또한 작곡가, 작사가, 작가, 칼럼니스트여서 그런지 자연스레 이쪽 분야에 대해 관심이 많았었다.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다양한 인터뷰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많은 예술가들은 어느 순간 영감이 딱! 하고 떠오를 때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었다. 길을 걷다가 멜로디가 떠올라서 휴대폰 녹음 기능에 육성으로 직접 “음~~~ 음~음음으으음~~” 이렇게 작곡을 하기도 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어떤 영감이 쓱-하고 떠올라 테이블 위에 있던 냅킨에 급하게 글자를 휘갈겨 쓰면 그게 바로 시 한 편이 되는 줄 알았다. 왜냐면 내가 어렸을 때부터 보아 온 '예술가'라는 사람들은 그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천재'들이니까. 그래서 예술을 한다는 것, 무언가를 창작하는 것을 동경하는 동시에 '나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 꿈을 멀리서 바라만 보다가 방황의 시간을 거친 후, 결국에는 글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글에만 몰입한 지 1년 6개월 정도 됐다. 그 시간 동안 매일매일 무언가를 쓰든 안 쓰든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노려보며 셀 수 없이 길고 짧은 한숨들을 쉬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어떤 작품이든 갑자기 몇 분만에 후다닥 완성되는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이다. 몇몇 예술가들이 인터뷰에서 "이 작품은 30분 만에 완성한 거예요. 저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좋아할지 몰랐어요."라고 말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그 예술가가 30분 만에 그 작품을 완성하기 전에 얼마나 길고 긴 시간 동안 피아노 앞에서, 캔버스 앞에서, 노트북 앞에서 고뇌하고, 한숨 쉬고, 인상을 쓰고, 머리를 헝클였어야 했는지를.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예요.'라고. 그만큼 글을 쓴다는 것, 어떤 것을 창작한다는 것에 있어서 끈기와 인내, 근성은 기본이다. 책상에 앉아 어떤 문장을 쓰든 안 쓰든 일단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는 순간부터 머리는 이미 글을 쓰기 위해 작동되고 있다. 소재를 찾기 위해 예전에 적어놓았던 메모장과 일기장을 뒤적거려보기도 하고, 사진첩을 열어보기도 한다. 어떤 날은 순조롭게 글이 써지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단 한 문단도 완성시키지 못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날은 한 편의 글을 완성했다가 모두 다 지우기도 한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 집중하는 시간을 비슷하다 할지라도 매번 결과물은 천차만별이다.




노트북과 빼곡한 글자 앞에서 나는 괴롭지만 동시에 마음이 가장 편안한 사람이라는 거. <사진 : 2020. 08. 방구석 작업실>



어느 날 친구와 했던 대화에서 글의 소재를 찾았던 나는 글을 완성하고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번에 네가 카페에서 얘기할 때 말했던 이야기 있잖아. 거기서 딱 힌트를 얻어서 이렇게 글 써봤어. 한 번 읽어봐."

친구는 자신의 대화 내용 중 작은 어떤 부분이 하나의 글이 된 게 신기한지 연신 놀라며 내게 말했다.

"와 역시.. 가만 보면 너도 이런 재능은 타고난 것 같아. 어떻게 이렇게 사소한 데에서 영감을 받아서 뚝딱 글 한편을 완성해? 정말 대단해."


분명 친구가 내게 이 말을 한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내 기분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만약에 내가 이 글을 '뚝딱' 완성했다면, 정말 단 한 시간 동안만 이 글에 대해 생각하고, 이 글을 쓰고, 수정을 마쳤다면, 친구가 내게 한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을 수도 있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그동안 내가 하나의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고,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고를 반복하며 노력한 내 시간과 정성이 '재능'이라는 짧은 한 단어로 가려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쉼 없이 뱉어냈던 깊은 한 숨과 점점 진해져 가는 미간 사이의 주름이 듣기에는 서운했다.







나도 이렇게 글 쓰는 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친구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봤었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6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매일 '글' 앞에서 무너지고 다시 일어났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대중에게 유명한 예술가들은 그동안 '천재'라는 말 뒤로, '재능'이라는 말 뒤로 얼마나 길고 깊고 진한 '그들의 노력과 그 시간들'이 가려졌던 걸까.

그렇다면 지금 알려지지 않았지만 꾸준히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지금까지 그들의 노력, 인내, 그리고 재능마저도 가려져 있는 것이 아닐까. 도대체 그들에게는 어떤 것이 그들의 끈기와 노력을 지탱해주는 걸까.



분명 어떤 일이든 어느 정도의 타고난 재능은 있다. 나는 재능이라는 느끼한 단어보다는 '감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사람이 타고나는 감각은 제각각 다르다. 그 감각을 스스로 알고, 그 감각을 살려서, 자신의 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사실 힘들다. 굳이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미 자기 자신이 지닌 감각을 알았다면, 그 감각으로 무언가 세상에 필요한 일을 했다면, 그 사람은 쉽사리 그 감각을 놓고 살 수 없다. 그 감각을 자꾸만 쓰고 싶고,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는 그 일을 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건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가치'이자 '보람'이니까.


그걸 알기에 당장은 유명하지 않더라도, 돈이 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버틸 수 있는 것 아닐까.

조금 바꿔서 생각해보면, 지금 이미 그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나처럼 노력이니 재능이니 하는 것조차 의미를 두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의 삶의 가치는 그저 자신의 감각을 쓰고, 그 감각으로 세상에 필요한 일을 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즐기는 것, 그것뿐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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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서 1일 1 글 프로젝트를 시작 한지 딱 10일째입니다.

매일매일 글을 쓰고 발행까지 마쳐야 한다는 압박감이 저를 고단하게 만들지만,

이번 1일 1 글 프로젝트를 계기로 제 글을 매일 기다려주시고 관심 갖고 읽어주시고 느껴주시는 독자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저는 이것만으로 이 프로젝트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누군가가 제 글을 찾아준다는 것만으로 제게 글 쓸 이유는 충분해요.


아직 멀었지만 그럼에도 아주 조금씩은 알 것 같아요.

저의 이 감각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줄 수 있고, 위로해줄 수 있다는 것을요.

그러니 앞으로도 쭉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 될게요.

제게 꿈의 가치를 느끼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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