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행을 그리워하는 진짜 이유

#11. 잊혀도 좋아. 내가 잊지 않으면 되니까.

by 기록하는 슬기


며칠 전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 지인이 회사 출장 때문에 베트남을 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지인분도 지난 장기 여행을 통해 알게 된 분이라 그런지 이 시국에, '일' 때문이지만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가는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설렌다고 했다. 그런데 그 지인이 올린 사진은 '설렘'과는 멀어 보였다. 사진 속에 나온 사람들은 우리나라 의료진이 입는 방호복을 입은 채로 모든 이동을 하는 듯 보였고, 그분이 적은 글을 보니 입국 절차 또한 상당히 복잡해 보였다.


처음에 지인이 올린 '하늘이 보이는 비행기 창문 사진'만 봤을 때는 아무리 일 때문에 해외에 나간다고 할지언정 그 자체가 부러웠다. 이미 장기 여행과 잦은 여행으로 인해 몸속에 여행 DNA가 생겨버린 사람들은 알 것이다. 누가 어디로, 어떻게 떠나느냐의 문제는 두 번째이고 일단 떠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그런데 그 부러움은 하루도 가지 않았다. 요즘 그 지인은 자가격리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면 말 그대로 호텔에서의 감옥 생활이 전부였다. 물론 자가격리 기간이 끝나면 회사에도 가고 일상생활을 하겠지만 그럼에도 전혀 부러울 것 같지는 않다.


내가 그리워하고, 지금 하고 싶은 건 말 그대로 '여행'이지, '외국'이라는 장소가 아니었던 것이다. 비행기를 타는 그 지인을 보며 잠시 부러워했던 이유는 자연스레 '내가 비행기를 탔을 때 그 감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당시 비행기를 타면 꼭 '두려움과 막막함 그보다 더 큰 설렘, 기대감'이 나를 압도했었으니까. 그리고 그 낯선 땅에서 뿜어져 나오는 습하고 뜨거운 열기는 정말 이제 낯선 곳에 '혼자' 있다는 기분과 함께 '자유'를 가져다줬다.


그리고 그때 느낀 '자유'를 또 다른 단어로 표현하자면 내게는 '익명성'이었다. 내가 낯선 나라에서 길을 걸으면 현지인과는 다른 외모 때문에 오히려 한눈에 관심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뿐이다. 나는 그곳에서 그저 키가 작은, 피부가 하얀,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모를 한 여자 여행자일 뿐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 같은 여행자 1, 여행자 2, 여행자 3 (...)들이 늘 그 길거리를 배회하기에 나란 사람은 쉽게 눈에 띄는 만큼 그만큼 쉽게 잊히기도 한다. 이것이 어쩌면 여행자의 숙명이라면 숙명이지만, 난 이런 관심과 잊힘을 즐겼다.




'여행자'라는 세 글자 덕분에 나는 진짜 내 이름 세 글자를 찾은 것 같다. <사진 : 지난 세계 여행 중 잊혀져도 좋을 순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나란 사람을 아예 모르기 때문에, 익명성이 짙기 때문에, 그렇다고 그곳에서 한국에서는 못 할 행동을 한 건 아니다. (한국에서도 하고 싶은 건 거의 다 하고 산다.) 익숙한 곳에 있는 나와 낯선 곳에서 만나는 내가 조금 다른 점은 낯선 곳에서 나는 조금 더 가벼웠고, 조금 더 솔직했다는 것이다. 드디어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몸도 마음도 편했다. 처음에는 그런 내 모습이 조금 낯설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게 진짜 내 모습 중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익숙한 사회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매일 쓰고 있던 가면이 그제야 보인 것이다. (물론 그 가면을 쓴 내 모습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기도 하다.)


안 그래도 여행 DNA를 지니고 있는 내가 이 시국 덕분에 요즘 더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어떤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행위가 아니다. 그곳에서 느끼는 그 낯섦과 자유, 그 안에서 마음껏 낯설어지는 내 모습이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그곳에서 만났던 누군가를 잊어갈 것을, 반대로 그 누군가가 나를 잊어갈 것을 한껏 두려워하면서도 그 순간에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는 내가 그립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나의 불안한 눈빛을 보면서도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그런 나를 그 순간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던 어떤 사람이 그립다. 내가 그리운 건 떠남으로써 만나게 되는 나의 감정들과 그 감정을 만들어주는 사람들, 그 순간에 몰입하던 내 모습이다.






지금도 나는 떠나와 있지만 더 먼 곳으로, 현지인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는 곳으로 떠나는 상상을 자주 하곤 한다.

한국은 겨울이지만 상상 속 그곳에서는 뜨겁고 습한 바람이 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간다.

눈 앞에는 제법 센 파도가 치고 그 파도 결 사이사이 주황빛 노을이 반사되어 반짝인다.

내 오른쪽 손에는 맥주병이 들려있다.

벌컥벌컥 맥주 반 병을 단숨에 들이켜고 모래사장 위에 털썩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내 왼쪽 손을 꼭 붙잡고 있는 누군가를 번갈아 바라본다.


그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정반대의 계절인 나라로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그날이 너무 늦지 않게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그때까지 나는 남몰래 이름 모를 어느 나라, 어느 도시로 떠나는 상상을 부지런히 해야겠다.

그리워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그리워할 누군가와의 감정을 나누기 위해,

그리워할 누군가와의 기억을 만들기 위해.




내게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라는 말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싶다.'라는 말이 아닐까. <사진 : 2018. 호주 퍼스>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매일매일 저는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테니 언제든 어떤 마음이라도 찾아주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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