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다 그런 거야"라는 말의 속뜻

#13. 여전히 그 말은 싫은데, 슬프지만 그 말의 속뜻을 알 것 같아.

by 기록하는 슬기


20대 중반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을 꼽으라면 고민 없이 바로 말할 수 있는 한 마디가 있다.

"원래 다 그런 거야."

회사에서도, 주변 지인들에게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자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다. 도대체 그 '원래'라는 게 뭔지, 그리고 뒤에 덧붙여지는 말들은 대부분 "그래도 너는 나보다는 낫지."와 같은 말이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자기가 더 힘들다는 말이었다. 당시에는 내가 직급으로나 나이로 막내이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을 꾹꾹 참기만 했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다짐했다. "앞으로 나는 저런 상사, 언니, 누나, 친구가 되지 말아야지."






얼마 전 사회생활을 뒤늦게 시작한 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요즘 자신이 어떤 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세세히 이야기를 해줬다. 그날 내게 전화를 건 진짜 목적은 단순히 '정보 전달'이 아니라 '하소연'이었다. 이야기 내내 빠지지 않고 하는 말은 "내가 이렇게 고생한다..", "내가 이렇게 먹고살아.."과 같은 말이었다. 나도 젊은 꼰대인 걸까. 당연히 그 일을 당장 겪고 있는 당사자는 요즘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느라 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많이 지칠 것이다. 당사자만큼 힘든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 친구가 그렇게 힘들게 일한다고 묘사한 환경은 20대 때 알바를 몇 번만 해봤더라도 겪는 경험인 것 같았다.


같은 상황에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일의 강도와 그 고단함은 다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힘들겠다.. 고생한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냐면 지금까지 그 친구를 포함하여 여러 지인들의 이야기를 항상 그렇게 진심으로 들어주고 느껴주고 공감해준 후에도 그들은 늘 같은 고민을 들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고민의 굴레 그 속에 있는 당사자도 힘들겠지만 그 이야기를 매 번 들어주는 사람도 지치는 건 어쩔 수 없다.


"원래 다 그런 거야."라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정말 그 말을 하고 싶기도 했다. "내가 겪은 경험이 더 힘들었어. 네가 겪은 건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의미에서보다 "슬프지만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려면 이 정도는 견뎌낼 수 있어야 해. 그러니 조금 더 덤덤해지자."라는 의미에서 그 말을 하고 싶었다. 내 주관적인 생각으로 삶을 살아낸다는 것 자체는 힘겹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책임지기 위해 어떤 일을 하든 고생스럽지 않은 일은 없다. 저마다 각자의 고민이 있고, 또 보이지 않는 상처도 있다. 다들 참고 털어내면서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삶은 더욱 빛나는 것이다. 사람마다 겉에서 보이는 것보다 더욱 값진 시간들이 쌓여있는 것이기에.



DSC00112dd.jpg 삶이란 건 고달프기 때문에 저마다의 인생은 더욱 빛나는 게 아닐까. <사진 : 2020. 11. 제주 서귀포>




요즘 들어 가까운 사람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 힘든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실 어떻게 이야기해줘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된다. 잘못 말했다가 상처 난 곳에 또 상처를 줄 수 있으니 최대한 말을 조심하게 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주 가끔은 냉정하게 말할 때가 있다. 무조건적인 공감과 맞장구가 그 사람에게 달콤한 마취제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아니, 돌아보면 그동안 나는 진심으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를 듣는다는 명목 하에 계속 그 마취제와 같이 상대방이 듣기 좋은 말만 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에는 주변에 대부분 이성적이고 냉정한 성향의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예전부터 힘들었던 이야기를 잘하지 않게 되었다. 그 당시에 답답한 마음에 가끔 용기를 내서 말을 하면 "원래 그런 거야." 같은 말이 돌아오니 더욱 입을 다물게 됐다. 그때는 서럽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때 혼자서 그 시간을 보내고 견뎌내고 나니 이제 나는 더욱 홀가분하다. 꼭 누구 때문에 버티는 게 아니고, 꼭 누구의 말 한마디를 들어야 일어설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홀로 견뎌낸 시간 덕분에 알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무책임하게 들리던 "원래 다 그런 거야."라는 그 한 마디가 이제 아주 조금은 그 말의 속 뜻을 알 것 같다. 그 말을 해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사람이 하는 하소연을 듣기 싫어서 무책임하게 한 말일지라도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아꼈기에 그 말을 했던 사람들도 소수이지만 있을 것 같다. (지금 어렴풋이 몇 명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마 그들은 내가 조금 더 강해지기를,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조금은 덜 흔들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물론 아직도 "원래 다 그런 거야."라는 이 말은 싫어한다. 그 속 뜻이 어떻게 됐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딱 좋은 표현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비슷한 고민을 들고 나를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면 이번에는 이렇게 말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길게 살아보진 않았지만, 이제는 알잖아. '원래' 인생이 참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거. 지치고 힘들겠지만 이제는 조금씩 단단해지자. 어쩌면 삶은 똑같은 강도로 우리를 괴롭힐 수도 있어. 하지만 우리가 자꾸 그 앞에서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점점 약해진다면 더 삶이 더 힘들게만 느껴지지지 않을까?

그냥 우리 조금만 더 세상 앞에서, 타인 앞에서 덤덤해지자. 조금만 더 당당해지자."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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