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이 타이밍을 이길 수 있을까?

#15. 인연이란 이유모를 타이밍과 운명의 과정이자 결과인 걸까.

by 기록하는 슬기


내가 지금까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운영해오고 있는 sns는 블로그다. 물론 작년 여름부터는 브런치에 온 마음과 정신을 쏟고 있기 때문에 블로그에 새 글은 잘해야 2~3주에 한 번 올라가고 있지만 8년 차 블로거로서 그 애정은 여전하다. 요즘이야 대부분의 블로그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블로그라는 플랫폼이 막 시작되던 초창기만 하더라도 블로그를 일종의 싸이월드, 지금으로 치면 인스타그램처럼 개인의 글과 사진을 올리기 위해 운영하던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특히 블로그에는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가 담긴 이야기들을 많이 올렸기 때문에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서로 이웃(맞팔)을 맺곤 했다. 지금도 내게는 그 당시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인연들과 아직도 연락을 해오고 있고, 그중에는 사이버 친구가 아닌 실제로 만난 오프라인 진짜 친구로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블로그로 오랫동안 소통했다고 모든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는 건 아니지만 그중에서는 특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 딱 한 분, 여전히 만나지 못 한 분이 계시다.


그분은 나보다 몇 년 빨리 퇴사를 하셨고, 세계 여행-호주 워홀의 과정을 거치셨기에 그분과 나 사이에는 비슷한 경험을 공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끈끈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서로의 일상과 새로운 도전을 블로그로만 바라보며 소통하고 응원해 온지 어느덧 5년 정도 되었다. 그분과 나는 줄곧 서로 다른 나라에 있다가 작년에 처음으로 동시에 한국에 있었다. 국내에서도 서로 그리 먼 거리에서 살던 게 아니라 그분과 나는 "이번에는 꼭 만나자! 다음 달 즈음에 서울에서 한 번 보자."라는 약속을 자주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분과의 약속은 계속 타이밍이 어긋났다. 이유가 어찌 됐든 지금까지 우리의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사실 모든 sns를 통틀어서, 실제로 알고 지내는 분들을 포함해도 그분만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은 없을 정도로 그분은 내가 가장 만나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무리 인터넷 상이라고 할지라도 5년 넘는 시간 동안 그분의 생각이 담긴 글을 읽고, 무엇보다 자신이 뱉은 말을 책임지고 실행하고 결국은 해내는 그분의 과정을 모니터 너머 지켜보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재 나도 보편적인 삶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약해질 때도 많았고, 포기하고 싶은 때도 많았는데 묵묵히 해내는 그분을 보며 견딜 수 있었고, 배웠고, 지금도 여전히 배우고 있다.


그분을 꼭 만나고 싶은 내 마음은 이렇게 간절하고, 그분 또한 나를 응원하시고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시는데 왜 이렇게도 우리는 만나기가 힘든 걸까. 자꾸만 그 분과의 엇갈림이 반복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분과 나는 실제로 만날 인연이 아닌가?'

'그냥 나는 그 분하고 이렇게 온라인으로만 연락할 인연인 건가?'

'더 간절하고, 더 노력을 해야 만날 수 있는 인연인 건가?'




P20170928_214055066_5C248606-BC90-432D-9461-215AC6C0311Eddddddd.jpg 노력해야 하는 인연과 노력이 필요 없는 인연은 따로 있는 걸까. <사진 : 2017. 09. 인도, 우다이푸르>


그리고 '실제로 만나고 있는 나의 인연들'이 떠올랐다. 곧이어 그 인연들과의 '시작'이 어땠는지 생각해봤다. 동네 친구들의 경우에는 모두 다 같은 학교, 같은 반이었기에 알게 되고 친해지게 된 것이고, 성인이 된 후 만난 친구들은 같은 대학교-같은 과였거나, 같은 곳에서 일을 하다가 만나게 되거나, 장기 여행 때는 같은 지역에서 우연히 만나게 됐었다. 단순히 그들과의 '인연' 그 시작만을 놓고 보면 모두 다 같은 시기에 같은 곳에서 우연히 만났었다. 그들도, 나도 따로 우리의 인연이 성사되기 위해서 딱히 어떠한 '노력'을 한 것은 없다. 학교를 가야 하니까 학교를 간 것이고, 돈을 벌어야 하니까 일을 했던 것이고, 여행을 떠났는데 같은 때 같은 나라에서 만난 거니까.


어떻게 보면 블로그나 브런치와 같은 플랫폼에서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클릭을 해서 어떤 한 계정을 알게 되고, 점점 그 계정의 글과 사진을 보면서 그 계정의 주인인 한 사람을 알게 된다는 것 또한 우연히 같은 동네,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만난 친구와 같이 '우연'이 만들어준 인연이기도 하다. 하지만 온라인에서의 우연은 나의 취향과 관심을 고려해서 선택할 수 있다. 우연히 알고리즘이 어떤 블로그를 노출시켜줬다 할지라도 그 글이 내 취향과 거리가 멀다면 그저 스쳐가는 한 페이지 일 뿐이다.


맞다. 오프라인에서도, 온라인에서도 어느 정도의 취향과 관심사가 맞아야 그 인연이 유지가 된다. 하지만 그 인연에 시작에는 '우연'이라는 말이 빠질 수는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아주 뻔한 한 마디가 자연스레 내 머릿속에 진하게 떠오른다.

"모든 인연은 타이밍이야."

이 말은 꼭 남녀 관계에 국한되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게 되는, 어떤 관계든 맺고 지내게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절실한 마음과 그 행동이 타이밍을 이길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갖고 있기에 모든 인연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조금은 슬프게 들린다.

그런데 조금 더 슬픈 건 이제는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타이밍, 운명'과 같은 것들이 다른 건 몰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고, 겪고 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 사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얼마나 좋아했는지, 얼마나 원했는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이런 것들보다 늘 소리 없는 '우연'이 먼저였고, 나와 상대방을 둘러싼 세상의 '타이밍'이 결정지었고, 아무런 이유도 없는 '운명'이란 놈이 끝을 냈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인연과 인생은 재밌다.

이미 끝이라고 생각했던 운명이 어느 날 또 다른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이제 찾았다고 생각한 운명은 어느 날 또 다른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지기도 하니까.

그래서 궁금하다.

앞으로 내게 다가올 우연과 운명이 누구를 데리고 올지, 아예 모르던 사람일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일지.

알 수 없는 우연과 운명, 그 안에 인연이 기대된다.



그나저나 정말 만나고 싶은 그 블로거 분과 나는 언제 실제로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동안의 엇갈림의 이유가 뭐였는지 궁금하다.

어차피 모든 타이밍이자 운명은 늘 그랬듯 아무 이유 없겠지만.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자분들의 공감과 응원은 글 쓰는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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