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여행'이 '꿈'이 되어버린 어느 여행자의 마음
코로나 19가 단숨에 바꿔놓은 세상과 일상을 맞닥뜨릴 때마다 드는 생각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할 수 있었을 때 미루지 말고 했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과 "그래도 코로나 19 이전에 해봐서 다행이야."라는 생각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것은 대부분 여러 사람이 모여야 하는 활동인데,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와 매년 늦봄에서 여름에 열리는 록 페스티벌 같은 공연을 가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아쉽다. 그 당시에는 충분히 갈 수 있었고, 즐길 수 있었던 활동들이 이제는 꿈같은 이야기가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그리고 후자에 해당하는 것을 말하라면 단연코 '장기 여행'과 '해외 생활'이다. 세계 여행이라는 꿈을 품게 된 건 20대 초중반부터였고, 실제로 여행을 떠난 시기는 20대 후반이었다. 그때도 사실 원래 내 여행 계획보다도 2~3년 정도 늦춰진 상황이었다. 그렇게 미룰 수 있던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언제든 다른 나라로 떠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만 준비된다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시대가 영원할 줄 알았다.
어찌 됐든 나는 2017년에 장기 여행을 시작했고, 2018년에는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며 생활했다. 그 이후의 내 계획대로라면 2019년은 호주에서 1년 더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돈을 모은 후 2017년 때 가지 못했던 대륙을 위주로 장기 여행을 이어서 하려고 했었다. 결과적으로 2019년에는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건강의 문제로 인해 모든 계획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렸다. 그리고 맞이 하게 된 2020년 1월 초, 건강을 회복한 나는 2~3개월 간의 배낭여행을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2~3주 뒤, 우리에게 '여행'이란 단어는 '실현 가능성이 사라진 허황된 꿈'의 단어가 되어버렸다.
주변의 지인들은 내게 말한다. "너는 그래도 코로나 전에 하고 싶던 장기여행도 하고 워홀도 해서 다행이다. 나도 너처럼 여행이 지겨울 정도로 한 번 해볼걸. 후회돼."
맞다.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몇 년 뒤 사라진다 해도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이전과 같은 자유 여행은 앞으로는 힘들 것이라고 한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과 같은 방, 같은 화장실을 쓰며 며칠 밤을 함께 묵기도 하고, 우연히 만난 여행자와 밥과 커피를 함께 먹으며 어설픈 영어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던 이런 경계심 없는 우연 투성이들의 여행은 힘들 거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정말로 '다행이다' 싶다. 원래 내 여행 계획대로 다 이루진 못했지만 어찌 됐건 1년 7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안전하게 즐겁게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으니까. 그런데 지인들의 예상과는 달리 나는 아직도 여행이 전혀 지겹지 않다. 오히려 '과연 여행이 지겨워질 수 있을까?'라는 풀리지 않는 의문만이 내게 남아있을 뿐이다. 지난 장기 여행 중 친해졌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 자연스레 '여행'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때 나는 가끔 물어본다.
"얼마나 더 여행을 해야 더 이상 떠나고 싶지 않을까?"
나보다 더 오랜 시간 길 위에 있던 몇몇의 친구들이 말해주길, 예전에는 잠시 '이쯤이면 충분하지. 이 정도 여행했으면 됐지.'라는 착각을 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강제적으로 여행이라는 행위를 못 하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했다. 원래 사람은 언제든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 언제든 가질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 안일해지지 않나. 못 가지게 되고, 그것이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 대상에 대한 나의 진심을 들킬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질문에 대답해줬다.
"이미 '여행자'가 되어버린 사람에게는 여행의 끝은 없는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여행에 대한 나의 진심은 위에 두 생각에 모두 해당되는 것 같다. "할 수 있었을 때 미루지 말고 했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과 "그래도 코로나 19 이전에 해봐서 다행이야."라는 생각. 전자의 이유로는 '20대 중반에 미루지 않고 조금 더 빨리 여행을 시작했다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미련보다는 적은 미련이 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더 어린 나이에 더 빨리 여행을 시작해서 더 긴 시간 동안 더 많은 곳을 여행했다면 조금은 덜 아쉬워하지는.. 안.. 을까?라는 문장을 쓰고 보니 자신이 없다. 왠지 '더' 아쉬워할 것 같다.
이미 몸속에 여행 DNA, 방랑 DNA가 심어진 사람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여행'을 떠올리면 설레기 때문에, 즐겁기 때문에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본능 중 하나 같이 머리와 마음에 자리를 잡아버린 것이다.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매번 자는 곳의 천장 색깔이 바뀌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사람, 알아들을 수 없는 현지인의 언어가 가끔은 더욱 편안한 사람, 누군가 "그렇게 다녀놓고, 넌 아직도 여행이 좋아?"라고 묻는다면, "글쎄.."라고 말 끝을 흐리며 낡은 배낭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 이내 그 배낭에 짐을 꾸려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사람, 익숙한 곳이 잠시 낯선 곳이 될 때까지, 낯선 곳이 잠시 익숙한 곳이 될 때까지 떠나 있어야 하는 사람, 살기 위해 떠나는 사람. 이미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떠날 수 없다는 그 사실은 일상과 삶 속에 '이룰 수 있는 큰 꿈'이 사라진 것과 같다.
하지만 믿고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몰라도 우리가 '아직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것들'과 '이미 했음에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것들'을 오직 나의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그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지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후 느낀 우리의 진심'이다.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했었는지,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했었는지 알게 된 후 다짐했던 나의 절실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힘든 상황이지만 이 와중에 당연히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고 그 소중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지금도 우리는 충분히 당연한 것들 투성이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유독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아쉬움'이 '실현 가능한 꿈'이 되는 날이 하루빨리 찾아오길,
그날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때면 그때는 우리 모두 간절함을 지닌 채 그 꿈들을 지겨울 정도로 해봤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아니, 곧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읽어주시고 느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유이자 힘은 제 글을 찾아주시는 여러분입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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