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
고등학교 시절 친구 중에 유독 말을 빠르게 하는 친구 S가 있었다. S와 많은 시간을 붙어있다 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오랜만에 S를 만나서 대화를 할 때면 중간에 통역을 하는 친구가 한 명 더 필요할 정도로 말이 빠르고 발음이 부정확해서 대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S와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고 우연히 짝꿍이 됐었다. 그렇게 S와 나는 자연스레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S의 말이 빠르다는 것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가족들과 다 같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이야기 나누고 있던 주제에 대해 나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빠가 말씀하셨다.
"슬기야. 방금 네가 말을 너무 빨리해서 아빠는 방금 네가 말 한 내용을 잘 못 알아들었어."
아빠의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지금 내가 한 말투, 억양, 속도 모두 닮기 싫었던 S의 것과 똑같았다.
이런 경험은 아마 원하든 원치 않든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가장 가까이 지내는 사람의 말투, 행동, 습관을 나도 모르는 사이 똑같이 따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때 생긴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도 심심하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찬찬히 운전하는 모습은 아빠가 운전하는 모습과 똑 닮았고, 어린 시절부터 대화를 가장 많이 했던 친오빠와 나의 실제 대화하는 말투가 남녀의 목소리만 다를 뿐이지 완전히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지금도 노트북이나 PC 앞에서 볼펜을 오른 속으로 뱅뱅뱅 돌린 후 책상에 탁탁탁 소리를 내는 것은 이전 팀장님의 습관이다.
지금 내가 하는 말투, 행동을 가만히 살펴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가까운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학습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보고 배웠다고 말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만나고 소통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내게 묻어있는 것이다. 반대로 나의 흔적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씩 묻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언행과 습관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곁에 좋은 사람을 두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정말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중에 내가 생각하기는 가장 큰 이유는 '무의식에서' 우리는 내 눈과 귀에 보이고 들리는 누군가의 모습을 닮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좋은' 사람이라는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타인이 누군가를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지라도 내가 느끼기에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느낀다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 좋은 사람을 정의하는 기준은 각자 다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단순히 함께 있을 때 즐거운 사람을 지칭한다기보다 내가 닮고 싶은 점이 많은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함께 하면서 늘 좋은 점만 보여줄 수 없고, 늘 서로에게 배울 점만 보여줄 수는 없다. 때로는 실망 하기도, 실망시키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서로에게 주고 있는 자극과 그 영향이 각자가 나아가는 발걸음을 늦추거나 방해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결국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건강한 관계'의 가장 첫 번째 조건은 내 인생을 책임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내 인생을 책임지고, 내 인생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만나게 되면 일단 각자 인생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인생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마음속 깊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배려할 수 있고 존중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라는 말 이전에 이렇게 말하고 싶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이전에 내 인생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라고.
어느 강연에서 들었는데 잊히지 않은 한 마디가 있다.
'현재 지금 나와 가장 가까이 지내고 있는 사람 다섯 명의 평균이 지금 나의 모습'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오랜 시간 소통하며 지내는 사람들과 나는 서로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내가 가깝게 지내는 누군가에 대해 어떤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면, 슬프지만 결국 그 모습이 나에게 있을 확률이 높다.
지금 나의 모습에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든 아니든 누군가들의 흔적들의 역사가 담겨있다. 그리고 나의 흔적 또한 누군가에게 쌓여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영향을 줄 것이다. 앞으로 긍정의 흔적을 닮고 싶은 사람을 곁에 두고 싶다면, 먼저 내가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는지 바라보자.
내가 누군가에게 긍정의 자극을 주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나 또한 그 사람에게 긍적의 자극을 받고 그 사람을 닮아가고 있을 것이고, 거꾸로 누군가에게 내가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 있지 않다면 나 또한 그 사람에게 부정적인 자극을 받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오래전부터 서로를 닮아왔고, 또 앞으로도 오래도록 서로를 닮아갈 것이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글과 이야기는 읽어주시고 느껴주시는 독자분들의 공감과 응원으로 완성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