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상처 '받은' 사람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아요.
브런치에서 열심히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네이버 블로그에는 한 달에 2~3번 정도 일상의 기록을 담은 글과 사진을 위주로 포스팅을 한다. 그럼에도 내 블로그의 유입경로를 보면 아직도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것은 '호주 워홀', '퍼스 워홀'에 관련된 포스팅이다. 호주에서 한국인들이 워홀을 가장 많이 하는 지역은 대부분 동쪽에 위치한 대도시나 그 근교 지방이기 때문에 서쪽의 도시인 '퍼스'에 대한 정보가 비교적 얼마 없기 때문에 내 글이 노출이 잘 됐었고, 여전히 잘 되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달 전쯤이었다. 포스팅한 지 이제는 2년 가까이 지난 워홀 일기에 장문의 댓글이 달렸다. 해당 포스팅은 다음과 같다. 당시 내가 호주 퍼스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던 카페 사장 부부가 인종 차별과 함께 인격적으로 사람에게 상처 주는 행동이 연이어져서 3개월간 참고 참다가 내가 그만두겠다고 2주 전에 미리 말했더니 그때부터 내 임금을 제대로 못 주겠다고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고, 나는 그에 대응해서 계속해서 싸우고 있던 중이었다. 그 당시에 내가 썼던 워홀 일기가 너무 사실적이라서 구독자분들이 함께 화도 내주시고 욕도 해주실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었다.
하지만 최근에 달린 그 장문의 댓글은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댓글은 남기신 분은 나보다 1년 먼저 퍼스에서 워홀을 하셨는데, 한국에 돌아온 후 가끔 퍼스가 그리워서 '퍼스 워홀'이라고 검색을 해서 최근에 워홀 하시는 분들 일상 글을 읽어보신다고 하셨다. 그러던 와중 내 블로그가 검색이 됐고 다른 블로그보다는 이야기 중심이었던 내 워홀 일기가 재밌어서 처음부터 쭉- 읽어오던 도중 그 카페 사건을 읽는데 내내 뭔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워홀이든 뭐든 해외에서 일을 하다 보면 외국인에게 사기를 치고 이용해 먹는 사람이 많다 보니 처음엔 자신이 겪은 일과 비슷한 일이 또 있나 보다 하고 넘겼다고 한다.
내가 블로그에 카페 이름이나 카페 사장의 실명은 남기지 않고 그 카페 사장 부부 둘 다 호주인들이 아니라 어린 시절 호주로 이민 온 사람들이라는 것과 카페가 있던 동네 이름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 정보를 보고 '설마 설마'하던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며 너무 신기하고도 끔찍하다며 댓글을 남기신 것이다. 우연의 일치로 댓글을 남긴 분도 나와 같은 카페에서 일하셨었고, 그때도 똑같이 워홀이나 학생 비자로 일하는 외국인들에게 차별을 했다고 한다. 특히나 임금 문제 또한 본인이 일할 때도 몇몇 (특히) 아시안 직원들에게 나와 똑같은 수법으로 괴롭혔다고 했다.
이 댓글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호주'라던가 '워홀'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몇 년 만에 같은 지역에서 워홀을 했던 한국 사람에 의해 떠오른 기억이 하필이면 나에게 상처 줬던 일을 선명히 상기시키는 기억,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비슷한 기억이라는 것이 나를 슬프고도 불쾌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다른 의미로 신기하기도 했다. 하필이면 그 많은 호주 지역 중에서 퍼스라는 곳에, 그리고 그 많은 카페 중에서 같은 카페라는 것도 신기했고, 그분이 많은 블로그 중에 내 블로그의 일기를 읽었다는 것도 신기했다.
이렇게 불쾌함과 신기함이 두서없이 엉켜있던 내 머릿속은 이내 마지막으로 한 줄로 정리가 됐다.
'이래서 사람은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해서는 안되는구나.. 결국 상처 받은 사람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구나.'
흔히들 '내가 남에게 잘못하면 그 잘못이 나에게 돌아온다.'라는 말을 듣고 한다. 살면서 이 명제에 대한 경험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사실 이 한 줄이 내 피부결에 와 닿을 만큼 현실적이거나 사실적이지는 않다. 그 '잘못'이라는 기준도 제각각 다를 수도 있고, 또 우리의 깊은 본능 속에서는 언제가 내게 다가올 상처, 피해가 두렵기 때문에 그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내가 타인에게 잘 못 했던 일들, 내가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줬던 일들을 애써 외면하곤 한다.
하지만 그 상처를 받은 사람들, 피해를 받은 사람들은 잊을 수 없다. 이미 마음속에, 그리고 심지어 몸 어딘가에 그 상처의 흔적은 남아있기 마련이니까. 나도 그 사장 부부 중에 여자 사장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유일하게 동양인이었던 나에게 소리 지르고 화내던 날 생긴 팔뚝의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다. 물론 그 경험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2년이 지난 지금, 내 팔뚝의 상처보다도 더욱 선명하다.
아마 나보다 1년 먼저 그 카페에서 일했던 그분의 상처 또한 그랬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그 나쁜 기억들, 아팠던 기억들을 잊고 좋았던 추억들을 안고 있다가 나의 글을 읽고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 상처의 흔적이 불쑥 튀어나왔을 것이다. 아마 그분 또한 나처럼 '불쾌함과 신기함' 어느 사이의 감정에서 갈팡질팡 하다가 결국은 '안타까움과 슬픔'의 감정으로 장문의 댓글을 남겼을 것이다.
가끔 이제는 덤덤하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아픔의 기억을 담은 기록들이 우연하게 나를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 당시 누군가에 의해, 어떤 것에 의해 아파하던 내가 떠올라 속상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 상처를 줬던 그 타인의 삶이 궁금해진다. '그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매일 그렇게 욕심을 부리면서 타인을 아프게 하고 괴롭혔던 그 사람들은 여전할까?'
음.. 아마 지금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 한 채로 그대로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확실한 건 그들과 임금 문제로 되지도 않는 영어로 말다툼을 할 그 당시에도, 그리고 그 일이 잊힌 것 같았던 2년 후의 지금도 전혀 그들이 두렵거나 무섭지 않다는 것이다. 그저 그런 사람들을 보면 상처 난 내 마음보다도, 아직도 흉터가 남아있는 오른쪽 팔뚝 어딘가에 얇게 몇 줄이 남은 자국보다도 더욱 안쓰러운 마음이 가득하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한심하다.
내가 타지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 하나는 각기 다른 이유로 그곳을 찾은 누군가를 애써 도와줄 필요도, 굳이 측은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텃세를 부린다거나 외면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그저 그들을 그냥 똑같은 사람으로 바라보고, 똑같이 대해야 한다는 것. 그것 하나는 제대로 배웠다.
안타까움, 안쓰러움의 눈빛도
너는 잘 모를 것이라는 얕은 어리석은 눈빛도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경계심의 눈빛도
언젠가 떠날 사람이라는 불안한 눈빛도
받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다 상처다.
아무런 의미 없이 그 당시 그 순간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그 눈빛으로 대해주길.
그 눈빛이 때론 그 어떤 눈빛보다도 따뜻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글과 이야기는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이 있을 때 '완성'이 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