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감정의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중입니다.
우리나라 사계절 중에 겨울을 유독 싫어하고, 힘들어하지만 이런 내게도 겨울이 좋은 이유는 하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발라드'를 가장 좋아했던 나로서 발라드의 계절인 늦가을과 한겨울에 양 쪽 귀만큼은 호강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발라드라는 음악 장르를 좋아한 건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였는데 사실 그땐 어떤 감정으로 그런 노래들을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이야 발라드를 들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먹먹하면서도 아련한 그 감정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발라드를 들으며 어떤 멜로디, 어떤 가사가 어느 순간 내 가슴을 툭-하고 건드릴 수 있는 힘은 아무래도 '공감'같다. 각자 지니고 있는 삶의 경험은 다르지만, 그 경험을 통해 느꼈던 '감정'이란 꽤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발라드를 제대로 가슴으로 느끼면서 듣기 시작한 건 20대가 되고 몇 번의 사랑과 이별을 겪은 후였다. 어떤 가사를 들을 때 '어? 이거 내 일기장에 썼던 내용이랑 비슷하네..', '와.. 어떻게 이 감정을 표현할 때 이런 단어를 쓰지?'라고 느꼈다는 건 내가 문자로 인식하지 못했던 나의 감정을 그 노래 속 가사가 이미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이번 연도에도 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던 10월 즈음해서 내가 좋아하는 발라드 가수들이 하나둘씩 명곡을 들고 컴백을 했다. 한 노래에 빠지면 거의 며칠 내내 그 노래만 듣고, 또 몇 개월이 지나도 그 노래를 다시 찾아 무한반복을 해서 듣는 나는 이번 가을, 겨울에도 어김없이 발라드만 듣고 있다. 그런데 이번 연도는 예전 가을, 겨울에 듣던 발라드와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노래는 여전히 애절했고, 오히려 가창력이나 감성적인 호소력은 더욱 무르익었는데 이상하게 그들의 노래를 듣는 나는 그 이전보다 덜 애절했고, 그들의 감성이 덜 와 닿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나도 모르게 내 음악 취향이 변한 걸까? 아니면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노래가 점점 뻔하다고 느끼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취향, 감성, 분위기 모두 그대로였다. 그저 변한 것이라고는 요 근래 겪은 나의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해 쌓인 감정일 뿐이었다.
지금의 내 모습과 어울리지 않지만 나도 사랑이 전부이던 시절도 있었고, 또 그 사랑을 놓치고 나서는 이별의 아픔과 후회가 전부였던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이별한 지 오래되어도 유독 잊히지 않던 어떤 사람과 미련, 미안함과 같은 감정이 전부인 시절도 있었다. 맞다. 이건 모두 다 과거의 이야기다. 지금 나의 마음 상태는,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과 관련된 나의 마음 상태는 아주아주 평화로운 상태다. 내 마음 곁에는 연한 피부를 칼로 베는 듯한 차가운 바람도 없고, 그렇다고 한 순간에 하얀 피부를 벌겋게 익힐 뜨거운 태양은 더더욱 없다. 지금 내 마음은 어떤 방향으로 바람이 부는지, 온도는 어떤지, 습도는 어떤지 그 어떤 것조차 느껴지지 않는 일종의 대기권 밖의 상태랄까.
내 마음이 이렇게 평화로운 상태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아주 쉽다. 최소 2년 정도 연애를 쉬면 된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고, 그로 인해 사랑과 관련된 감정의 기억을 만들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이 행동은 오로지 자신 스스로 원해서 하는 '자발적 솔로'여야 한다. 만약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하고 싶고, 사랑을 하고 싶지만 자의 타의로 인해 못하고 있는 비자발적 솔로라면 이미 그 사람의 마음에는 어떤 사람(들) 혹은 어떤 기억으로 가득할 것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자발적 (비자발적 30% 정도 인정..) 솔로 기간이 어느덧 3년 하고도 반을 채워간다. 이 기간 동안 내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흔들었다거나 내 마음에 아주 살짝 발만 담근 사람들은 극소수 존재한다. 하지만 워낙 스스로 마음을 여는 것도,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는 것도 힘든 나는 이런 솔로 생활이 너무나도 편하다. 그렇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솔직히 가끔씩 '남자 친구'라는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고, 나도 누군가의 '여자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1년, 1년, 1년, 그리고 두 번의 계절이 더 바뀌고 있는 지금의 내 진짜 속마음은 어떤 걸까. 사실 요즘은 텅 빈 내 마음이 안쓰럽기도 하다. 누군가를 만나고 있지 않아서, 좋아하고 있지 않아서 텅 빈 마음이 아니라 떠올릴만한 추억 하나, 기억 하나가 없는 그런 마음이 되었다는 게 안타까웠다. 불과 작년만 해도 발라드를 들을 때면 자연스럽게 지난 기억과 추억이 떠올라 노래와 함께 아파하고, 함께 후회하고, 함께 다짐하던 나였다. 그러나 이제는 애절하고 간절한 발라드 가사 속에서 나의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노래나 어떤 글이나 영화 등을 보면서 억지로 지난 내 기억 속 누군가를 떠올려가면서 공감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창작자들의 작품을 듣고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공감'이 좋았다. 그리고 그때만큼은 떠오르는 누군가도, 그와 관련된 추억도 그렇게 밉지 않았다. 가끔은 아련하게,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 끝난 사랑의 주인공이 364일 내내 죽일 놈이었다가 단 하루만이라도 멋진 놈으로 추억된다는 건 때론 꽤 괜찮은 위로가 되곤 했다.
구구절절한 발라드를 들으면서 떠올릴 기억이, 사람이 없어서 듣고 있던 노래를 놓쳐버리는 요즘의 내 마음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어느 순간 갑자기 타이밍과 운명이 내게 누군가를 데려다 놓기 전까지 아마 나는 자칭 '자발적 솔로'라는 이름 아래로 겁을 잔뜩 먹은 채 한참을 숨어있을 것 같다. 그저 걱정이 되는 것이 있다면 나의 마음과 나의 시간들, 바로 이 시절이다.
사람이 외로운 이유는 '혼자'있어서도 아니고, '함께 하는 그 누구' 때문도 아니다.
흔히 하는 말처럼 '사람'이기에 당연히 외롭다는 것, 맞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더 외로운 사람이 된다는 의미는 어쩌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의 기억조차 없는 사람 아닐까.
외로움과 반대되는 기억을 떠올리려고 억지로 애를 써야 마음이 아닌 머리가 꺼낸 기억만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
'외로움'이 너무도 당연해져 버려서 그 외로움의 기억마저 사라져 버린 사람이 아닐까.
그저 나는 내가 외로움이 당연한 사람이 되어버릴까 봐, 아니 이미 외로움이 당연해져 버렸을까 봐 나의 마음이, 나의 이 시절들이 가끔 안쓰러울 뿐이다.
비밀은 아니고.. 음.. 작지만 이루기 어려운 꿈을 꾸고 있는데.. 내년 가을, 겨울 즈음 찬 바람이 불어올 때면 찬 바람이 옷가지로 덮을 수 없는 내 피부에만 와 닿기를 바란다. 옷으로 꽁꽁 싸맨 내 몸속, 그 속에 내 마음은 온풍기 최고 온도만큼이나 훈훈한 바람이 후끈후끈하게 불어 오길 바라본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자분들의 '공감'은 글 쓰는 저에게 가장 큰 힘과 원동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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