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는 크리스마스가 더 소중한 이유

#29. 이래나 저래나 우리 모두 건강하고 무사한 (메리) 크리스마스!

by 기록하는 슬기


12월 24일 어제 늦은 저녁, 인스타그램에 접속해보니 피드는 온통 빨간색과 초록색의 홈파티 사진으로 가득했다. 대부분 가족끼리, 연인끼리, 아니면 혼자라도 크리스마스이브의 분위기를 즐기는 듯 보였다. 아무리 코로나 19가 우리의 일상을 방해하고 망친다 해도 주어진 환경 안에서 다들 나름의 방법으로 특별한 날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종교가 없는 내게 크리스마스이브가 특별했던 시절은 5~6살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였다. 그러니까 딱 엄마 아빠가 산타할아버지인 줄 몰랐던 그 시기까지. 중고등학생 때는 거의 매일 보내는 일상과 똑같이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20대 초반에도 변함없이 약속이 없는 날은 집에서 TV로 '연예대상'을 보면서, 혹은 친구들과 만나서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부딪혔던 것 같다.


성인이 된 후, 평범했던 날을 제외하고 크리스마스이브 중에 기억에 남는 날을 꼽으라고 한다면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22살 처음으로 남자 친구라는 존재가 반짝 거리는 큐빅 귀걸이 선물과 촛불 이벤트를 해줬던 크리스마스이브, 23살 처음으로 외국에서 아픈 몸으로 홀로 맞이했던 지독히도 외로웠던 뉴질랜드에서의 크리스마스이브, 26살 당시 남자 친구와 사람들로 꽉 차 있는 서울 잠실역 지하철 앞에서 대판 싸우고 극적으로 화해했던 크리스마스이브, 28살 세계여행 중 가장 오래 지냈던 곳이었던 네팔 포카라 윈드폴 게스트 하우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냈던, 해외에서 처음으로 '행복'했던 크리스마스이브, 29살 호주 퍼스에서 처음으로 겪어본 40도 무더위 속의 서머 크리스마스.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 '처음'의 기억을 강렬한가 보다. 분명 30번이 갓 넘는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면서 그 속에서는 분명 내 앞에, 옆에 있는 누군가와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번 크리스마스이브는 못 잊을 것 같아."라는 말을 여러 번 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지금 무작정 떠올려본 지난 기억 속에 크리스마스이브는 대부분 '처음으로' 내게 만들어졌던 기억이다. 동시에 가장 강렬했던 어떤 감정이 뒤섞인 어떤 날의 기억이다. 기뻤거나, 아팠거나, 외로웠거나, 화가 났거나, 행복했거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어제의 기억은 왠지 희미하게 '평범하고 잔잔한 행복'으로 기억될 것 같아. <사진 : 나를 위해 준비해준 너무 예뻤던 방구석 크리스마스이브>




하지만 지금 떠오르지 않았던 지극히 평범했던 어느 날이 어쩌면 더 평화로웠고, 더 좋았던 하루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이 지나고, 몇십 년이 지나도 우리 기억 속에 선명하게 각인돼 있는 기억은 어떤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어떤 흔적일지라도 일단 '흔적'을 남겼다는 것은 그 당시 어떤 강한 '충격'을 받았다는 의미이고, 그 충격이 당시 너무 행복했든 너무 아팠든 어찌 됐건 무덤덤한 흔적으로 변할 때까지 우리는 일종의 '후유증'을 겪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코로나 19라는 전염병이 생기고 나서 '잊고 있던' 일상의 소중함을 이제야 깨달았듯 그 당시에는 당연해서 아무렇지 않았던 지난 크리스마스이브들 속에 사소하지만 당연하지 않던 행복함과 소중함이 이미 진득하게 녹아있을 것이다. 지금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려고 애써봐도 막상 머릿속에 어떤 장면도, 어떤 인물도, 어떤 단어도 희미하게나마 우리가 찾아내지 못했을지라도, 아니 찾지 못했다면 그만큼 우리는 그 안에서 고요했었고, 평화로웠었고, 때론 염치없이 많이 웃고 행복했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아마 이번 연도 크리스마스이브는 우리 모두에게 절대 잊힐 수 없는 한 장면이, 한 단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조금 욕심을 내보자면 시간이 흐르고 흘러 모두 어제, 오늘 2020년의 크리스마스이브도, 크리스마스도 일부러 떠올리려면 애써야 하는, 그런 평범한 그래서 특별한 하루로 기억되기를 바라본다.








이번연도도 앞으로도 쭈욱 건강 & 메리 크리스마스 보내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저와 어떻게 알게 됐든 지금 어느 곳에 계시든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모든 분들!

별 일 없는, 별 다른 (나쁜) 충격 없는, 그저 건강하고 평화로운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셨기를.

그리고 오늘은 그런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바라요.

모두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글 쓰는 저에게 제 글을 찾아주시는 여러분들의 관심과 제 글을 느껴주시는 공감은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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