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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브런치'란?

나는 욕할 수 있는데 남은 욕하면 안 되는, 뭐 그런 마음이랄까요.

by 기록하는 슬기

며칠 전, 여느 때와 똑같이 자주 가는 카페에서 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많은 시간이라 카페 안은 꽤 북적거렸고 그 분위기 때문인지 집중이 잘 되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오른쪽 옆에 옆 자리 쪽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아하니 이어폰을 낀 채로 통화를 하고 있는 분이라 아마 주변 소리를 의식하지 못한 채 전화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집중이 이미 흐트러진 나는 어쩔 수 없이 큰 목소리로 들려오는 그분의 전화 내용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분은 영상 편집을 가르쳐주시는 분 같았다. 전화 상대는 그분의 강의를 듣는 수강생인 것 같았고, 대화 내용은 유튜브라는 플랫폼에 대해 설명하고 계셨다. 그러던 중 그분의 큰 목소리를 통해 요즘 내게 가장 익숙한 단어인 '브런치'라는 세 글자가 들렸다. 아직도 그분의 대사가 정확히 기억난다.


"지금은 유튜브를 하셔야 해요. 아무리 글을 쓰고 싶으셔도 영상을 하셔야 돼요. 브런치나 블로그 같은 곳은 수익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유튜브는 돈이 되니까 사람들이 영상을 열심히 찍고, 더 잘할 수밖에 없거든요. 제가 보니까 유튜브보다 다른 플랫폼 콘텐츠는 볼만한 게 없어요."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2019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공들여서 글을 써오고 있는 나에게, 2013년부터 지금까지 광고를 하나도 받지 않고 청정하게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나에게는 그다지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물론 나도 브런치에서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현재 시스템을 개선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미 오래전부터 '글' 보다는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현재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있는 내게, 게다가 그 당시에도 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 있던 내게, 들려온 그 큰 목소리는 꽤 아프게 느껴졌다. 그분이 한 말 중에 70% 이상은 나도 동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나도 알고 있던 문제였는데 누군가 그 부분을 콕 집어서 세상 밖으로 꺼내버린 기분, 그런 기분이었다.



P20201126_153613087_0E79CD5A-0C7E-43EB-BC07-4978B0A12908.JPG 하루에 가장 많이, 자주 보는 화면 = 브런치 메인 화면.


참 무서운 건 1년 반 동안 가장 열심히 정성 들여서 글을 올리고 있는 곳이 '브런치'이다 보니 브런치를 하지도 않는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한다는 점에서 기분이 상했다. 지금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플랫폼 중에 그 어떤 플랫폼이 문제가 없을까. 다 아쉬운 부분이 있고, 개선해줬으면 하는 부분은 있다. 하지만 그분의 말 따라 돈이 되지 않음에도 하루에 3~4시간 이상씩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고, 고치고, 다시 쓰는 이 곳의 작가들의 글의 퀄리티와 그 가치를 어떤 기준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대해 여러 작가님들이 쓴 글들을 읽으며 나도 언젠가 한 번쯤 객관적으로 브런치의 장단점에 대해 거침없이 쓰고 싶었다. (나도 할 말은 많다.) 그런데 조금 더 냉정하게 바라보니 현실적으로 지금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으로는 브런치만 한 플랫폼이 없고, 내가 원하는 '출판'이나 '강연'을 위해서는 이 플랫폼이 현재로서는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이 한번 더 나왔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 문제점을 탓하기 이전에 어떤 플랫폼이라도 그 안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는 것이 더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나도 문제점 개선을 위해 카카오 고객 센터에 몇 번이나 글을 쓴 적이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렇게 '글쓰기'를 계속해서 할 수 있는 것 또한 브런치라는 플랫폼의 힘이 가장 크다. 이 안에서 내 글의 영향력을 처음으로 확인했고, 또 그로 인해 넘치는 관심과 애정을 받아본 그 경험의 힘으로 나는 지금까지 글을 쓸 수 있으니까.


그렇다. 알게 모르게 나도 브런치랑 이미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버렸나 보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브런치 이야기를 할 때 귀가 쫑긋 세워지는 것도, 브런치 흉을 볼 때면 '나는 할 수 있어도 너는 하면 안 되지'의 그 마음으로 욱하는 것도, 모두 어쩌면 브런치라는 곳을 미워하면서도 그 이상으로 좋아하고 있는 내 마음의 증거가 아닐까.




+) 아마 나처럼 브런치와 함께 웃었던, 울었던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다들 나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일종의 애증의 관계처럼.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의 공감과 응원은 글 쓰는 저에게 가장 큰 원동력이자 가장 큰 가치입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브런치 새 글은 매주 월요일, 목요일 발행됩니다.

(가끔 월요일에서 화요일로,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자정 즈음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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