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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

나이를 잘 먹은 진정한 으른이 되고 싶거든요.

by 기록하는 슬기


매일 셀 수 없이 휴대폰 화면으로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지만 이따금씩 화면 위에 숫자가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2021년 2월 22일'

그중에서도 가장 어색한 건 맨 앞에 2021년이다.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잊고 있던 내 나이가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내가 벌써??'라며 2021년 보다 더 어색한 숫자를 떠올리고 흠칫 놀란다.


이제는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30대 초반이라 해도 '나이가 많다.'라고 바라보는 시선은 거의 없다. 하지만 내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들이 많아서 가끔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라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친한 동생들과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끔 내게 장난으로 이런 말을 할 때도 있다.

"언니.. 나 너무 늙은 것 같아.. 이제 나 28살이야.. (나를 슥 쳐다보고 입꼬리를 올리며) 엇? 아 언니.. 미안.. 30대 앞에서 내가 너무 했지?"

"누나! 그래도 나는 아직 20대라고~ 앞자리 '2' 부럽지?"

등등..


서른이 딱 됐을 때만 해도 이런 장난을 들을 때면 발끈하면서 동생들에게 "야! 너네는 나이 안 먹을 것 같지? 너네도 다 똑같이 나이 먹거든~"의 대사를 날리기도 했었다. 아무리 '서른'이 별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앞자리의 숫자가 '2'에서 '3'으로 딱 변했을 때, 그 무게감은 달랐다. 왠지 모르게 이제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서른'과 이름도 비슷한 '어른'이 돼야 할 것만 같았다.



P20201019_160821891_D6703E03-D0F7-43B7-AEB4-D486EA8C2F88.JPG '서른', '어른' 이름도 비슷하다. 의미 부여하기 딱 좋게 말이야.



그런데 서른이 됐을 때도, 서른이 되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내겐 변하지 않는 생각이 있다.

'만약에 지금 내가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그들의 어린 모습이 단 한 번도 부럽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도 그런 20대를 꽉 채워서 살아봤다. 물론 그 시간 안을 보면 아쉬움이 남는 선택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당시에 할 수 있던 일들, 그 당시에 하고 싶었던 일들을 했다. 꼭 '20대'라는 시절에 맞게 살았다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위해 살았던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20대를 만족한다.


그리고 나는 막상 서른이 된 후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오히려 '나이'에 대해 더욱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내 나이를 떠올리면 더욱 그 숫자와 내가 어색해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나도 한 때 '20대에 꼭 해야 할 일', 혹은 '30대가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과 같은 베스트셀러들을 읽으며 30대를 걱정하며 준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30대로 살아보면 볼수록 20대의 나와 별 다를 바 없었다. 나란 사람은 앞자리의 숫자가 바뀐다 해도 여전히 '나'였고, 나도 내 주변 사람들도 서른이 된다고 갑자기 어른이 되지는 않았다. 결국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사람 그 자체였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20대가 엄청나게 부럽지는 않다. 그리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 자체도 그다지 두렵지는 않다. 어차피 나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공평하기에 스무 살, 서른 살과 같은 숫자를 모두에게 단 한 번만 살게 해 준다. 스무 살을 두 번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듯이 나이는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기회를 준다. 그저 누가 조금 더 빨리 그 나이로 사느냐, 조금 더 늦게 그 나이로 사느냐의 차이일 뿐 적은 숫자를 부러워할 이유는 없다.



나도 그 나이를 살아봤고, 앞으로 너도 이 나이를 살아볼 거니까.

그리고 나이라는 게 적다고, 많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니까.








예전에 '서른'을 갓 넘기고 친한 친구와 함께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과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나눈 적이 있다. 그때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누군가를 바라볼 때 그 사람을 수식하는 두 자리의 숫자보다는 사람 그 자체를 먼저 바라보려는 마음,

이미 나는 살아 본 나이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의 숫자를 바라보며 욕심내지 않는 마음,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나의 세월과 그 숫자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이 마음을 진정으로 가질 수 있어야 우리가 원하는 그런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우리 나이 먹는 것에 대해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지도 말고, 또 동시에 두려워하지도 말자.

앞으로 나이 잘 먹자 우리."








오늘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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