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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해외여행을 가면 생기는 일

부모님 전용 가이드이자 비서이자 보호자입니다..^^

by 기록하는 슬기

최근들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19에 대한 방역이 완화되면서 해외여행 가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나처럼 몸속 어딘가에 방랑 DNA가 꿈틀거리고 있는 사람들은 이때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개인적인 사정이 아니라 펜데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해외를 나가지 못하게 된 지 약 3년. 이 3년 동안 나는 전 세계 곳곳을 자유로이 방랑할 수 없음에 답답해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코로나 19 이전에 오래된 꿈이었던 세계 여행을 다녀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잘했고, 다행스러웠던 것은 지난 세계 여행 중에 태국 치앙마이에서 부모님을 만나 2주간 함께 여행한 것, 그로부터 1년 뒤 호주 워홀 때 열심히 모은 돈으로 부모님을 인도네시아 발리로 초대해서 발리 2주, 호주 퍼스를 2주 동안 함께 여행한 것, 마지막으로 코로나 19가 출현하기 직전인 2019년 11월 부모님과 함께 베트남 다낭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이렇게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할 때면 항상 친오빠는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외국에서 가족 여행을 할 때면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곤 했다. 다른 것보다도 부모님께서 외국어로 소통이 힘들다 보니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나는 부모님의 입이자 귀, 그리고 몸이 되어야 했다. 즉, 우리 셋은 시간만 빼고 항상 함께 였었다는 뜻이다.


부모님과 나, 이렇게 셋이 여행을 하면 큰 트러블은 일어나지 않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혼자서 모든 여행을 이끌어 간다는 것 자체가 생각보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고단한 일이다. 원래 가족끼리 여행을 가도 자주 싸운다고들 하지 않던가. 낯선 곳에서 여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계속해서 새로운 자극을 받는 것이기에 좋은 영향도 있지만 동시에 그만큼 몸과 머리는 피곤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나처럼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혼자 여행하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 사람에게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 그것도 내가 두 명의 의견을 통역을 하면서 여행의 모~든 일정을 이끄는 가이드 역할을 길게는 한 달, 짧게는 2주 동안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내 성격상 아무리 힘들어도 부모님 앞이기에 절대 티를 내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 아빠보다 이미 더 많은 곳을, 더 멋지고, 더 가기 힘든 곳들을 다녀왔는데 이제야 해외에 나온 지 몇 번 되지 않는 부모님 앞에서 힘들고 귀찮은 내색을 하기 싫었다.



P20180515_115101861_D2B7302C-BA13-4BA1-A3F2-24686EBC21F1.JPG 부모님과 1년 만의 상봉을 기다리며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2018년 5월 인도네시아 발리 공항.



다른 여행들은 다 내가 해외에서 오래 지내다가 부모님을 6개월, 1년 만에 만났던 여행이라 그런지 그렇게 여행 도중 지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2019년에 다녀왔던 베트남은 그전부터 본가에서 1년을 함께 살다가 간 여행이라 그런지 여행 도중에도 나 스스로 지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엄마 아빠는 항상 여행을 나오면 나한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하면서 내 상태를 배려를 해주신다.)


베트남 다낭에 도착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쯤이었다. 엄마, 아빠 두 분께서 지친 내 몸과 정신 상태를 느끼셨던 것 같다. 우리는 원래 식당에 가서 아침 겸 점심을 먹자고 했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부모님이 갑자기 거기는 다음날 가자면서 오늘은 간단하게 빵이랑 커피로 한 끼를 해결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그 빵과 커피는 엄마랑 아빠가 사 올 테니 나는 숙소에서 좀 쉬고 있으라고 하셨다.


사실 빵과 커피를 사는 게 그리 큰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두 분이서만 보내기 걱정스러운 마음에 같이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엄마랑 아빠는 둘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면서 계속 나보고 나오지 말라고 하셨다. 사실 빵집도, 카페도 둘 다 숙소에서 가깝기도 했었고 아빠가 워낙 길눈이 밝은 편이라 잘 갔다 올 것 같기는 했다. 강력한 부모님의 의지에 나는 못 이기는 척 알겠다고 했고, 아빠한테 잘 모르겠으면 무조건 카카오톡으로 바로 전화를 하라고 당부를 했다.


부모가 되면 이런 마음일까. 두 분이서 나간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 뭔가 불안하기 시작했다. 나는 혹시 아빠한테 보이스톡이 와있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휴대폰을 계속 확인했다. 무엇보다 베트남은 골목길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오토바이가 너무 위험해서 그게 가장 걱정이 됐다. 아무 연락이 없다는 건 뭔가 잘하고 있다는 뜻인데도 걱정은 멈춰지지 않았다.


그렇게 10분, 15분, (...) 30분이 흘렀다. 내가 있었다면 충분히 갔다 오고도 남을 시간이었는데 두 분은 깜깜무소식이었다. 전화를 먼저 해볼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 누군가 숙소 문에 노크를 했다. '똑똑똑' 소리를 듣자마자 내 몸은 바로 문 앞으로 튀어나갔고 동시에 "엄마야????"라고 물어봤다.


문 밖에서 "응~ 엄마야~"라고 대답하는 가장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자마자 엄마 아빠는 양손 가득히 빵이 담긴 봉지와 과일이 담긴 봉지, 커피 세 잔이 담긴 봉지를 나눠 들고 계셨다. 그리고 얼굴은 더위 때문에 뻘게져 있었다. 두 분의 얼굴을 보자마자 안도감이 마구 밀려왔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오~ 잘 샀네?"라고 말했다.


그리고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신나서 아빠랑 나가서 있던 일들은 나한테 얘기해줬다. 예상보다 늦은 이유는 중간에 마트 구경을 했다고 하면서 사고 싶은 베트남 과자가 엄청 많다는 tmi까지 전해줬다. 나는 중간중간 계속 리액션을 해줬다. "와~ 진짜?", "오! 잘했네!"와 같이. 나 없이도 두 분이서 이렇게 외국에서 뭔가를 했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 기특했다.



P20191125_164026655_A785EDBD-D82A-4204-8C02-82BAA780F5EA.JPG 내가 좋아하는 장소, 시간, 취향을 부모님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자 행운이다. <사진 : 2019. 11. 베트남 다낭 어느 골목>



엄마는 30분 동안 아빠와 미션을 수행한 이야기를 하고 마지막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유. 그래도 이제 너를 보니까 마음이 놓인다. 엄마는 혼자 하라면 절대 못하고, 아빠라도 있으니까 나갔지. 근데 아빠랑은 외국에 있으면 뭔가 불안해. 우리 둘 다 말이 안 통하니까. 무서워. 네가 이렇게 같이 있어야 엄마는 안정이 돼."


이 말을 딱 듣고 나서 그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내가 정말 어른이 된 것 같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제는 부모님이 나에게 의지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부모님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어렸을 때 얼마나 노심초사하면서 나를 키웠을지, 그 길었던 과정 중에 1%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문득 내가 성인이 된 후, '도전'했던 일들에 대해 큰 반대 없이 응원해줬던 부모님이 떠올랐다. 특히 여자 혼자 장기 여행을 다니고, 게다가 내가 가고 싶어 했었던 나라들 중에는 위험하기로 유명한 '인도, 파키스탄'과 같은 국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마다 부모님은 그저 "조심히 다녀. 안전과 건강이 우선이야."라는 말만 하시고 나를 늘 믿어줬었다. 꼭 여행이라는 도전뿐만 아니라 20대 이후로 줄곧 (사회적으로)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어갈 때도 항상 나를 그렇게 바라봐 주시고 믿어주셨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믿어주는 만큼 큰다'라는 말.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점점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모두 뒤에서 누군가 나를 든든하게 믿어줬기 때문 아닐까. 만약에 걱정되는 마음에, "그거 너 하지 마. 가지 마."라고 했다면 나는 아마 이 정도로 건강하고 단단한 30대를 맞이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 당시는 몰랐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 돌아보니 그때 나를 믿어준 부모님의 마음이 더욱 대단하고, 멋지다. 그리고 무척이나 고맙다.


당연히 나도 사람인지라 부모님과 365일 사이가 좋고, 즐거울 수만은 없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나지만 그럴 때마다 일부러 그때를 떠올린다.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갔을 때 내가 느낀 그 감정들을 되새긴다.


그리고 잊지 않으려고 한다.

이제는 내가 부모님을 믿어줄 차례라는 것을.

내가 지금까지 받은, 나는 감히 알 수 없는 믿음과 사랑에 보답하는 일은 결국 내가 다시 부모님을 믿고 사랑해주는 일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 그래서 그 깨달은 마음을 조금씩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여전히 부모님에게 하는 낯간지러운 표현은 어렵지만.








오늘도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이야기를 기다리고 기대해주시는 독자분들 덕분에 저는 이렇게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항상 고맙고,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남겨주시는 공감과 댓글은 글 쓰는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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