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더 심해지는 외로움의 정체
얼마 전,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너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외로웠던 시기가 언제야?"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하루에 몇 번이고 입 밖으로 내뱉을 정도로 익숙하지만 '가장' 외로웠던 시기를 꼽으라니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정확한 시기가 딱! 떠오르지는 않았다. 희미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때는 20대 중후반이었다.
돌이켜보면 20대 중후반 때 내 주변에는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다.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2년 넘게 연애를 하고 있었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친하게 지내는 직장 동료들도 있었고, 또 자주 볼 수 있는 고향 친구 몇 명도 있었다. 게다가 그때는 혼자 자취를 한 게 아니라 친한 언니 두 명과 함께 살았었다.
그래서 그 당시 나는 내가 외로운지 잘 몰랐었다. '그때 내가 참 외로웠었구나'를 느꼈던 건 그 시기가 훨씬 지난 후, 그 시절에 매일매일 쓴 일기장을 봤을 때였다. 아무리 피곤해도, 술을 먹고 집에 들어왔을 때도 옷방에 엎드려서 꼭 일기를 쓰고 잤다. 그땐 단순히 기록용으로 남기기 위해 쓴 일기라서 내 감정 날 것 그대로를 악필에 가까운 글씨체로 마구마구 휘갈겨 썼었다.
사랑을 많이 받았고, 했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연애였다. 하지만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그 사람과 그 사랑에 있어서 외로워했었다. 작은 부분이라도 그 사람이 내 마음을 몰라줄 때, 관계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그 사람과 나누는 감정이 버거울 때 나는 일기장 위에 내가 느꼈던 서운한 감정들을 써 내려갔다.
그 밖에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 친구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적었다. 그 악필 속에서 나는 분명 외로워 보였지만, 외롭다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쓸 수 있다고 믿었던 그 흰 종이 위에서도 나는 애써 괜찮은 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를 제삼자의 시각으로 볼 수 있던 건 긴 시간이 흐르고 난 후였다. 그제야 그 일기장 속에, 그 시간 속에 내가 더 명확하게 보였다. 그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외로움을 빈번하게 맞닥뜨렸던 사람이었고, 그런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지쳐있던 사람이었다.
사실 내 일기장에 외로움보다는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서운함'이었다. 예를 들면 '당시 남자 친구, 혹은 친구가 내 마음을 몰라줘서 서운하다.'와 같은 문장들이 종종 적혀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그 당시 서운함을 느꼈던 상대(남자 친구, 친한 친구, 가까운 직장동료 등)에게 내가 느꼈던 알맹이 감정은 결국 외로움이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가 외로움을 느낀 상대는 다름 아닌 내가 믿고, 좋아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때는 그 사람들 덕분에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사람들 때문에 '외로움'을 느꼈었다. 이런 반복되는 경험들을 겪으며 나는 자연스레 시간이 갈수록 사람을 멀리했다. 혼자 있을 때는 잔잔하게 느껴지던 외로움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후에는 외로움이 거센 파도로 변해 나를 삼켜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극도로 멀리했던 건 2019년부터 2020년이다. 이 시기에 실제로 만났던 사람들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이다. 그리고 온라인상으로 연락하던 사람들도 기껏해야 열 손가락이 채 접히지 않을 것이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던 상황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스스로 원해서 자발적으로 '혼자'지냈던 시간이었다.
원래 모든 사람이든 시간이든 멀어지고 나면 더 정확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나도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거리가 생기고 나서야 내 주변에 사람과 그 관계가 보였고, 또 그 안에 내가 보였다. 그리고 사람과 있을 때 내가 왜 외로움을 더 느끼는지 그 이유 또한 그전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내가 '외로움'을 느꼈던 대상은 내가 '욕심'을 가졌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즉, 그 대상이 내 마음을 몰라줄 때, 나와는 다른 그 사람의 모습을 볼 때 나는 외로움을 느꼈다. 결국 나는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한다는 그 이유로 나와 같기를,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욕심을 한가득 품고 있던 것이다.
물론 사랑이든 우정이든 어떤 관계이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상대에게 '기대'라는 것을 하게 되고, 또 기대에 못 미쳤을 때는 '실망'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실망은 서운함과 외로움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우리에게 찾아온다. 좋아하는 감정이 힘든 이유는 그와 정반대의 감정들을 동시에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기에 앞으로 기대 없이, 욕심 없이 어떤 대상을 좋아하자라고는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제 이것 하나는 안다.
온전히 내 의지로, 내 노력으로 혼자 해온 일들도 내 뜻대로 안 되는데 하물며 나와 완전히 다른 존재들이 내 뜻대로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헛된 기대라는 것을.
그리고 그때 가진 욕심은 결국 내게 아픔을 줄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은 잠시 너의 외로움을 잊게 해 줄 뿐이야.
그 순간이 지나면 너는 더 외로워질 수도 있어.
아마 이 과정은 앞으로 누굴 만나더라도 계속 반복될 거야.
좋아하는 감정, 쌓인 세월이 만들어낸 정 같은 것들이 너의 외로움을 해결해 줄 수 없어.
사람에게, 어떤 대상, 감정에게 너의 외로움을 떠넘기지 마.
그건 단지 욕심일 뿐이야.
그 욕심은 분명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거대한 외로움으로 네게 다시 돌아갈 거야.
슬프지만 너의 외로움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너 하나야."
오늘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저의 외로움이 여러분의 외로움에 닿기를.
아주 잠시라도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주기를, 안아주기를 바라봅니다.
항상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