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순간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2019년,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몇 가지가 있다.
그중 첫 번째는 "너 호주는 왜 다시 안 가는 거야?"라는 질문,
("건강이 많이 안 좋아져서 못 가게 됐어."라고 내가 대답하면 곧이어)
두 번째는 "아.. 너 입원했다고 했었나? 근데 왜? 갑자기 왜 아프게 된 건데?"라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구구절절 긴 설명을 해야 했다.
"몸에 염증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져서 발목, 손목, 손가락까지 다 심하게 부었었어. 혼자 거동은 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라 입원했던 거야. 입원 전에 세 군대의 병원을 갔는데 의사 선생님들이 검사하고 나서 사진 보고는 하나같이 똑같은 걸 물어보더라. '환자분 혹시 직업이 손 많이 쓰는 직업이에요?'라고.
내가 아픈 이유가 어떤 원인이 있는 게 아니라 그 부위를 오랫동안 무리하게 써서 그렇데. 대학교 졸업하고 한국에서 온갖 알바에, 또 매일 회사 야근에, 그나마 퇴사하고는 빡세게 세계 여행하고, 쉬지 않고 호주 들어가자마자 평균 주 6~7일 근무에 하루 10시간은 넘게 일했었어. 그리고 밥은 1~1.5끼 먹었는데 거의 라면만 먹었거든.. 이런 게 복합적으로 누적돼서 아픈 거라고 하더라고."
이런 장황한 설명을 들은 나의 가까운 지인들은 내게 대게 이렇게 말했다.
"너 너무 열심히 살아서 그래. 앞으로는 일도 좀 대충 하고, 여행도 이제는 좀 편하게 다니고 그래. 내가 너 네 몸뚱이보다 큰 배낭 메고 나갈 때부터 알아봤어. 안 아픈 게 이상하지."
그때 나는 그들의 말에 동의했다. 지금까지 돌아보면 나는 학생 때나, 성인이 되어 어느 조직에 들어가 어떤 일을 해도 대충 하는 법이 없었다. 워낙 성격이 꼼꼼하고 예민해서인지 '대충 할 바에는 안 하는 게 낫다.'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알아줄만한 어떤 큰 성과를 낸 적은 아직 없지만 지금까지 몸 담았던 조직 안에서는 늘 인정을 받았다. '일 열심히 하고,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건강이 심하게 안 좋아지고 나의 2019년 계획이 통째로 다 바뀌게 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며 이해시켰다.
'내가 너무 열심히 일해서 아픈 건가 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가끔은 열심히 일하고 얻은 결과가 아픈 몸이라는 사실에 억울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버텨주지 못한 약한 내 몸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가끔은 지난 나의 노력과 의지가 후회되기까지 했다.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대충 하는 건데.. 괜히 열심히 살았어.'라며.
건강이 회복될 무렵 긴 슬럼프가 시작되었고, 3개월 정도 어둠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슬럼프를 겪는 동안 나는 매일 일기장에 솔직한 글을 썼는데, 슬럼프가 끝날 무렵 8월쯤 일기장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열심히 살아서 건강이 망가졌던 것은 내 탓도 아니고,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아마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그렇게 살 것 같다. 그때 나는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했었다. 그러니 자꾸 뒤돌아보지 말자. 어쩌면 이렇게 된 것도 모두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음잡고 한번 글을 써보자.'
그렇게 정신승리를 해가며 꾸준히 글을 써온지 5개월이 훌쩍 지난 요즘 나는 사실 조금 힘이 빠져있다. 최근 발표되고 있는 공모전 수상 명단에는 내 이름을 찾을 수 없었고, 브런치에도, 블로그에도 꾸준히 글은 쓰지만 이렇다 할 좋은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큰 실망감과 허무함에 젖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다운된 기분과 마음으로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는 중이다.
그래서일까. 자꾸만 나의 작은 빈틈에 소리 소문 없이 부정적인 생각들이 다시 찾아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얼마 남지 않은 호주 워킹 홀리데이 세컨드 비자 (2월 말까지 입국 가능)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의식의 흐름은 이렇게 흘렀다.
'한번 무리를 해서라도 호주를 다시 가볼까..?'
'나 지금 건강상태로 가면 안 되겠지..?'
'아직까지 그 미련 못 버리고 뭐 하는 거야.. 어차피 가봐야 별 뾰족한 수도 없는데!'
'그냥 지금 지치니까 넌 또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것뿐이야.'
'그만 생각하자! 그만 뒤돌아보자! 그만..'
그러던 중 며칠 전 친오빠가 요즘의 내게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며 동영상 링크 하나를 보내왔다. 동영상 썸네일 속 주인공은 토익 스타 강사 유수연 선생님이었다. 지금은 이미 너무 많은 토익 강사들이 있지만 10년 전 내가 한창 토익 공부를 할 때만 해도 정말 유명한 스타급 강사 몇 명이 그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인터넷 강의는 물론이고, 방학 때는 서울에서 자취까지 하며 유수연 선생님의 현장 강의를 찾아들을 정도로 그녀의 강의와 그녀의 스토리(그녀가 치열하게 살아온 그 과정)를 좋아했고 존경했었다.
그 동영상은 김작가라는 유튜버 분이 유수연 선생님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역시 유수연 선생님이 하는 말에는 뼈가 있었다. 그리고 영상의 마지막쯤 유수연 선생님은 어떤 말을 하려다가 머뭇거리다가 이내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사실 그녀는 2년 동안 모든 일을 쉬었는데 그 이유는 암 초기 진단을 받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말 다행히도 지금은 완치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아예 모르고 있던 나는 꽤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김작가님과 유수연 선생님의 대화는 꼭 내게 해주는 말 같아 잊히지 않았다.
김작가 : (조심스럽게) 암에 걸리셨던 거는.. 열심히 일하셨던 게 관련이 있긴 하겠네요? 건강을 잘 못 돌보니까..
유수연 : 그래서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의 인생에 어떤 조건들이 외부에서 와서 혹은 내 몸에 와서 어떤 상황이 돼도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가냐의 문제지, 내가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아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요.
내가 거쳐야 하는 인생의 여러 순간, 사람이라면 거치는 여러 순간. 화려할 때, 아플 때, 외로울 때, 행복할 때.
그런 순간들이 지나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내가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아팠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면 열심히 일 안 한 사람은 안 아픈가요? 열심히 일 안 하는 사람도 아프잖아요.
김작가님은 예상치 못한 단호한 대답에 살짝 놀란 듯 유수연 선생님에게 '과거에 대해 후회를 안 하시는 스타일이냐'며 다시 질문했다. 그리고 유수연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왔을 때 다시 하라고 하면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은 없어요."
<유튜브, '김작가 TV' 인터뷰 중>
나는 아프고 나서 그 후에 직면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 더 이상 내가 억울해하지 않을 이유가 필요했었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일해서 아팠던 거야.'라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나를 위로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 동영상 속 유수연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간 내가 억지로 정리하고, 이해시키려고 했던 나의 지난날들이 간단히 한 줄로 정리가 되었다.
'나는 그저 사람이라면 거쳐야 하는 인생의 여러 순간 중 한 순간을 겪었던 것뿐이구나..'라고.
그리고 마지막 대사와 같이 유수연 선생님이 암에 걸렸어도 지나간 날들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은 곧 그 당시에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했고, 또 잘했다는 것을 뜻한다. 내가 자꾸 과거를 뒤돌아보며 힘겹게 견뎌내고, 때로는 지워내고 싶었던 이유는 아마 나는 과거에 열심히는 살았지만 100%, 200% 다 쏟아붓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혹은 '열심히' 살았지만 그저 '열심히' 살기만 했을 수도 있다. 이 세상은 '열심히' 살며 '잘'하는 사람에게 어떤 결과를 주고, 또 그 결과에 힘입어 다시 움직이게 되는 게 사람이니까. 그동안 내게 어떠한 결과가 없던 것을 냉정하게 보자면 늘 조금 모자라게 '열심히', '잘' 해왔던 것 아닐까.
'다음에 조금 더 잘하면 되지.'라는 안일한 마음을 가지고.
10분이 살짝 넘는 이 영상은 금방 끝났지만 나는 한참 동안 휴대폰을 손에 쥔 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단순히 '저 선생님 해주신 말이 멋지다.', '나도 후회 남지 않게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생각보다는 '그동안 왜 나는 내 인생을 좋아하고 아끼면서도 한 편으로는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머릿속 한편에 희미하지만 또 선명한 과거의 내가 한 장면, 한 장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열심히 견디며 살아온 과거 속의 나',
'잡힐 듯 말 듯 결국은 잡지 못했던 기회를 놓치고 나서 힘겨워했던 나',
그 후에 '나를 미워했다가 원망했다가 다시 나를 위로했다가 응원해주고 있는 나'
이 장면은 꼭 어떤 수학 공식처럼 들어가 있는 숫자(지난 연도)만 다를 뿐 그 과정과 답은 똑같았다. 표본이 많아 이 장면들을 떠올리기에는 어렵지 않았지만 이 장면을 바라보는 마음만은 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중 마지막에 '나를 미워했다가 다시 나를 위로하는 그 과정'에서 내가 특히 힘들었던 이유가 있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기까지 그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인정하기 전에 자꾸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고, 핑계를 댔다. 그러면 내가, 내 인생이 조금은 덜 억울하고 덜 초라해질까 싶어서.
그런데 이 영상을 보고 참 나라는 사람이 어리석다고 느꼈다. 이 모든 나의 과정들은 '특별히'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환경과 상황은 개개인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결국 나는 모두가 겪는 그 순간들을 겪어내고 있는 것뿐이었다. 내 인생이 특별히 억울하고, 초라할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나는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들 겪는 순간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에 따른 행동에 따라 제각기 다른 인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후회 덩어리인 인생을 만들 수 있고, 또 누군가는 후회되는 순간을 찾기 힘든 그런 인생을 만들 수 있다.
누구의 인생이 더 대단하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나의 선택과 나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인생을 바라보며 '후회'하기는 싫다. 그 누구보다 나 스스로에게 '모두가 겪는 순간들을 진심으로 살아내느라 수고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
오늘도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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