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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비아빠 Apr 12. 2024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했던가?


고등학교 2학년 자식을 잃은 부모로서, 세월호 단원고 피해 학부모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 슬픔을 통감한다. 배가 침몰해 차가운 바닷속에서 세상을 떠났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본인 또한 몸서리칠 정도로 생생한 슬픔이 느껴진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세월호 피해는 원인과 결과가 명확하다는 점, 국가가 잘못을 인정했다는 점, 대다수의 국민들이 함께 슬퍼하고 아파했다는 점, 특별법 제정을 통해 국가로부터 피해보상을 받았다는 점, 만족할지는 모르겠으나 진상규명을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하고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었다는 점, 여전히 그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슬퍼한다는 점 등이다.


 우리 백신 피해 청소년들은 단 한 명도 인과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국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백신 피해를 외면하고 있고, 특별법은 언감생심에다가 면피용이고, 진상규명이 아닌 은폐에 여전히 접종 중이고, 국민들은 우릴 음모론자 취급을 하고 있다는 큰 차이가 있다.


 세상은 세월호 피해 청소년들과 백신 피해 청소년들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모름지기 부모라면 자기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매 한 가지가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여 같은 슬픔을 겪은 부모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리도 큰 차이를 보이는가? 이것이 말로만 듣던 선택적 슬픔, 선택적 아픔인 것인가?


 10년이 아니라 100년이 지나도 자식을 잃은 슬픔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음일진대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국민들은 어찌 이리도 모질고 쌀쌀맞은지 모르겠다.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우연하고도 급격한 것이다. 백신은 국민 4,430만이 이미 접종해 이미 발생해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심각하고 비가역적인 결과는 조금씩 다가오고 있음인데, 어찌 이리도 무관심한 것인가?


 백신부작용 문제는 이미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나설 문제가 아니라 백신을 접종하고도 아직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은 사람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문제인데, 어찌하여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유가족들만 나서서 싸우고 있는 것일까? 


 나는 매일 생각한다. 내가 이일을 하지 않으면 결국 조용히 묻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구제받을 길이 없어질 텐데 하는 마음과 나는 이미 가장 소중한 슬비를 잃었는데 누굴 위해서 이일을 하는 것인가 하는 상반된 두 생각의 갈등을 하루에도 수십 번 하고 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하는데... 세상에서 사라져 목이 마를 수 없는 사람이 무에 좋은 일 하겠다고 나서서 우물을 파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고 똑똑하거나 뛰어난 사람도 아니다. 대표랍시고 앞장서고 있지만 무엇하나 이루어 놓은 게 없다. 


 모든 것을 놓고 매일 슬퍼하며 살기에도 벅찬 인생이다. 내 인생을 이렇게 망쳐놓은 인간들이 설쳐대는 꼴을 보면서 슬픔을 곱씹으며 살아갈 뿐이다. 나는 이것을 바로잡을 능력도 없고 바로잡을 힘도 돈도 세력도 아무것도 없다. 지금도 당장 먹고살 걱정을 하며 하루하루 전전긍긍 살아가는 부나방 같은 존재일 뿐이다.  


 나는 그저 대한민국 정부, 정부기관의 견강부회에 날아드는 부나방의 연목구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했던가? 늦어도 한참 늦었기에 우리에게 정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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