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는 인사치레가 한 달가량 이어졌다.
공공기관인 우리 직장에선 중앙부처 공무원들에게 인사를 잘못해 찍히면 일 년 내내 시달릴 수 있어 꼭 해야 할 일로 여겼다.
그 해에도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새 해 인사를 가기 위해 여러 차례 일정을 조정했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는 출장이나 회의가 없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시간을 잡아야 했다
인사를 해야 할 그 공무원은 요즘 산하기관 군기잡기 재미에 빠져있었다.
산하기관끼리 비교하면서 어디는 이사들이 인사를 오는데 그쪽은 왜 실국장만 오느냐?
어디는 식사 같이하자고 허구한 날 와서 이야기하는데 거기는 예의가 없다. 그런 식의 갑질은 끝이 없었다.
그들에게 밉보이면 공공기관은 예산이며 인력, 법령작업 등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일이고, 기관장은 그런 직원들을 일 못하고 인간관계 관리 못하는 사람으로 몰아붙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갑에게 잘 보여야 했다
그 공무원이 시간이 난다고 연락이 온 날 회사 실국장들이 모두 소형 버스를 타고 세종시로 향했다. 울산에서 세종시까지 버스로 이동하려면 세 시간 정도가 걸렸다.
울산을 떠나 한참만에 칠곡휴게소에 들러 차 한잔씩 하고 다시 세종시를 향해 출발했다.
실국장 들은 해당 파트의 세부 사업계획을 만들고 점검해야 해서 몹시 바쁜 시기였지만 잠깐의 인사를 위해 하루를 쓰는 일에 대해 불만을 입밖에 내지는 못했다
인사치레를 잘해서 한 해동안 중앙부처와 별 탈 없이 지내면 다행이라 여겼던 것이다.
버스가 추풍령을 넘고 있을 때 세종시 공무원이 전화를 했다.
"과장님께서 인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시니 그냥 돌아가세요"
"아니! 울산에서 일찍 출발해서 거의 다 왔는데 인사는 좀 드리게 해 주셨으면 싶습니다."
"과장님께서 연초에 사람들 몰려다니며 인사 다니는 거 비효율적이라고 돌아가시랍니다"
전화를 끊고 국장들에게 말하니 버스 모두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신호등 빛같이 되어 말이 없었다
갑질을 익숙한 사람들이었지만 연초에 바쁜 사람들 불러서 몇 시간을 달려 코 앞까지 왔는데 이리 모욕을 줘서 돌려보내다니...
추풍령 회군 사건은 그리 일단락되었다. 그 날 허름한 주점에서 갑질에 마음 상한 국장들의 한탄이 오래 이어졌고, 술집 주인은 돈을 벌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