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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승 Jan 19. 2020

나도 가발이나 쓸래요

높으신 분의 비밀

 연말이라 매일 야근이 이어졌다. 어젯밤에도 11시 38분에 지나가는 마지막 전철을 겨우 타고 집에 잠시 다녀온 터였다.

 퇴근시간이 되어도 누구 한 명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없었고, 졸병들은 직원들에게 오늘 어느 식당에 밥을 시킬 것인지 알린 후, 각자에게 음식 주문을 받았다.

 부장들도 야근을 하지만 저녁식사는 외부 괜찮은 식당에서 국장들과 함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국장들은 식사와 함께 반주를 한 잔 한 후 퇴근을 하면, 부장들은 회사로 돌아와 일을 계속했다.

 그러니 회사에 남아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직원들은 차장 이하 직원들이 대부분이었고, 6시 30분에서 7시 정도의 시간이면 복도는 여러 가지 음식 냄새가 솔솔 풍기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 날에는 회사 복도에 음식 냄새가 나지 않았다. 주문한 직원과 식당 간에 전화로 말이 오간 후 서무들이 당황 표정으로 상황을 전했다.

 "오늘은 배달이 안된답니다. 주문한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하셔야 한답니다"  직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무슨 소리야! 그 식당 배가 불렀나? 배달을 못해주고 우리 보고 와서 먹으라고?" "그게 아니고요, 수위실에서 음식 배달을 막는답니다. 배달 온 사람들이 지금 음식을 가지고 다 돌아가고 있답니다."

 창문을 통해 수위실을 보니 음식을 배달 온 오토바이들이 항의를 하거나 돌아가고 있었다. 밖에 있는 식당을 이용하려면 오가고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고 하는 시간이 많이 허비되어서 직원들은 배달음식으로 대충 식사하고 일을 마무리한 후 퇴근하고 싶어 했다.


  직원들의 불만이 터졌지만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직원들이 한꺼번에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식당으로 가는 바람에 엘리베이터가 미어터졌다.


 다음 날 음식 배달 금지 이유가 소문으로 돌았다. 높으신 분이 퇴근을 하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음식 냄새가 난다며 한 말씀하셨고, 총무국장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어느 부서에선가 높으신 분이 퇴근도 하시기 전에 음식을 주문을 했고, 배달하는 사람이 하필 그분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로 음식을 배달 하하면서 냄새를 남겨 벌어진 일이었다.


직원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해 배달을 하도록 했고, 식당들이 불편을 호소하자 얼마 후에는 흐지부지 되었다.


사실 회사에서 엘리베이터는 고층건물을 오르내리는 수단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 어르신들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를 함부로 이용했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었다. 또한 점심시간처럼 많은 직원들이 엘리베이터로 몰리는 시간이라도 어르신들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잡고, 그분이 나오시기만 기다리는 일이 매일 벌어졌다.


엘리베이터에서는 재미있는 사건들도 벌어졌다. 아무도 대놓고 말하진 았지만 높으신 분이 가발을 쓰신다는 소문은 다 돌았던 때였다.  말하기 좋아하는 부장 한분이 우연히 높으신 분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다.  


그 부장님은 나이가 많지 않았는데도 머리는 백발이었다. 어르신과 좁은 공간에 있으니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높으신 분이 그 어색함을 깨고자 백발 부장에게 말을 걸었다.

 "H 부장도 염색을 좀 해야겠구먼!" 그러자 H 부장은 아무 생각 없이 냉큼 말이 나갔다. "염색은요 뭘... 저도 가발 하나 마련해서 쓰려고요."


그 순간! 누군가 풋!! 하는 웃음을 참는 소리가 났고, 다음 순간에는 웃음을 참아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꽤 길게 느껴졌다. 그 엘리베이터에 탔던 사람들은 정말 잘 참았다. 얼마 후, H 부장은 지방으로 발령이 났고 풋! 소리를 냈던 직원은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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