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개발원 넓은 잔디 운동장에 7월 초순의 햇빛이 이글거렸다. 그늘 하나 없는 운동장은 잠시만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그런 더위 속에서 야외활동을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군인들도 30도가 넘는 날씨에는 야외훈련을 제한했다.
교육은 대부분 금요일 오전에 마무리되었고, 오후엔 교육생들에 대한 행정서류를 정리해야 했지만, 그는 아랑곳없이 모든 직원에게 풀을 뽑도록 시켰다. 풀이 자라기 시작하는 4월부터 계속된 일이었다.
직원들이 관리부장을 통해 항의도 해 봤지만 돌아온 것은 몇 시간씩 이어지는 아주 긴 훈계였다. 각종 시설 관리를 위한 예산도 두둑했다. 그 예산을 활용해서 제초를 하거나 주변정리를 하면 인재개발원 주변에 사는 분들에게 일자리도 마련해 줄 수 있고 직원들도 업무에 몰입할 수 있을 텐데 그는 자신의 돈이라도 쓰느냥 수전노 짓을 했다.
〈그림 by 유예린〉
직원들이 그리 탈진하도록 풀을 뽑고 온갖 일을 해도 좋은 소리가 돌아오는 경우는 없었다. 월요일 아침 간부회의에서 그의 잔소리 통이 또 터졌다.
"풀 좀 뽑으라고 시키면, 일하기 싫은 머슴 새끼들처럼 뺀질거리기나 하고, 풀을 제대로 뽑지도 않고 풀 허리나 뚝뚝 끊어 놓고 말이야... 한 30분 일하는 척하다가 막걸리나 가져다 처먹으면서 퍼질러 앉아 있으니, 그걸 일이라고 하고선 맨날 불만이나 하고 있으니 원.." 그의 긴 잔소리는 두어 시간 이어지곤 했다. 금요일, 관리부장이 고생하는 직원들에게 미안해서 막걸리 몇 통과 두부김치를 가져와 나눠 먹었는데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은 겨울까지 이어졌다. 노역의 대상이 풀에서 눈으로 바뀐 것이 변화의 전부였다. 눈을 치우는 일은 어느 정도 필요했다. 사람이나 차가 다닐 수 있게 길을 터야 했다. 그런데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겨울에는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운동장의 눈까지 치우도록 지시를 했다.
영하 10도까지 내려간 기온에 눈을 몇 시간씩 계속 치우는 일은 교육을 담당하는 일반 직원들이 하기에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기계로 하더라도 쉽지 않은 작업량이었는데 직원들이 가진 도구라고는 삽이 전부였다.
그렇게 거의 하루 종일 고생을 해서 눈을 운동장 한편으로 밀어놓은 것으로 하루를 채웠다. 직원들은 거의 파김치가 되어 사무실로 돌아와 교육계획이며 교육생 선발 같은 일로 늦도록 야근을 했다.
다음 날, 그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했다. 사실 직원들이 그 정도 고생을 했으면 고생했다는 말이라도 하는 것이 도리였다. 그런데 그는 운동장 한편에 쌓아놓은 눈을 가지고 타박을 했다.
"종일 눈을 치우는 척하더니 한쪽에 쌓아 놓기나 하고 말이야! 일을 그렇게 하고도 밥이 입에 들어 가? 전부 실어 내야지 그리 쌓아두면 보기 싫지도 않아?"
운동장 주변에는 5미터 정도 높이의 철사 담장이 처져 있었다. 때문에 눈을 운동장 밖으로 완전히 치우려면 손수레를 이용해서 일일이 눈을 실어내야만 했다. 그건 며칠이 걸려도 끝내기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침내 직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우리가 인재개발원에 교육을 시키러 왔지 풀 뽑고 눈 치우는 환경미화원으로 온 것도 아니고, 설사 미화원이라 해도 이 추위에 의미도 없는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직원들이 회의실에 모여 눈 치우는 작업을 거부하기로 결정을 하고 관리부장에게 통보를 했다.
관리부장이 사색이 되어 그에게 쪼르르 일러바쳤다.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며, 회의를 연 시간과 장소를 물었다. 관리부장이 저녁 5시 50분에 조합원들이 회의실에 모여 결의를 했다고 보고하자 그의 입가에 야비한 미소가 흘렀다.
근무시간 중에 노동조합 활동을 하려면 사측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동의 없이 조합원들이 모인 것이 단체협약 위반이고, 회의실을 허락 없이 쓴 것 또한 단체협약 위반이니, 조합원 모두 단체협약 위반과 지시위반으로 징계를 요구하겠다고 직원들을 위협했다.
직원들은 징계란 말에 겁을 먹었고 집단행동은 진압이 되었다. 그날 저녁, 관리부장과 그는 밤새워 소주를 마셨다. 직원들이 겁을 먹고 꼼짝을 못 하더라는 관리부장의 설명과, 노동조합 놈들은 평소에 길을 들여야 한다며 관리부장을 칭찬하는 그의 말이 고장 난 녹음기처럼 밤새워 반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