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의 이름이었다. 그는 야비하고 포악하고, 염치없고, 치사한 점으로 보나 생긴 모양으로 보나 가가멜과 비슷했다.
나는 당시 조직 내에서 방귀 좀 뀐다는 자들에게 대들다 정기 인사철도 아닌 때에 그곳으로 날아간 상황이었다. 그 이야기도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여서 별도로 말씀드리겠다. 좌천이 되면 장점이 한 가지 있으니 이미 찍힌 사람이라는 것을 상대방이 알기 때문에 쉽게 보지는 않는 것이었다
새 근무처에 출근한 첫날 가가멜이 바로 간을 보려고 달려들었다. “전에 근무하던 곳에는 골프장이 많은데 종종 부킹 좀 부탁해.”
“거기에 골프장이 많기는 한데요, 저는 부킹이 뭔지 그런 일 할 줄도 모르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서 그리 대거리를 하자 가가멜은 간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는지 싫을 내색을 감추고 입맛을 다셨다.
가가멜은 직원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것처럼 무슨 짓을 하더라도 당당했다. 뻑 하면 회의를 소집했는데 말이 회의지 사실 직원 중 사람 한 명을 골라 난도질을 하는 자리였다.
회의는 한 사람을 물어뜯는 것으로 시작해서 상처를 입은 자의 눈물로 마무리되곤 했다. 그의 먹잇감이 되는 직원은 근로계약 연장을 목전에 둔 비정규직이나, 승진을 앞두고 근무평정에 노심초사하는 직원들이었다.
내가 참석한 첫 번째 회의에서는 재계약을 목전에 둔 여직원이 사냥감이 되었다. 그 여직원은 임신 중이었는데 출산할 날이 다가와 몹시 힘든 상황이었다.
가가멜은 한치의 배려나 망설임 없이 상대의 급소를 공격했다. “당신 그 따위 식으로 일하면 다음 달에 재계약 없어!” 그 부서 전 직원이 모여 앉은자리에서 가가멜은 그렇게 말했다
당신이라 지칭된 직원은 모멸감과 수치심에 벌써 고개를 떨구고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림 by 유예린〉
가가멜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판촉물로 나온 일회용 라이터 5천 개를 가가멜의 허락 없이 판매처에 배분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가가멜은 본사에서 판촉물이 오면 그걸 통째로 빼돌려 팔아 자기 주머니를 채워왔는데, 그런 사정을 잘 모르는 여직원이 원래 목적대로 판촉물을 나눠준 것을 문제 삼은 것이었다. 도독 놈이 도독질을 방해 받았다는 이유로 협박질을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가가멜은 그 후에도 지켜보니 계약직 직원들에게 근로계약 연장을 안 하겠다거나, 근평에 목마른 직원들에게 근평 작살날 줄 알라는 협박을 다른 직원들이 있거나 없거나 입에 달고 살았다.
가가멜과는 상종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굳힌 후 그의 비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가지도 않은 출장을 달아 출장비를 착복하고, 회사 차량을 자신의 출퇴근용으로 이용하는 것은 기본이요, 자기 개인 차에 회사 돈으로 연료를 채우는 일도 다반사였다.
한 달이 지나자 비리를 적은 종이가 상당히 여러 장이어서 소봉투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일단 지사장에게 보고를 하고, 해결이 안 되면 감사실에 신고할 생각이었다
지사장에게 시간을 내 달라고 한 후 그동안 기록한 문서를 건네며 심각성을 보고했다. 지사장은 기겁을 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지사장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런 일이 벌어진 직후에 나는 다시 발령이 났다. 본사로 전보가 된 것인데 당시 본사에 발탁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때였다. 본사에서 정신없이 일을 배우고 하면서 가가멜에 대한 일은 잊고 지냈다.
나중에 듣기로는 내가 지사장에게 준 서류를 본 가가멜이 겁을 좀 먹었고, 가가멜과 지사상은 원래 한 편이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