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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승 Jan 28. 2020

골라먹을 자유를 달라.

K과장의 식당

본사에서 쫓겨났다. 꼬박 3년을 고생했지만 새로 온 국장 눈 밖에 나자 일은 순식간에 틀어졌다.  

육아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였고, 아내 혼자 육아를 책임지고 있었다.  아이들 둘을 데리고 병원에라도 가려면 이웃의 도움을 얻거나, 그도 어려우면 내가 휴가를 내야 했다.


국장에게 가서 다음 날 휴가를 내야겠다고 보고를 했다. 바쁜 일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정신을 차릴만 때였다.

국장이 휴가를 내려는 이유를 묻기에 아이들 검진 때문이라고 사실대로 말했다.

"애들 병원 가는 때문에 휴가를 내야 된다면 문제 있는 집안 아니에요?" 국장이 버럭 했다.


참았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국장이 이곳으로 발령받아올 때 자신이 아끼는 차장을 데리고 왔기 때문에 그를 밀어주려면 내가 걸림돌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나의 주둥이가 참지를 못했다.  휴가를 가게 해 달라는데 문제 있는 집안 운운하는 국장이 야속했다.  "아내 한 명으로는 문제가 많아서 첩을 한 명 구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조금도 웃지 않고 대거리를 했다.


휴가는 연간 24개 중에 5일밖에 쓰지 못할 만큼 일에 시달렸는데 그런 취급을 받은 것이 못내 서운했다.

상대는 여성이었다.  여성 상사 앞에서 작은마누라를 운운한 나의 대거리도 불손하다면 불손한 것이었고, 솔직히 그곳에 질척거리며 남아있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새 근무지는 집에서 다니기 편했고, 아이들을 돌보기에도 유리해서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다만 고생할 만큼 하고 승진을 목전에 둔 채  본사를 떠나는 나를 동료들은 안타까워했다.


새 근무지 바로 뒤에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식당이 있었다.   음식도 정갈하 맛있었고 주인도 친절했다.  뭘 먹을지 걱정할 필요 없이 그냥 가면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식당에 가려면 눈치를 보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손님들과 식사를 할 때도 있고, 가끔은 별식을 먹고 싶은 게 당연했다.


그런데 그 식당은 우리 부서 직원들이 고정적으로 가야 하는 의무라도 있는 것처럼 부담을 주었다.  알고 보니 우리 부서에  선임 과장의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일 솜씨가 있는 그 과장에게 직원들은 신세를 지는 편이었고, 처음에는 서로 좋은 관계에서 식당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식당 이용이 의무가 되고, 점심시간이면 그 과장이 부서 입구에 딱 버티고 서서 직원들을 그 식당으로 몰고 가는 것이었다. 어쩌다 다른 식당으로 가려면 그 과장의 눈총을 참아야 했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 "삼겹살데이"라는 것을 만들어 직원들의 특근매식비로 부서에 청구했다.  직원들이 모두 참여하는 것이 아니었고, 나중에는 술 좋아하는 일부 직원들만 참여하는 행사로 줄어들었음에도 비용 청구 주기와 금액이 여전했다.


얼마 동안 분위기를 살펴보니, 점심시간마다 문을 지키고 있다 직원들을 자기 식당으로 끌고 가는 과장에 대한 반감이  있었고, 특히 여직원들 사이에서 많았다. 


"우리가 점심시간에 뭘 먹으러 갈지 과장님한테 보고라도 해야 하는 거야?" 문을  딱 막고 서서  어디로 가는지 캐 물은 모양이었다.

"너 교회 다니지? 이번에 과장님 아들 대학 합격하라고 새벽기도나 댕겨~, 지난번에 과장님 아들 대학 떨어졌을 때 우리를 얼마나 볶았는지 당해보면 정신이 들 거. 그때  부서 종교인들은 과장님 아들 대학 붙으라고 기도하기로 했어, 까르르~"


"언니 말도 마. 저번에 변호사가 위임장 떡 붙여서 민원서류 접수하고 상담을 하려 하는데 과장님이 변호사 무시하고 본인이 아니면 상대를 안 한다고 행패를 부려서 그 사람이 참다못해 모니터 엎어버렸잖아"   


얼마 후 인사이동이 있어 업무분장이 필요했는데 부서 내에서 소란이 일었다.

 선임 과장이 직원들의 의견을 모아 업무분장 초안을 마련하고, 차장 부장의 결재를 얻어 업무를 나누는 것이 관례였다.


그 과정에서 K과장의 식당을 잘 이용하지 않는 여직원들에게 업무를 몰아주려다 반발을 산 것이었다. 아무도 먼저 식당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속이 빤한 일이었다.


결국 내가 나서서 직원들의 입장을 전달하고, 직원 들게 부담을 주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는 알겠다고 했고, 문 앞에 서 있는 일은 없어졌으나 직원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은 매 한 가지였다. 중에 K과장이 근무지를  옮기도록 하고서야 그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그 식당직원들만 바라보고 장사를 했으니 사업이 번창하기 어려웠고, 장소 또한 후미진 골목이어서 일반 손님을 끌어들이기 어려문을 닫았다.

직원들은 누구의 기도가  응답받은 것이냐며 부처님과 하나님 중에 누가 센지 따져봐서 절에 갈지 교회에 갈지 정하자며  서로 농담을 건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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