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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승 Feb 02. 2020

누나

잘 살아보고 싶어

누나가 죽었다. 전보에 "춘옥 사망 급속 래"라고 적혀있었다. 누나가 죽었다는 소식에 엄마는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울지 않았지만 매형을 죽여버리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다. "개새끼!" 욕을 했지만 상대가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속이 풀릴 일도 아니었다.

"급속 래.." 빨리 오라는 말이었지만 우리 중 누구도 장례식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머니는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움직일 수가 없고, 나는 고향에 갈 수 있는 돈이 없었다.  매형도 그런 사정을 알 것이니 "죽은 줄이나 알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누나는 아들 셋을 낳고 마지막으로 딸 정희를 낳았다. 정선의 겨울은 모질게 추웠다.  아이를 낳고 몸조리를 해야 할 누나가 냉골에 이불을 쓰고 떨고 있는데 매형은 여러 날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땔감 떨어져 아궁이에 불을 못지지 못했고, 먹을 물도 남아있지 않았다.  매형은 도박에 미쳐있었다. 결국 목마름과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누나가 핏덩이를 집에 두고 물을 길어오다 빙판에 심하게 넘어 허리를 크게 다쳤다.  골병이었다. 그때부터 누나는 죽을 때까지 고통에 시달렸다.

새끼들을 챙길 누나가 아예 움직일 수 없게 된 다음에야 매형이 도박에서 정신을 좀 돌렸지만 이미 너무 늦어 돌이킬 여지가 없었다.   

 어린아이 넷을 둔 삼십 대 초반의 누나는 간절하고 애처롭게 살고 싶어 했다.  원주기독병원에서 허리통깁스를 하고 대소변을 받아내며 여러 달을 고생했지만 병은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져 손을 쓸 수 없었다. 누나는 병원에서 퇴원한 후 원주 외각에 있던 나와 엄마를 보러 와 하룻밤을 자고 정선으로 갔다. 잠을 못 자고 밤새 냉수를 찾았다. 누나는 그때도 "엄마 나 병 다 나으면 정말 잘 살아보고 싶어"라는 말을 반복했다.

"개새끼.." 매형 생각이 나서 나는 다시 욕을 했다. 누나가 엄마에게 잘 살아보고 싶다고 그렇게 말할 때 매형이 그리 말했었다. "니 못살아.. 죽는다니까.."  누나는 그래도 몇 차례 말했었다. 잘 살아보고 싶다고...

어린아이 넷을 두고 세상을 뜰 때, 서른 살 막 넘은 누나가 얼마나 애처로운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봤을까? 장례식에 가는 대신 을 갈아 지게에 꽂고 나무를 하러 갔다. 엄마는 몇 차례 더 꺼이꺼이 울었다. 엄마의 울음은 신경 쓸 것 없었다. 아무리 서럽게 울어도 엄마 앞에 가서 히히히~ 하고 웃어 버리면 엄마는 똑 같이 따라 웃어버렸다. 중풍이 걸린 후 엄마는 누군가 앞에서 히히히~ 하고 놀리면 아무리 슬픈 상황에서도 웃었다. 뇌에 이상이 있어서 그런 것이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상하게 웃더라도 우는 것보다는 았다.

이럴 때 형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걸 싶었지만 형은 큰아버지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을 한 후였다. 내가 한 발 늦은 것일지 몰랐다. 형이나 나 중 한 명은 엄마 옆에 있어야 했다.  

누나는 막내인 내게 잘해줬었다. 가끔 누나네 집에 가면 씻겨주고, 손발톱을 깎아주고, 얼굴에 크림도 발라 줬었다. 책상 위에 "원기소"라는 영양제가 있었다. 고소한 맛이 나는 원기소를 몇 알씩 집어먹어도 모른 척해 주었었다.

엄마가 누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레퍼토리가 뻔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먹고살기 막막해서 누나를 서둘러  시집보냈다 했다. 시집보낼 때 크림이며 몇 가지 화장품을 사 줬지만 눈에 바르는 퍼런 것과, 입에 바르는 뻘건 것은 안 사줬다고 했다.  입에 바르는 뻘건 것은 쥐 잡아먹은 것 같고, 눈에 바르는 퍼런 것은 신랑한테 두들겨 맞은 것 같다는 것이 엄마가 누나에게 색조화장품을 안 사준 이유였다.  하긴 엄마는 살아서  단 한 번도 화장품을 바른 적이 없었다. 누나에 대한 또 한 가지 이야기는 누나가 연애당(교회)에 몰래 갔을 때 매질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큰아버지가 돌아올 시간이 거의 되었다. 그가 돌아와 어제처럼 엄마에게 행패를 부리면 어떻게든 그냥 넘기지 않겠다고 지게를 지고 가며 마음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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