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차별
여자들이 페미니즘을 부르짖으며 과격해지고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는 동안, 끊임없이 화두에 올랐던 단어가 있다. 역차별.
역차별은 있다.
여자들이 여성성을 강요 받고, 뒷바라지 하는 역할을 강요받았듯이, 남자들도 그 반대의 역할을 항상 강요 받아왔다.
출산 이후에 내가 애 떼어놓고 일하는 독한 엄마가 되어 일을 그만 두네 마네 하며 울고 불고 하는 동안, 남편은 가장이 되었으니 더 책임감 있게, 더 많은 일을 하라고 강요 받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시대를 비슷한 환경에서 사는 우리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소리내어 싸우고 투쟁하지 까지는 못했지만, 둘다 그 의견에 순응 하지는 못했다.
아이도 소중하고 중요하지만, 그게 내 인생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랑 데면데면하며 살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우리는 둘다 업무를 늘리지 않고, 익숙한 업무들로 현상유지를 하면서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육아 휴직 1년이 우리에게 고려할 옵션이 아니었던 이유는, 업무에서 1년의 공백을 둘만큼 우리 둘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고, 우리가 아이에게 하루종일 붙어있을때 온화하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좋은 부모가 되어줄 자신이 없었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같은 생각을하고 같은 결정을 내렸는데, 결과적으로는 둘다 전통적인 부모상에 어긋나 버리는 바람에 양쪽 다 반대방향으로 고통받았던 셈이다.
우리 아이는 100일 즈음 이유없이 열이 났다. 모든 부모가 한번씩은 지나간다는 응급실 입원 해서 갖은 검사 다하고 결국은 열이 떨어져 무증상으로 퇴원하는 그 과정을 그때 겪었다.
아이가 총 5일 입원한 동안 우리는 번갈아가며 휴가를 썼다.
나는 병원에서 계속 밤을 새다시피 했는데, 그 당시에는 나만 피해자 같았다. 스치듯 말하는 한마디들은 모두 엄마가 출근 하니 애가 아프다는 말이고, 나는 계속 밤을 새고 밥도 못먹는 데도 엄마는 당연한 일 하는 사람이고, 잠은 집에서 자고, 저녁은 나가서 먹었지만 아이를 위해 하루 휴가를 쓴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자상한 아빠가 되어있었다. 남편이 칭찬을 받는게 남편 잘못도 아닌데, 괜히 화가 났다. 남들이 남편 자상하다고 칭찬을 한다고 해서 그가 모든 일을 다 해야 하는것이 아닌데, 차고 넘치게 아이와 나를 케어해야 분이 풀릴 것 같았다.
반면 직장에서는 내가 당연한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휴가에 돌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입원 기간에 비해 많은 휴가를 쓴 것도 아니었고, 어찌 되었건 급한 업무는 처리했기 때문이겠지만 다들 아이위한 걱정 한마디씩은 해주었다.
나중에 알았다. 나와 동일하게 연차 하루 쓰고, 퇴원하는날 오전 반차 한번 쓴 아이 아빠는 직장에서 세상 최고로 책임감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고, 직장 동료 누구도 아이가 괜찮냐고 물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예전에, 어떤 말이 성차별적인 말인지 아닌지 헷갈릴때 여자대신 '사람'을 넣어서 말이 되면 성차별이 아니고, 말이 안되면 성차별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남자에게도 똑같이 적용 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남자가(사람이) 쉽게 눈물을 보여서 어디다 쓰겠냐'
'남자면(사람이면) XXX는 벌어야지'
'남자면(사람이면) 부엌에 들어가면 안돼지'
정반대의 편에 서서 차별을 받다보면, 상대방이 받는 역차별 마저도 혜택으로 느껴 질때가 있다.
하지만 역차별도 차별이다. 2020년을 살아가는 여자들이 결혼하고 애낳으면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울거라는 시선이 싫듯이, 2020년을 살아가는 남자들도 결혼하고 애낳으면 불합리한 일도 참고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라는 강요는 싫은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