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지 않은 꼰대와 신세대 할머니
우리 할머니는 나이가 많으시다. 30년생 이시니 90이 넘으셨다.
나이가 드셨으니 체력은 아무래도 약해지셨지만, 어쨌든 건강하신 편이다.
얘기를 하자 하면 끝도 없지만, 우리 할머니는 내게는 특별한 분이다.
내가 핏덩이 일 때부터 키웠고, 여자도 배워야 하고 큰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시던 엄마의 어머니, 나의 할머니.
결혼식 때 친가 쪽의 폐백을 뺏던 나는, 그래도 할머니한테는 절을 하겠다고 했다.
시부모님께 절을 하고, 친정 부모님께 절을 하고 시가 어르신들이 할머니 먼저라고 하셔서 할머니 두 분이 함께 앉아서 절을 받으셨다. 덕담을 하시던 중에 할머니가 눈물을 보이셨다. 결혼식 내내 밝게 웃던 나도, 울컥했다.
나는 내게 정이 깊던 할머니가 그저, 감정이 격해 지신 것으로 생각했다.
그때 덕담을 듣고 계시던 도우미 이모가 말했다.
"어머 죄송해요. 원래 시댁 어르신들 다 인사받으시고 그다음에 친정 어른들인데, 시 할머님인 줄 알고 제가 실수를 했어요."
시큰했던 눈시울이 말라버렸고,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아니 이 아주머님이?
내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시가 어르신들이 '아니에요 어르신이 계신데'라고 말했고, 할머니가 '아이고 우리 손녀가 시댁을 잘 만나서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요'라고 하셨다.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차별들을 받고도 고정관념 없이 내게 용기를 주시던 할머니는 친손녀도 아닌 외손녀가 시집가는데, 시댁 으르신들보다 먼저 절을 받는데, 당연하다는 생각까지는 안 드셨던 모양이다.
그 뒤에도 내내 남편 손을 붙잡고 계속 고맙다 고맙다 하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5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사리 분별이 명확하시다. 정치 얘기도 아시고, 코로나도 잘 아신다.
그래도 할머니도 누군가 에게는 시집살이시키는 시어머니 이셨을 거다. 신세대 할머니도 할머니가 아닐 수는 없고 다른 시대를 살아왔을 수는 없으니까.
할머니 세대에게 요구하는 관념과, 아들의 세대에게 요구하는 관념이 다르기에,
똑같은 생각을 하고 반응을 했어도 할머니에게는 뭉클하고, 도우미 아주머니에게는 화가 났겠지.
결혼을 준비하며, 젊은 꼰대인 나와 남편은 젊지 않은 꼰대들과 영(young)한 부모님 세대와 부딛치며 우리가 얼마나 진보적인 사람인지 깨달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