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실명이 찾아오는 계절
봄은 슬픈 계절이다.
지나온 봄들을 돌이켜보면 아프지만 잊을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외할머니의 오랜 병상이 마무리된 시간이었고 오랜 친구가 억울한 사고로 곁을 떠났으며 친구의 부재를 납득하기도 전에 팽목항 근처로 막사가 한가득 세워지기도 했다. 또한 원가족의 기나긴 단절이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이듬해 엄마의 암 소식과 시작된 간병 생활로 아껴둔 봄옷을 옷장에서 꺼내지 못했다.
매 겨울이 춥고 외로워서, 봄을 기다렸건만 꽃 한 송이 마음 놓고 즐겼던 적이 있었던가.
봄은 나에게 돌봄을 바랐다.
할머니의 임종을 위해 막학기 시험을 제치고, 벚꽃 가득한 서울의료원에서 잠깐의 계절을 지냈다. 의지하던 존재가 떠났음에도 나는 울 수 없었다. 위로받아야 하는 건 그녀의 딸들이었다. 그들을 돌보는 게 우선이었다. 오랜 친구를 잃었을 때도, 이것은 개인의 일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남은 건 나 혼자가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신이 왜 존재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수밖에 없었고(종종 신의 부활을 기리는 절기가 겹쳤지만), 서로를 연민하는 방법을 택했다.
봄은 나를 떠나게 했다.
그간 밀린 학업과 알바가 버거워서 고모의 백혈병 간병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녀의 두 아들이 있지 않느냐고. 고모가 있는 혜화의 병동 곳곳은 벚꽃으로 가득했다. 흩날리는 꽃잎만큼 가족이 미웠고 내가 미웠다. 이윽고 내가 태어난 날을 저주하기에 이르자, 그 계절이 되면 사라지기로 마음먹었다. 겨우 하루. 집에서 두 시간 거리의 파주 출판단지에서 밤새 울었고 책 한 권을 읽고 나왔다. 그건 눈먼 자들의 도시.
올해는 반려견의 긴급 수술과 입원이 두 차례를 시작으로, 나 역시 갑작스러운 급성 근종이 발견되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꼼짝없이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였다.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엉엉 울었다. 복도에서 기다릴 남자 친구가 보고 싶었는데, 그가 보이니 더 크게 울었다. 어떤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소변 주머니 옆에서 머리 맞대고 자는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프다고 엉엉 울기. 그는 밤새 내 곁을 지켰고, 간호사실에 진통제를 수시로 요청했다.
젠장 차라리 간병하는 게 나았네.
이 와중에 생일은 꼬박 찾아와, 엄마의 미역국을 원 없이 먹게 했다. 이럴 거면 조금 더 잘해줄걸. 국 한술에 미안한 얼굴들이 떠오른다.
퇴원 길, 아직 피어있는 목련에게 고마웠다.
계절에 깜빡 속아주고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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