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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록차 Jan 30. 2021

책은 두 번 읽어야 한다.

내가 서평을 쓰는 이유

1주일에 한 권씩, 서평을 쓰고 있습니다.


서평을 쓰기 시작한 지 3달이 되어간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시작했고 스트레스도 받아가며 어찌어찌 써오고 있다. 과제가 아니라, 프로젝트에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발적으로 서평을 써본 게 얼마만인지. 서평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아깝다'는 감정 때문이었다. 대학원생도 아님에도 이거 저거 읽는 게 습관이라 그런지 기억하고 싶은 신선한 지적 충격이, 관점이, 감동이 그냥 흘러가는 게 아쉬웠다. 내용을 요약해야 하나 그냥 감상만 써 갈겨야 하나 고민을 꽤 하다가 어차피 누가 과제로 내주는 것도 아닌데 내 맘대로 쓰자 하고 마음대로 쓰고 있다. 


어떤 책은 이야기할 거리가 많아서 여러 개의 글로 나누어서 쓰고, 어떤 책은 하나의 글로 끝낸다. 어떤 책은 감상을 위주로 갈겨쓰고 어떤 책은 내용들을 나름의 언어로 정리하기도 한다. 내용 요약이 너무 많으면 그냥 비공개로 올린다. (실제로 글 몇 개는 내용 요약의 비중이 커서 나중에 비공개로 돌린 것도 있다.) 저작권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나름 신경 써서 작성하고 있다.


내가 자발적으로 쓴 최초의 서평은 2015년 대니얼 키스의 '앨저넌에게 꽃을'에 대한 서평이었다. 책을 읽고 한참을 울먹이다가 2015년 10월 21일에 6페이지 분량으로 갈겨쓴 서평이 아직 남아있다. 지금의 나도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그때의 나에 비하면 조금은 나아진 거 같기도.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던 그 시간이 그립기도. 다시 꺼내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서평의 효과


어떤 책을 그저 '읽었다'는 것과 '나의 관점과 생각으로 읽어냈다'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알고만 있는 지식이 중요한 순간에 힘을 발휘하기 쉽지 않은 것처럼, 읽어보기만 한 책은 '내 관점과 생각으로 읽어낸' 책과는 다르다. 책을 쓰는 저자들이 그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고민을 들이는지를 생각하면, 한번 읽어서 책을 내 관점과 생각으로 해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서평을 쓰게 되면 자연스럽게 최소한 2번은 그 책을 읽게 된다. 그리고 처음 읽을 때보다 훨씬 깊게 의미를 이해하게 되고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중요치 않다고 넘겼던 지점이 다시 보니 중요해 보이기도 하고, 구성의 짜임새 같은 것도 눈에 들어온다. 하나의 책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는 두 번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영화도 두 번 보는 사람들이 느끼는 재미가 있다. 서평은 나에게 그런 재미를 강제로 느끼게 해주는 좋은 도구다. 영어공부를 할 때도 미드나 영화를 하나 붙잡고 여러 번 반복해서 공부하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 아닐까. 내 관점으로 해석하고 내용을 이해하다 보면 현실의 복잡다단한 세상에 조금 덜 아프게 맞을 수 있다. 직접 체험해보는 경험의 생생함에 비견할 바는 아니지만, 간접경험의 매개체로 책만큼 단시간에 많은 정보량을 전달해주는 것도 거의 없다. 복잡한 현실을 덜 아프게 맞게 해 주고, 스스로의 지적 유희를 즐기기에 책은 정말 훌륭한 도구다. 그리고 서평은 그 도구를 내 방식대로 자유롭게 쓰게 해주는 훈련이다. 서평을 쓰기 위해서라도 책은 두 번 읽어야 한다.




다독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다독은 훌륭하다. 생각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삶의 간접경험을 위해 책을 많이 읽는 것이 나쁠 리가 없다. 가끔 1년에 3백 권이 넘는 책을 읽는다면서 독서량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아 나도 책 많이 읽어야 하는데'하는 압박 아닌 묘한 압박을 느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있다. 이전에 나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압박은 벗어던져도 좋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1년 동안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제대로 고민해보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얻게 해 줄 수 있다. 훌륭한 인사이트가 담긴 경영서는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적용하면 팀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 위대한 사상가의 책은 그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줄 수 있다. 물리법칙과 그 역사에 대한 책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많은 변화들을 더 능동적으로 파헤치게 사람의 성향을 바꿔줄지도 모른다. 집구석에 처박혀있는 전공책은 내용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에 6개월이 걸릴 수도 있지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엄청나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좋은 책 한 권에는 저자의 고민과 지식과 지혜, 삶이 녹아있다. 그걸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면 그만큼 작가와, 책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깊은 이야기를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하나가 피상적인 지인 백 명보다 낫다고 느끼는 것처럼, 깊이 이해한 책 한 권은 대강 읽고 치운 100권의 책 보다 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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