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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록차 Jan 28. 2021

강건하지 못한 우리를 설명하는 책 [프레임]

by 최인철

기대만큼 강건하지 못한 우리


최근 읽는 책의 대부분이 전제로 하는 것이 있다. 개인의 의지는 기대만큼 강력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기대보다 크게 영향을 받는다. 최근에 읽은 자기계발서, 마케팅 서적, 경제학 서적, 심리학 서적 등 대부분의 책들이 깔고 있는 전제다.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개인의 의지를 다지는 것보다 개인을 그런 환경과 루틴에 짜 맞춰 넣어야 한다. 스스로 합리적인 선택을 내린다고 믿지만 실상은 어떤 맥락/상황인지에 따라 선택 자체가 바뀐다. 대체 내가 어떤 것을 온전하게 내 의지로 선택했다고 할 수 있을까. [프레임]은 그런 생각을 더 강화하는 심리학 교양서적이다. 기대만큼 강건하지 못한 우리를 다시 한번 발견하게 한다.


[생각에 관한 생각]의 저자 대니얼 카너먼에서 비롯한 행동경제학은 사람의 선택에 있어 합리적 이성 이외의 수많은 요소들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주장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심리학자이면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프레임]은 그 대니얼 카너먼과 같은 맥락에 있는 책이다. 어떤 의사결정을 내릴 때의 상황, 맥락, 순서 등에 의해 형성되는 틀(=프레임)에 따라 우리의 선택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풍부한 사례로 이야기해준다. 단 [생각에 관한 생각]보다 훨씬 가볍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분량도 200페이지로 가볍고 글자도 커서 가독성도 좋다. 거기에 최인철 교수님 특유의 설명 능력까지 곁들여지니 정말 읽기 좋은 훌륭한 책이다.




한계이자 생존을 위한 도구, 프레임


이 책에서 주제로 다루고 있는 '프레임'은 우리가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마인드 셋, 세상에 대한 은유, 고정관념 등을 폭넓게 의미한다. 워낙에 넓은 의미로 쓰여서 개인적으로는 선택을 할 때 그 선택이 일어나는 상황적/심리적 상태를 의미한다고 이해해도 편하다.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이해가 빨라서 그런지 저자도 '핑크 대왕 퍼시'의 예시를 들어 프레임의 개념을 설명한다. 세상 모든 것을 핑크색으로 바꾸고 싶어 했던 핑크 대왕이 핑크 색안경을 쓰게 됨으로써 하늘까지 핑크색으로 물들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 


프레임은 우리가 선택을 내리는 모든 순간마다 작동한다. 배가 고프면 유독 음식점들이 눈에 많이 띈다. 부모가 되면 아이들에게 위험한 여러 가지 가구 모서리들이 눈에 띈다. 세상이 그렇게 바뀌어서가 아니라 거리를 '음식이 있는 공간'으로 프레임하고 집안과 세상을 '내 아이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공간'으로 프레임하여 바라보기 때문에 그렇다. 실제 세상이 변한 건 없음에도.


저자는 [프레임]에서 일부러 그런 프레임의 한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만 프레임은 우리가 살아갈 때 필수적인 생존 도구에 가깝다. 배고플 때 어떤 것들을 '음식이 있는 공간'으로 바라보고 탐색을 하는 것은 집중도를 높여 더 효율적으로 음식을 찾게 해 준다. 위험한 순간에 공포에 떨며 수풀 속을 '위험이 있는 공간'으로 바라보는 것은 실제 사나운 맹수나 독사로부터 살아남게 해주는 생존 도구이다. 이런 프레임이 없이 처리하기에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프레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따라서 프레임 개념을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내가 현재 특정한 프레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한 발치 떨어져서 바라보는 그 자체이다. 스스로에 대한 메타인지를 통해 스스로를,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 관찰 자체만으로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책의 구성과 기억할만한 프레임들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7개의 장으로 이루어진다. 

1장 나를 바꾸는 프레임
2장 세상, 그 참을 수 없는 애매함
3장 자기 프레임, 세상의 중심은 나
4장 현재 프레임, 과거와 미래가 왜곡되는 이유
5장 이름 프레임, 지혜로운 소비의 훼방꾼
6장 변화 프레임, 경제적 선택을 좌우하는 힘
7장 지혜로운 사람의 10가지 프레임

1장과 2장은 나-프레임-세계 사이의 관계를 여러 가지 연구사례로 풀어서 이야기해준다. 아직은 프레임이라는 개념이 낯선 독자들에게 프레임의 맛을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처음 접하면 충격적일 수 있는 프레임의 개념들에 놀라다가, 반발심이 들다가 이런 것까지 프레임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 순간들을 몇 번 거치게 된다. 이미 프레임 개념을 알고 있더라도 '아' 하는 순간이 상당히 많다.


-실험에서 단지 실험의 이름만 '월 스트리트 게임'과 '커뮤니티 게임'으로 다른데 게임 참여자들의 선택이 보다 경쟁적으로 혹은 협동적으로 달라진다.

-실험을 하는 환경에 경쟁심을 상징하는 물건들(서류가방, 사무용 펜 등)이 놓여있다면 더욱 경쟁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질문이 '얼마나 내향적인지'를 물어보면 우리는 내향성의 증거를 찾아 더 내향적이라고 평가하게 되고, '얼마나 외향적인지'를 물어보면 외향성의 증거를 찾아 더 외향적이라고 평가하게 된다. 

-동메달이 은메달보다 행복한 것은 비교의 참조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메달이냐 아니냐'에서 '메달'이 된 동메달은 '1등이냐 2등이냐'에서 2등이 된 은메달보다 행복감이 높다.

-원래 가격이 1만 원에서 2천 원을 할인했을 때의 행복감이 100만 원에서 2천 원 할인했을 때의 행복감보다 크다. 둘은 동일한 금전적 이득임에도 참조점이 달라 느끼는 행복감이 다른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스쳐 지나간 아인슈타인의 사진을 본 학생들은 스스로의 지능을 더 낮게 평가한다. 심지어 그들이 아인슈타인을 보았다고 인식하지 못함에도 그렇다.


1장과 2장을 읽다 보면 아... 이런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그러고 나서 더 구체적인 3~6장의 프레임 개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 구성 자체가 책의 가독성을 높여주는 장치인 것이다. 당연히 3~6장의 프레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것이 많지만 우선은 1장과 2장에서 다룬 프레임들 중에 '의미 중심 프레임'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의미 중심 프레임을 갖기 어려운 이유


의미 중심 프레임이란 어떤 일을 더 고차원적인 차원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프레임을 말한다. 그냥 분리수거를 하는 게 아니라 다음 세대에 더 나은 자연을 물려주기 위해 하는 것으로 더 추상적인 프레임에서, 더 고차원적인 프레임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의미를 고차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행복감을 높여줄 수 있다. 케네디 대통령이 아폴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NASA를 방문했을 때 만난 청소부가 '저는 지금 인류를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라고 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왜 이 일을 하는지 의미를 부여하고 목적의식이 명확할 때 더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의미 중심의 프레임은 명확한 Why를 갖고, 목적의식을 갖고 일하는 것이다. 팀장으로 일을 할 때 이 일을 왜 하는지, 목적을 항상 상기하면서 팀원들과 이야기했다. '~에서 최고의 ~를 제공해서 한국 제일이 되자'며 팀원들을 독려했고 이 목적의식이 통일되어 일할 때 더욱 의욕적으로 높은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의미 중심 프레임은 행복감을 고양함과 동시에 높은 생산성을 갖게 하는 프레임이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직장인들의 대화가 '다 먹고살려고 하는 거죠 뭐'라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네 한계에 대한 자조적인 표현이고, 체념이다. 이 일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의미 부여하기 힘든 일에 억지로 의미 부여하려고 해 봐야 우리만 힘들다는 쓸쓸한 배려다. '다 먹고살려고 하는 거죠'는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퍼진다. 그리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도 짜게 식어버리게 한다. 딱히 이야기를 해서 더 행복해지지 않음에도 이런 자조적 공감대는 일하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실재한다. 왜? 의미 중심의 프레임으로, 목적을 생각하며 일하면 서로에게 윈윈인데?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두 관점을 갖는 것의 어려움

우리가 발을 딛고 하는 모든 일들은 How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항상 필요하고 정해진 기간 내에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제시된다. 단기적인 목표를 보면서 동시에 장기적인 목적/의미를 보는 것은 의식적으로 계속 붙잡지 않으면 원래 어려운 일이다. 많은 집단에서 시각화된 공통의 목적을 벽에 걸어두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의식하고 있든 아니든.


2. 목적이 정렬되는 것의 어려움

목적의식을 가지면서 동시에 단기적인 목표 달성을 고민하는 것은 원래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특정한 목적이 다른 이들에게 바르게 align 되는 자체도 어려운 일이다. 만약 팀의 목적과 개인의 목적이 충돌한다면? 나는 아이를 낳아서 잘 기르는 게 이 직장에서의 의미인데 팀은 단기간 스프린트가 요구된다면? 팀이나 개인의 책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여러 목적이 정렬되는 자체가 어렵다. 설령 같은 목적을 갖더라도 그 목표까지 올바르게 정렬되기는 더 어렵다.


A. 팀의 목적(Why, 이 일을 왜 하는지, 이 일의 의미는 무엇인지)

B. 개인의 목적(Why, 이 일을 왜 하는지, 이 일의 의미는 무엇인지)

C. 팀과 개인이 합의한 목표(How,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A와 B도 정렬하기 어려운데 C까지 정렬이 되어야 한다. 그나마 정렬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런 노력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개인의 목적과 반발 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공감할 수 없는 목적 아래에서 일에 의미 프레임을 부여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 된다. 그래서 괴롭지 않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먹고살려고 하는 거지'로 내려온다. 괴롭지 않으려고 선택했지만 동시에 행복해지기도 어려워진다.




의미 중심 프레임의 위험성


동시에 의미 중심의 프레임은 현재 하는 일의 구체성을 매몰시키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조금만 비틀어서 생각해보면 특정 목적을 위해 지금 하고 있는 무엇이든 정당화할 수 있게 된다. 아무리 궂은 일을 하고 있어도, 그 일의 의미가 숭고하니까, 그 목적이 숭고하니까 괜찮은가? 아무리 나쁜 일을 하고 있어도 그 의미는 숭고하니까 괜찮은가? 조금 더 비틀어서 '우리 정당이 이겨서 대한민국의 정의를 세워야 하니까, 지금 당장 거짓말로라도 우리는 이겨야 한다'는 어떤가. 한발 더 나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니까, 이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지'가 되면 어떤가. 이 모든 것들은 구체적으로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을 똑바로 바라보기보다 의미 프레임에서만 일을 바라볼 때 가능하다. (혹은 극단적인 사익 추구의 경우에도 가능하다.)


의미 프레임은 추상적인 목적과 이유를 위해, 행복감을 고양하기 위해 좋은 도구지만 지나치게 매몰되면 그 역시 위험할 수 있다. 만능인 도구가 없는 것처럼 만능인 프레임도 없다.


원래 [프레임]은 책이 짧아서 가볍게 읽고 넘기려고 했는데 1장에서 이미 예정 분량을 초과해버렸다. [프레임] 시리즈도 3~4개의 글에 걸쳐서 감상을 써내려갈 거 같다. 2월 중에는 끝낼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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