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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록차 Jan 27. 2021

Strong opinions, loosely held

실천하기 어려운 격언

토론과 줏대 없음


고등학교/대학교에서의 기억이다. 논쟁이 될만한 이슈를 가지고 찬성/반대 입장으로 나누어서 토론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토론대회, 세미나 등등... 만약 내가 찬성하고 옹호하는 논거보다 상대팀의 주장이 옳으면 나는

'그런 부분은 미처 생각 못했네요. 그런 근거라면 반대하는 입장이 더 타당한 거 같습니다'

라고 납득하고 의견을 바꿔버리곤 했다. 왜 그랬을까 가만히 돌아보면 2가지 이유가 있었다.


1. 준비가 부족한 경우

준비가 부족하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 부끄럽지만 실제로 토론대회에서 준비가 부족해 경험했던 일이다.


2. 토론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다를 경우

나는 보통 정답(에 가까운 것)을 얻고자 토론에 임했다. 내가 치열하게 준비해 갔음에도 더 정답에 가까운 것이 있으면 나는 그것을 인정해버리게 되었다. 논쟁에서의 승리보다 내가 얻어갈 정답에 집중했던 것이다.


줏대가 없는 건가. 내가 내 주관이 뚜렷하지 않은 건가. 혼란스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뭔가 내가 이상한 거 같으면서도 인정하기는 불편한 머릿속을 한방에 정리해준 격언이 Strong opinions, which are weakly held 였다. 지금도 강하게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격언이다.




격언의 의미


실리콘 밸리의 거물 투자자 Mark Andresson이 사용했다고 하는 이 표현은 종종

Strong opinions, which are weakly held 

혹은 

Strong  opinions, loosely held

로 쓰인다. 한글로는 '강력한 의견과 침착한 태도' 정도로 번역된다. 단호한 견해들을 갖고 있되 더 나은 견해에는 열려 있을 수 있도록 느슨하게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얼핏 이상해 보이지만 팀 차원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이만한 격언이 없다고 나는 믿는다.


Strong opinions는 자신의 견해를 단단하게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단호한 견해들을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고민과 준비가 필수적이다. 충분한 고민이 녹아있는 견해들은 (팀의,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전달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성과를 낼 가능성, 프로젝트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팀-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Strong opinion이 필수적인 경우가 많다.


Loosely held는 동시에 더 나은 견해가 있다면 그에 숙이고 더 나은 견해에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잘 실천하기 위한 좋은 방안이 있다. 자신이 주장하는 A와 대립하는 B라는 의견이 있을 때, "A가 더 나은 이유"를 찾는 게 아니라 "B가 더 나은 이유"를 찾는 것이 그것이다. B가 더 나은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B를 주장하는 사람과 직접 더 대화를 나누거나, 따로 스스로 찾아보는 방법이 있는데 보통은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이 효과적이고 강력하다. Mark Andresson은 특히 뛰어난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Loosely held를 잘 실천한다고 이야기한다. 반대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Why를 더 물어보고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는 것이다.




격언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


이 격언을 팀에/프로젝트에서 실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2가지가 있다.


1. 상대방으로부터 더 좋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내가 강하고 단호한 견해를 전달하면 그에 반발하는 의견도 더 강력해지는 효과가 있다. Mark Andresson은 아예 이런 강렬한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명 Red team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열쇠라고 이야기한다. 강력하게 의견을 개진할수록 강력한 반대 의견에 부딪힌다. 그리고 치열한 논쟁 끝에 나오는 결과물은 어정쩡한 합의를 통해 나온 결과물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강철을 단조하여 더 강한 철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더 강하게 주장하면 더 좋은 결론이 나오게 된다.


2. 스스로도 더 좋은 결론을 내리기 위해 애쓰게 된다.

정 반대에서 자신을 철저하게 부셔버릴 상대를 찾으려면 스스로도 상대방을 철저하게 부숴버릴 각오로 준비해야 한다. 고려하지 못한 부분은 없는지, 논리적이지 않은 연결은 없는지, 한계와 단점은 충분히 고려했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주장하는 의견(대안)은 더 좋은 결론으로 다듬어진다.



실천의 어려움


하지만 이 격언을 실제로 실현하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다. 


1. 외부의 어려움

당연한 전제지만 논쟁하는 상대방과 같은 목적을 갖고 있어야 한다. 서로의 목적이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통일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경우도 꽤 많다. 예를 들면 팀장은 프로젝트의 성공을 최우선 순위로 두지만, 팀원 중 누군가는 쉬엄쉬엄 적당히 일하고 싶어 할 수 있다. 혹은 누군가는 프로젝트 내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게 목적일 수도 있다. 목적이 통일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 격언은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게다가 목적이 같은 팀원들 사이라도 '상대방 역시' 그만큼 치열해야 한다. 똑같이 strong opinions를 공유할 팀적인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 설령 목적이 같은 사람들끼리라 할지라도 치열하게 논쟁하기 싫어서 그냥 따르거나 적당히 넘어가는 팀원이 있다면 이 격언의 효과는 반감된다. 오히려 강하게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이 점점 더 모난 돌로 비치거나 팀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높다.


2. 내면의 어려움

상대방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검토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무의식적으로 내 의견이 더 낫다는 근거를 찾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특히 '전체를 어느 정도 아는 팀장'과 '세부적인 실무를 꽉 잡고 있는 팀원'이 의견 충돌이 있을 경우 더 그러기 쉽다. 둘 다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여 상대방의 의견을 '이미 검토해본 대안'으로 치부해버리고 넘길 가능성이 정말 높기 때문이다. 혼자 상대방의 대안을 검토하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의견만 강화시키는 경우가 잦다. 이건 Strongly held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상대방 의견을 다시 검토하기 위해서는 직접 당사자와 대화를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공식적인 회의자리가 아니라도 괜찮다.(사실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어서 더 좋을 때도 많다) '이해가 잘 안되어서 그런데 B 주장에 대해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가서 물어본다. 묻다 보면 서로가 회의시간에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이야기를 보충하고, 그 자리에서 직접 시연하거나 샘플을 보여주거나 레퍼런스를 공유하면서 이해가 한층 깊어진다. 그러면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팀/프로젝트를 들어 이야기했지만 모든 토론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토론은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해내기 위해 이루어진다. 우리가 주로 보는 정치인들의 100분 토론에서는 찬성/반대가 정해진 토론처럼 '더 나은 결론'을 위한 방향 전환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토론의 목적이 종종 '상대방 의견을 부수고 승리하는 것'으로 여겨질 때가 잦다. 그런 토론 역시 필요할 수 있지만 더 많은 토론이 승리가 아니라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면 얻을 것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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