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을 만들면서도 내가 되는 시간에 관하여
"당신이 굴튀김에 관한 글을 쓰면, 당신과 굴튀김의 상관관계나 거리감이 자동으로 표현되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끝까지 파고들면 당신 자신에 관해 쓰는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굴튀김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민스 커틀릿이든 새우 크로켓이든 상관없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2011)
손화신 작가의 책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을 읽다가 하루키의 글을 이용한 부분에 마음이 꽂혔다. 자기소개서 쓰기가 힘들다며 고민을 말한 독자에게 위와 같이 제안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혜안이 짐작되는 부분이었다. 손화신 작가는 위 구절을 인용하며 말한다. "무엇에 관해 쓸 것인지 너무 많이 고민할 필요는 없다. 무엇을 쓰든 그 길의 끝엔 내 안의 '나'가 기다리고 있고, 우리의 목적은 그곳에 도착하는 거니까.(손화신,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 "라고. 아직 그만한 혜안은 없어 다른 작가들의 혜안에 빚지고 있는 나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글의 소재에 관해 고민할 때,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고 싶었던 날 종종 일상 속 나의 요리들이 나의 뮤즈가 되어주었던 이유를. 글감의 고갈을 느낄 때, 아침에 만든 이 요리에 관해 쓰자라고 생각하면 다시 무엇인가를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의욕이 생기곤 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나는 결국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이다. 단순히 요리 방법을 설명하는 요리에 관한 글 말고, 개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요리에세이를 쓰고 싶었던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요리의 옷을 입었지만 나는 나에 관한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손화신 작가는 글쓰기에서 끝내 드러날 나를 강조하며 글쓰기 소재를 '옷'에 비유한다. "굴튀김에 관해 쓸지, 지구 온난화에 관해 쓸지 망설이는 건 어쩌면 '오늘은 어떤 옷을 입고 걸을까?'라고 고민하는 것과 비슷하다."라고. 비로소 소재는 중요하지 않다는 오래전 들었던 이야기를 이제야 조금 진정으로 내면화할 수 있는 때가 왔음을 느꼈다. 소재가 빈약하거나 고갈될 것에 관한 두려움에서 이제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의 글쓰기 의상으로 얼마 전부터 머릿속에 떠올랐던 김밥을 택하기로 했다.
최근 들어 부쩍 자주 만드는 요리 중 하나는 김밥이다. 잘 먹는 아이는 둔 덕에 아이가 적게 먹을 것에 대한 우려는 없지만 문제는 편식이다. 채소를 먹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 생각해 낸 방법은 볶음밥, 주먹밥과 함께 종종 김밥을 만드는 일이었다. 배경사진에 사용한 김밥 사진은 급한 대로 집에 있는 재료들을 활용해 만든 김밥이지만, 아이를 위해 평소 만드는 나의 김밥은 하나의 과정을 더 거친다. 냉장고에 있는 채소(애호박, 당근, 양파 등)들을 다져서 기름을 살짝 두른 팬에 식감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볶아서 익혀주고, 그 채소를 계란물에 넣고 부쳐 채소 계란 지단을 만드는 일이다. 계란 안에 이미 애호박, 당근, 양파 등이 잔뜩 들어있어서 골라낼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채소를 많이 먹이는 것이 나의 묘책이었다. 메인인 채소 지단과 더불어 아이가 골라내지 않는 재료인 햄이나 맛살, 어묵등을 별도로 넣고 김밥을 말아주면 잘 먹어서 자주 만드는 요리가 되었다. 즐겨하는 모든 요리가 그렇듯 이 요리 또한 방법은 간단하다. 밥에 후리카케와 참기름을 뿌려 간을 맞추고 김은 한국의 조미김을 사용해 재료를 올리고 말아서 미니김밥을 만들거나, 김밥용 김을 사용해 조금 크게 만들어준다. (참고로, 일본에도 초밥의 밥처럼 달착지근하게 간을 해 만든 김밥이 보편적이라 김밥용 김이 흔하다. 두껍고 튼튼해서 김발등의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손만으로 예쁘게 김밥을 말 수 있다.) 이렇게 나의 손끝에서 예쁘게 만들어진 김밥은 활용도가 높다. 식탁 위에 올려두면 가족들이 한두 개 집어 먹기도 하며, 때로는 남편의 출근길에 동행하고, 때로는 아이 도시락에 조연으로 등장한다. 얼마 전에는 아이와 함께 다녀온 유치원 봄 소풍에 메인 메뉴로도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아이가 가끔 컵라면을 먹고 싶어 할 때, 한 끼 끼니를 컵라면 만으로 해결해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을 보완해 주기에 손색없는 사이드 메뉴가 되기도 한다.
가끔 일상의 음식의 소재가 고갈될 때면 종종 김밥을 만들곤 한다. 잘 말아진 김밥을 잘라 접시에 놓고, 알록달록한 색감의 단면을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은 '사랑스러움'이다. 그래서 김밥의 사랑스러움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다. 만들기 어렵지 않고, 특별히 손맛이 없어도 적당한 맛이 보장되며 골고루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고 나아가 예쁘기까지 한 김밥을 앞으로도 자주 만들 것 같다. 이렇게 오늘의 글쓰기 의상으로 김밥을 입으며 나는 또 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