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잔치국수

잔치국수의 압승(壓勝)

by 수진

임경선 작가는 그랬다. 작가는 자신의 대표작을 스스로 정할 수 없다고. 내가 비교적 자주 하는 창작 활동인 요리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주는 요리를 하는 한, 요리하는 자도 자신의 대표작을 스스로 정할 수 없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잔치국수'는 나의 대표작이 되었다. 기술도 비법도 특별한 손맛도 전혀 없는데, 가족들이 열광하는 잔치국수는 어느덧 나의 가장 맛있다 일컬어지는 요리가 된 것이다.

며칠 전의 일이다. 하루종일 집에 있던 우리 가족은 주말 저녁 산책도 할 겸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인터넷 평점을 신뢰하는 남편의 검색에 따라 한 레스토랑이 추천되었고, 나는 오가며 그곳을 보고 내심 궁금했던 터라 이번기회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골목길 주택건물 1층에 자리해 평범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그 레스토랑은 '우리 동네에 이런 곳이?' 싶게 내부 인테리어는 근사했고 조명도 예뻤다.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그곳에서 대표요리로 꼽히는 특제 파스타와, 로스트비프 샐러드 등 몇 가지 요리를 주문했다. 요리의 플레이팅을 볼 때까지 저녁식사 장소 선택의 만족도가 높았으나 예상과 달리 요리는 익숙한 맛이 아니었다. 비유를 하자면 마치 프랑스가 연상되는 맛이라 해야 할까.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나는 분위기를 즐기며 낯선 요리들을 맛보고 있는데 지극히 한식을 선호하는 남편과 이국적인 음식의 향이 불편해 그나마 입맛에 맞는 빵을 뜯어먹던 아이는 새롭게 저녁메뉴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꼬드김으로 두 남자가 고른 메뉴는 잔치국수. 지금 저녁을 먹었으니 내가 선뜻 안 만들어 줄 것 같아 아이를 앞세운 그의 전략이 보였지만, 충분히 집에서 쉬고 나갔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고 온터라 나는 모르는 척 넘어간다.

KakaoTalk_Photo_2023-05-17-07-43-40.jpeg 음식맛은 차치하고 우리 동네에도 이런 분위기의 식당이 있었음을 발견했다.

산책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잔치국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조리과정은 간단하다. 냄비에 물을 끓이며 냉동실에 있는 멸치 한 줌을 던져 넣고, 냉장고에 약간의 무, 대파 아랫부분, 표고버섯 밑동 등이 있다면 함께 넣고 끓여준다. 더 깊은 맛을 위해 다시다도 밥숟가락으로 하나 안되게 조금 넣고, 소금도 살짝 넣어 육수에 간을 해준다. 따로 계량할 필요는 없다. 혹시 이 모든 것이 없거나 귀찮으면 멸치랑 다시다만 넣고 소금간만 살짝 해도 무방하다. 육수가 끓는 동안, 대파나 쪽파를 잘게 다져 간장, 고춧가루, 참기름과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정해진 분량은 없다. 눈대중으로 대충 1:1:1:1 정도의 비율로 넣으면 될 듯하다. 다음은 고명. 이것저것 만들어 봤자 귀찮기만 하고, 먹을 때 별다른 차이가 없으니 다 생략하고 계란지단만 잔뜩 만들어 조미김을 잘라서 같이 올려준다. 계란 두 개를 그릇에 풀어 프라이팬에 얇게 부쳐서 채 썰면 완성. 모든 재료준비가 끝나면 면을 삶는다. 다행히 이곳에도 얇고 부드러운 소면이 있다. 밤에 많이 먹어 좋을 건 없으니 한 묶음이 0.7인분 정도 되는 소면을 세 묶음만 삶기로 한다. 끓는 물에 소면을 넣고, 다시 물이 끓으면 물을 한 컵 넣고 한번 더 끓여주면 완성. 삶아진 면을 찬물에 헹궈 채반에 받쳐준다. 양념장과 고명과 면이 준비되는 동안 육수는 계속 끓고 있어야 한다. 큰 그릇에 삶아서 물기를 뺀 면을 넣고 준비한 고명을 올린 뒤 육수를 부어주면 끝이다. 양념장은 먹을 때 각자의 기호에 맞게 알아서 넣어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의 잔치국수는 식탁에 올라가자마자 강렬한 면치기 소리와 함께 10분도 안되어 사라진다.

KakaoTalk_Photo_2023-05-15-10-39-35.jpeg 글을 쓰기 위해 잔치국수의 과정샷을 찍어보았다.

두 남자는 이제야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며 맛있었음을 과하게 어필한다. 방문했던 식당에서 먹었던 요리와 잔치국수를 떠올리니 가격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으나 그럼에도 나의 압승(壓勝), 아니 잔치국수의 압승이었다. 바람직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잔치국수는 오늘 또다시 그 명성을 우리 집에 떨치며 나의 대표작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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