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캘리포니아 김밥'

당신을 향한 오마쥬(hommage)

by 수진

오마쥬(hommage): 프랑스어로 '존경'을 의미하는 단어. 일반적으로 타 작품의 핵심 요소나 표현 방식을 흉내 내거나 인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존경'이라는 의미답게 모방을 통해 원작에 대한 존경심의 표출 그 자체가 목적이다.-출처:나무위키


아이를 위한 요리는 종종 소재고갈에 부딪친다. 글쓰기 역시 소재고갈을 만나곤 하지만 분초를 다툴 만큼 급박하지 않아 숨을 고르며 찾아볼 여유가 있음에 반해, 요리는 급하다. 시간상의 데드라인이 있어 늦지 않게 대안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물론 아무거나 만들 수는 있지만 문제는 아이디어는 부족한 와중에 메뉴의 잦은 반복을 못 견디는 나다. 같은 음식의 빈도수가 잦으면 질려버려, 아마 아이도 그럴 것이라 여기고 창의적이 되고자 노력하지만 딱히 그러고 싶지 않을 때 쓰는 방안은 엄마의 요리를 '오마쥬' 하는 일이다. 내게 요리 '치트키'로는 인스턴트식품과 양대산맥으로 '엄마의 요리'가 있다.

엄마의 요리를 생각하면 나는 조금 든든해진다. 엄마의 요리는 성실했고 맛이 아름다웠다. 부족한 나의 언어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엄마가 만든 요리에는 몸과 마음을 모두 충족시키는 기운이 담겨있었다. 그것은 종종 기술의 차원을 뛰어넘어 예술의 영역도 오갔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갖가지 제철재료들과 손맛이 어우러져 신속하고도 아름답게 펼쳐진 엄마의 식탁을 기억하며 한때 그곳을 누렸던 나는 가끔 기억을 더듬어 엄마의 요리를 소환한다. 그리고 오마쥬 한다. 엉성한 나의 솜씨로 그 요리의 본질이었던 아이를 위한 마음만 제대로 살려서. 기억력의 한계로 엄마의 요리들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형제자매라는 공동 기억 저장 장치가 있어 나의 기억의 용량보다도 폭넓게 엄마의 메뉴들을 소환해 활용하곤 한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캘리포니아 김밥'을 기억해 낸 것도 같은 경로를 통해서였다. 언니가 보내준 조카의 식사 사진을 보고 '캘리포니아 김밥'과 함께 했던 어느 날의 식사를 떠올렸다. 엄마가 생소한 '캘리포니아 김밥'이라는 요리를 만들어 준 그날을. 다양한 김밥 재료들을 펼쳐놓고 가족들과 각각의 기호에 맞게 밥과 함께 김에 싸서 먹었던 그날의 충만한 기억을.

보편적인 '캘리포니아 롤' 과는 분명 다른 요리인 그 요리의 이름이 '캘리포니아 김밥'인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들어서 그렇게 알고 있었고 '셀프김밥'이라는 건조한 단어로 대체하고 싶지 않은 내게 그 요리는 앞으로도 계속 캘리포니아 김밥이리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의외로 캘리포니아 김밥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반가웠다. 이름의 유래는 결국 찾을 수 없었고 궁금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 '캘리포니아 김밥'을 만들기로 했다.


일어나니 평소보다 늦은 아침이었고 계획대로 캘리포니아 김밥을 먹여 유치원에 보내기에 살짝 빠듯할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플랜 B를 준비해놓지 않아 약식(略式)으로 만들기로 했다. 감자를 채 썰어 볶고, 그 팬에 계란도 스크램블로 익혀주고, 어육소시지도 잘라주고, 맛살도 잘라 한 접시에 담아주었다. 아직 잘 먹지 않는 생 채소들은 생략한 대신 부족한 영양소는 과일로 보완하기로 하고 밥과 조미김을 펼쳐 캘리포니아 김밥을 완성했다. 말이 캘리포니아 김밥이지 지나치게 약식이라 평소 먹던 밥이랑 다를 바가 없어 보였지만, 아이는 김에 몇 안 되는 재료들을 선별해서 넣고 싸 먹으며 즐겁게 '캘리포니아 김밥'과 첫 만남을 가졌다.

언니가 만든 캘리포니아 김밥(좌)와 내가 만든 캘리포니아 김밥(우), 의미없는 비교지만 언니것이 좀더 오리지널에 가깝다.

그렇게 나는 캘리포니아의 도움을 받아, 아마 캘리포니아와 상관없을 그곳의 요리로 아침의 급한 불을 껐다.


문득 가보지 않은 캘리포니아를 한번 상상해 본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김밥을 싸 먹는 상상을...이라고 덧붙이면 오글거릴 것 같아 상상은 캘리포니아에서 멈추기로 한다. 글쓰기에도 엄마의 요리 같은 '치트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글쓰기의 캘리포니아 김밥을 고민해 본다. 이번에는 약식(略式)이 아닌 정식(正式)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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