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도시락
요리에세이를 좋아한다. 레시피만 설명해 주는 책이 아닌, 요리에 얽힌 작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요리 에세이를 재미있게 읽곤 했다. 새로운 요리나 레시피를 아는 즐거움이 있었고, 요리에 관한 글은 온기를 품고 있어 좋았다.
글을 쓰고 싶었을 때 소재에 관해 고민하며, 언젠간 요리에 관한 글도 쓰겠다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시작이 거창해야 한다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원하는 일을 계속 '막연함'의 영역에 둘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조금씩 요리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시작은 그 자체로 언제나 환영받을 일이므로. 막상 시작해 보니 그것은 막연했을 때만큼 엄두가 안나는 일은 아니었다. 글을 위해 일부러 요리를 한다면 부담되었을 수 있지만, 자주 요리를 하는 지금 요리에 관한 글을 쓰기에 적절한 시점인 것 같아 기회가 닿는 대로 일상의 소박한 요리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최근 만든 요리의 콘셉트는 '호빵맨'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도시락을 싸는 요즘, 도시락 아이디어를 염두에 두며 무언가 못 보던 식재료나 새로운 메뉴를 보면 나의 도시락에 어떻게 접목할지 고려하곤 한다. 같은 이유로 얼마 전 마트에 갔다가 호빵맨이 그려진 한펜(はんぺん, 대구살과 계란 흰자를 넣어만든 부드러운 식감의 어묵)을 발견하자 도시락 콘셉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채소를 많이 먹일 수 있어 종종 만들어주는 주먹밥 도시락이 비주얼적으로 미완의 느낌을 줄 때가 있었는데, 호빵맨으로 화룡정점을 찍어 완성도를 높이자는 것이 그 계획이었다. 재능을 타고나지 않는 한 실력은 반복에서 나오듯 일주일에 두 번 도시락을 싸기 시작한 지 1년이 되어 가는 요즘, 나의 도시락은 점점 모양이 좋아지고 있고 그럭저럭 잘 해낼 수 있는 일이 되었다. 무엇보다 일본은 도시락 싸기를 도와주는 장비와 식재료가 많아 다양한 시도를 해보기 좋은 환경에 있다.
얼마 전 구입한 호빵맨을 드디어 사용해 볼 날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전날 시간 예약을 해둔 대로 취사가 진행되고 있어, 커피를 내리고 바로 도시락 만들기를 시작한다. 먼저 할 일은 제철 과일 손질이다. 오늘의 제철과일은 사과와 딸기를 준비하기로 한다. 도시락에 담기 좋게, 1cm 정도의 작은 큐브 형태로 잘라주고, 남은 부분은 한 곳에 모아두었다. 다음은 메인메뉴 주먹밥 차례. 시간 절약을 위해 전날 미리 잘게 다져둔 채소(당근, 새송이 버섯)를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식감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한참 볶아서 큰 볼에 넣어주고, 계란은 스크램블로 만들어 준다. 이 정도 과정을 진행하니 어느덧 취사가 완료되어 있다. 갓 지은 뜨거운 밥에 준비된 채소와 스크램블 에그, 참기름, 후리카케, 김자반을 넣어서 섞어준다. 그리고 모양 잡기. 경험상 주먹밥은 랩으로 뭉칠 때 가장 모양이 잘 나오니 랩에 싸서 한입크기로 동그랗고 단단하게 뭉쳐 미니 주먹밥을 만든다.
메인메뉴 준비를 마치면 사이드 메뉴를 준비를 시작한다. 물론 주먹밥은 단품으로도 충분지만, 한 가지 음식만 먹으면 맛의 다양성이 부족할 것 같아 사이드 메뉴를 함께 만들어주는 편이다. 오늘 사이드 메뉴로는 '까르보 (떡국) 떡볶이'를 곁들이기로 한다. 한류붐의 혜택으로 이제 동네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떡국 떡 한 줌을 전날 미리 물에 불려둔 뒤 우유에 넣고 끓인다. 우유가 끓으며 떡이 부드러워질 즈음 까르보나라 소스를 넣고 끓이다 마지막에 치즈도 반 장 넣은 뒤 치즈가 녹으면 불을 끈다. 실패 없는 레시피로 오늘도 제법 맛있게 까르보 떡볶이가 만들어졌다.
이제 마지막은 테트리스 단계이다. 크지 않은 도시락통에 준비한 음식을 최대한 많이 담기 위해서는 테트리스처럼 빈틈없이 차곡차곡 담는 것이 핵심이다. 뚜껑을 덮는 여유 공간까지 감안하면 음식을 도시락 통보다 높게 담아도 되므로 칸막이로 메인요리 공간을 확보한 뒤 주먹밥을 빈틈없이 높이 담고, 맨 위에 호빵맨 가마보코를 올려 화룡정점을 찍는다. 전체 도시락통의 1/3 정도 차지하는 서브요리 공간은 과일을 담아야 하니 섞이지 않도록 다시 절반으로 나눠 반은 떡볶이, 반은 미리 큐브형태로 잘라둔 계절과일을 차곡차곡 담는다. 끝으로 메인요리의 호빵맨과 연속성을 위해 서브요리에도 작은 호빵맨 픽을 꽂아주었다.
이렇게 오늘도 제법 예쁜 도시락이 완성되었다. 평소에 완성된 도시락만 사진으로 남기곤 하는데 오늘은 도시락 만드는 과정을 글로 쓰고 싶어 제작과정도 사진으로 찍어보았다.
도시락 제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동선이 꼬이지 않도록 나만의 리듬을 타는 일이다. 제한된 시간 내에 만들기 위해 멀티가 필수인데, 커피를 내리며 틈틈이 과일을 손질하고, 채소가 익을 동안 프라이팬 한쪽으로 스크램블을 만들고, 떡이 삶아지는 동안 다음 재료를 미리 준비하는 등의 동선이 꼬이지 않고 효율적으로 진행되도록 나만의 리듬에 맞춰 움직여야 시간 내 계획대로 도시락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어느덧 몸에 익으면 분주함 속에서도 조용한 평화가 주는 작은 즐거움에 종종 마음이 힐링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호빵맨 도시락을 끝으로 이번주 두 차례 도시락 미션도 완료되었다. 예쁜 도시락을 먹으며 아이가 평온한 하루를 보내기를! 도시락을 만드는 시간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