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을 만드는 시간

시한부(時限附)의 고요함

by 수진

아이가 일본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이래 주 2회 도시락을 만들고 있다. 일본은 도시락이 유명하고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 문화가 꽤 보편적이라 일본에 오면 도시락을 만들어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요리를 즐기지 않지만, 도시락 싸기는 재밌을 것 같아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다. 가벼운 마음에 부담감이 얹힌 것은 잘못된 소문을 들은 뒤였다. 도시락이 안 예쁘면 아이가 이지메(따돌림)를 당할 수도 있다는 소리를 그냥 넘기기엔 걱정이 되었다. 겸사겸사 도시락 만들기에 관한 책을 사서 보고, 인터넷 검색도 하며 도시락 만들기를 준비했다.

물론 도시락에 관한 낭설은 사실이 아니었다. 점심시간에 잠시 유치원을 방문할 일이 있어서 밥을 먹고 있는 다른 아이들의 도시락을 보았는데 대부분 평범한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평소 집에서 먹는 밥을 도시락 통에 옮긴듯한 지극히 평범한 비주얼의 도시락을.

부담은 덜었지만 가능하면 예쁜 도시락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낯선 타국에서 홀로 외국인으로 지낼 아이가 예쁜 도시락을 먹으며 즐거웠으면 싶은 마음도 있었고, 단순히 예쁜 도시락을 만드는 그 자체가 하고 싶었다.

도시락을 만들며 깨달았다. 나는 이 일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요한 아침 적막 속에 아무 말도 않고 혼자 나만의 리듬으로 도시락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채소를 다지고, 계란을 말고, 주먹밥을 뭉치고, 볶음밥을 볶고, 떡볶이를 만들고, 파스타를 삶고, 식빵을 돌돌 말아 샌드위치를 만들고, 과일을 자르고.. 아무 말도 않은 채 그날그날 마음이 끌리는 대로 이것저것 만들고 때로는 캐릭터(도라에몽, 호빵맨 등) 도시락도 만들고 다양한 픽을 꽂아 예쁘게 마무리하다 보면 평온했다. 도시락 준비는 매일이 아니라 주 2회여서 크게 부담도 없었다. 그렇게 만든 도시락을 들려 보내고, 돌아오는 길 바로 달리러 나가 집 주변 이곳저곳을 달렸다. 빠를 필요도, 멀리 갈 필요도, 무리할 필요도 없었다.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감당할 수 있는 거리를 달리고 오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시작하는 하루는 제법 좋았다. 끌려다니는 하루가 아니고, 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느낌이 들어 거기서 오는 열정이 생겼다.

시한부의 고요함을 사랑한다. 지속적인 고요함은 외롭고 때로는 무료하고 적막하겠지만, 끝이 정해져 있는 고요함 속에 나와 시간을 보내고 내면의 대화가 쌓이다 보면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비로소 나답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일상은 단순하지만 그 시한부의 고요함이 적절히 스며있다. 언제까지 지금의 일상이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지금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배우며 그렇게 나의 속도로 성장해가려 한다.

KakaoTalk_20230307_104536876.jpg 나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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