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이 가져다준 선물

신칸센(新幹線) 도시락_닥터옐로(Dr.Yellow)

by 수진

처음 도시락 만들기를 준비하며 먼저 한일은 서점에 간 일이다. 어린이 도시락에 관한 책을 한 권 사서, 차근차근 살펴보며 시도해 볼 만한 페이지들은 접어서 표시해 두었다. 메뉴들이 지나치게 일본 스러웠으므로 디자인을 참고해 아이 입맛에 맞는 메뉴로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다음으로 한일은 인터넷 검색이었다. 인터넷에 있는 각양각색의 도시락 완성샷을 보며 내식대로 해석해 만드는 방법을 유추해 보았고, 그중에 눈을 뗄 수 없게 아름다운 도시락을 만드는 분을 알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며 일본에 지내는 그분의 도시락은 나의 시각에서는 전문가 급이었다. 각종 캐릭터와 어린이날이나 봄소풍 등의 특별한 날은 콘셉트에 걸맞은 센스 있는 도시락과 그분 나름은 평범하다고 만들어놓은 일상의 도시락까지.. 각종 도시락에 감탄이 멈추지 않았지만 따라 하기에 엄두가 안나 그중 해볼 만하다 싶은 것을 몇 개 저장해 두었다가 시도해 보았고 그중 하나가 일본 고속열차 신칸센(新幹線) 시리즈 중 닥터 옐로(Dr.Yellow) 버전 도시락이었다.

Type923-T4.jpeg 실제 닥터옐로. 사진 출처는 위키백과

신칸센 도시락은 모든 탈것을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안성맞춤이었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인풋(input) 대비 아웃풋(output)이 만족스러웠다. 기차 나들이를 떠나고 싶은 오늘 오랜만에 신칸센 도시락을 다시 한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일어나니 전날 밤 예약해 둔 대로 취사가 진행되고 있어, 커피 한잔을 내리고 곧 도시락 준비에 착수했다. 우선적으로 할 일은 김을 오리는 일이다. 삼각김밥용 김을 오려서 열차의 창문과 무늬를 만들어 두고 오늘의 계절과일인 수박도 직경 1cm 정도의 큐브 모양으로 잘라두었다.

KakaoTalk_Photo_2023-05-23-10-40-17-6.jpeg 기차무늬와 과일 준비

다음은 계란지단 만들기. 신칸센 종류는 무척 많지만 그중에 노란색을 띤 닥터 옐로는 계란으로 표현하기 적격이다. 모양은 마지막에 세공하도록 하고 일단 계란을 풀어서 넓고 얇게 부쳐두었다.

KakaoTalk_Photo_2023-05-23-10-40-17-4.jpeg 기차의 몸통이 되어줄 계란지단

다음은 메인요리 볶음밥 만들기. 계란밑에 흰밥을 넣고 반찬을 따로 담는 방안도 있지만 간편하게 볶음밥을 만들기로 했다. 전날 미리 다져둔 채소에 부드러운 두부도 넣고, 간장 참기름으로 간을 해 볶음밥을 만들었다. (맛을 위해 볶음밥용 후리카케도 조금 뿌려서 볶았다.)

KakaoTalk_Photo_2023-05-23-10-40-17-3.jpeg 채소와 두부를 넣은 볶음밥

마지막으로 사이드 메뉴로는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식빵 말이로 결정했다. 이렇게 하면 탄수화물이 많지 않을까 조금 망설여졌지만 도시락 완성이 중요하니 일단 만들고, 부족하거나 넘치는 영양소는 다음 식단에서 균형을 맞추기로 한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식빵 테두리를 잘라낸 뒤, 숟가락으로 꾹꾹 눌러 납작하게 만들고 맛의 다양성을 위해 사과잼과 딸기잼을 반반 도포한 후 아이의 입맛을 고려해 치즈를 소량 올리고 돌돌 말아준 뒤 픽으로 고정시키고 잘라준다.

KakaoTalk_Photo_2023-05-23-10-40-17-5.jpeg 사과잼과 딸기잼을 식빵 말이

이제 마지막 모양내기 단계이다. 도시락통의 경계를 칸막이로 세워두고 무너지지 않게 세 가지 메뉴(볶음밥, 식빵말이, 과일)를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담아야 마침내 다 담을 수 있다. 화룡정점 단계로 볶음밥 위에 미리 만들어둔 계란지단을 잘라 기차 모양으로 올리고 김으로 만든 창문과 무늬를 붙여주면 완성. 나름의 티 안나는 데코지만 기차는 나들이를 연상시키니 도시락픽은 꽃과 꿀벌로 꽂아주는 세심함도 얹는다.

KakaoTalk_Photo_2023-05-23-10-40-17-2.jpeg
KakaoTalk_Photo_2023-05-23-10-40-17-7.jpeg 신칸센 나들이 도시락

이렇게 오늘분의 애정을 담은 도시락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이었던 도시락 실력이 어떤 날은 꽤 만족스러울 정도로 점점 좋아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도시락 만드는 실력이 늘어갈 동안 나는 앞서 언급한 그분과 관심사와 지내는 환경이 비슷해 친구가 되었고, 브런치를 시작하고 글을 쓰게 되었다. 아이 역시 도시락을 먹으며 낯선 이국의 유치원에서 이방인으로 겉돌던 시간을 지나 언어를 익히고 친구들을 만들며 일본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다. 이것은 일정 부분 도시락의 지분도 담긴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덧. 오랜시간 고심하며 써낸 글보다 즐겁고 비교적 빠르게 쓴 요리에 관한 글이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는 글을 쓰는 내 마음이 즐거웠기 때문이었을까 ㅋ 아무튼 오늘의 글도 즐겁게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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