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만들어먹는 한식

가장 아쉬운 식재료는

by 수진

한국에서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지내며 '요리'에 대해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지냈다. 근처에 계시던 친정어머니께서 반찬을 주실 때도 있었고, 배달음식을 시킬 곳은 도처에 있었으며, 반찬가게도 있었고, 식당에서 먹고오거나 음식을 포장해오거나, 혹은 마트에서 반조리 식품을 사거나 하다 보면 요리는 남편과 이따금씩 하게 되어 특별히 '요리'라는 행위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일본에 와보니 상황이 다르다. 새삼 '요리'의 큰 존재감을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현재 일본에서 내가 있는 곳은 대도시가 아님을 감안해도 일단 배달음식의 종류가 한정적이다. 현재 이곳에서 배달 가능한 곳은 프랜차이즈 햄버거와 피자집 정도이고, 요즘 간혹 우버이트 전단지가 우편물에서 발견되긴 하지만 아직 보편적인 단계는 아니다. 외식문화를 봐도 메뉴 구성이 스시, 우동, 돈가스, 라멘, 규동, 인도식 카레, 패밀리 레스토랑, 중국요리 등 별식으로 즐기기 적당한 메뉴이지 매일 먹기에는 다소 물리는 음식이고, 그나마 기댈 곳인 도시락과 편의점도 사정은 여의치 않다. 도시락은 대부분 각종 튀김들과 달고 짠 음식들로 구성되어 있고, 아무리 편의점 음식이 건강해졌다고는 하지만 매일 먹기에 좋은 식단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장을 봐서 요리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 되었고, 요리는 이제 일상의 큰 부분이 되었다.

일본 생활 5달 차. 나는 아직 한국음식에 대한 큰 향수는 없고 나 한 명의 식사라면 적당히 해결할 수 있으나, 한창 잘 먹여야 할 성장기의 아이를 키우고 있고, 2년 전 일본에 건너와 한국음식에 대한 갈증이 심한 남편과 함께 지내고 있다. 코로나로 국경이 막혀 한국과 오갈 수 없었던 우리 가족은 지난 2년 때아닌 이산가족이 되었다. 혼자 일본에서 일본음식과 한국 라면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던 남편은 한식에 대한 그리움이 극에 달해 있었다. 얼마 전에는 한국식 짜장면과 탕수육을 파는 한 프랜차이즈 지점이 후쿠오카에 있다는 소식에 편도 두 시간 가까이 되는 운전도 불사할 정도로 남편은 한식에 굶주려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집에서 만드는 요리는 당연하지만 대부분 한식이다. 다행히 일본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일부 식재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식재료는 비슷해서 조리법만 알면 비교적 쉽게 한국음식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요즘은 한류 붐으로 변두리 지역 마트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한국 라면과 고추장, 비비 X만두 및 냉동식품, 한국 김 등을 구하는 것이 비교적 쉽다. 하다못해 떡볶이, 라볶이도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식재료들이 있는데 나에게 가장 아쉬운 식재료는 고춧가루와 청양고추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매운 음식이 보편적이지 않으므로 한국식 고춧가루는 일반 마트에서는 구할 수 없고 시내에 있는 큰 한인마트에서만 구할 수 있으므로 만났을 때 사두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아껴 써야 한다. 청양고추는 고춧가루보다 더 구하기 어려운 품목이다. 나의 경우 기회가 될 때 구비해서 냉동실에 쟁여두고 가끔 필요할 때 꺼내 쓴다. 하지만 아무리 식재료를 쉽게 구한다 해도 가끔의 외식을 제외하고 매일 집밥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기에, 일단 '집밥'에 대한 기준치를 확 낮추기로 했다. 흔히 집밥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즉 밥과 국 김치와 여러 가지 반찬으로 구성된 식단은 고국에 가거나 특별한 날 먹기로 하고 일단은 집에서 만든 밥은 모두 집밥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직접 지은 밥에 계란 프라이와 조미김만 곁 들여도 집밥이고, 혹은 햄을 구워 먹을지라도 모두 집밥이라는 정의를 내리자 다소 요리가 편해졌다. 다음은 여기서 만들어본 요리들이다.

어묵과 감자 양파 계란을 넣고 조렸다. 양념은 간장과 미림 설탕 참기름.
가지전. 가지 철이라 가지 요리가 많다. 가지, 다진 소고기, 양파를 넣었다.
소고기 간장 가지볶음
와규를 넣고 끓인 뭇국. 대파도 넣어서 시원하다.
대게 찜
매콤 가지 볶음
가지 밥. 닭고기를 넣었더니 담백하다.
기적같이 동네 마트에서 깻잎을 발견한 날 전도 부치고 찌개도 끓였다.
아이가 좋아하는 일본식 바몬드 카레.
마트에서 우연히 꽈리고추를 발견해 기뻤다.

이렇게 나의 요리는 대부분 30분 이내로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요리 하나를 만들고 김을 곁들이거나, 밥을 지을 때 계란을 함께 쪄내서 함께 먹는 정도로 소박하다. 그럼에도 들인시간대비 결과는 꽤 만족스럽다.

가끔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깨끗이 엎어져 있는 그릇들을 보면 삶의 진지한 무게가 느껴질 때가 있다. 무언가를 온전히 직접 내 손으로 해결해야 하는데서 오는 그 무게감이 나쁘지 않다. 삶을 유지하는 어느 한 부분을 더 세게 끌어안으며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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