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진 Jun 27. 2023

'나'를 넘어선 '나'의 삶

깊고 깊은 지혜를 갖기를

 sns계정을 하나 가지고 있다. 대부분 일상의 소소함으로 채워지는 나의 개인 sns에 이따금 일본에서 겪는 일들과 새로 접하는 문화에 관한 글을 곁들이며 무척 조심스러워지는 나를 발견했다. 딱히 부정적 의견을 쓰지 않지만, 그럼에도 행여 나의 개인 sns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 주관적 의견이 써질까 봐 나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 이면의 생각은 이러했다. 아이 유치원 sns계정을 팔로우하는 나의 sns에 유치원 관계자나 학부모 등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들어올 수 있고, 그 가운데 한류 붐 등으로 행여 한국말을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그 경우가 아니라도 인터넷 번역기가 잘 되어 있으니 원하면 글을 읽어 볼 수가 있다는 것에서 기인한 생각이었다. 나는 일본에 대한 부정적 생각은 없지만 자라온 문화가 다름에서 오는 나도 모르게 드러날 편견이나, 민감할 소지가 내포된 개인적 의견 혹은 사진 등을 노출하고 싶지 않아서 평소보다 사진을 올리는 일이나 글을 쓰는 일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나의 개인 공간인 sns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이 의도치 않게 아이의 주변사람들에게 이질감을 유발해 아이에게 위해가 될 것을 경계하고 싶었다. 

 '지혜(智慧)'가 지닌 가치를 사랑한다. 그것이 있다면 살아가는 일이 좀 더 수월할 것 같아서, 사는 일이 좀 덜 부끄러울 것 같아서, 후회할 일이 적을 것 같아서 그것을 갖기를 자주 소망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이 되며 내게 지혜의 의미는 좀 더 확장되었다. 그간 원했던 지혜가 개인의 이익과 나의 삶을 위한 좁은 의미의 지혜였다면, 이제는 '나'를 넘어선 내가 되기 위해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은 매 순간이다 보니 나는 매 순간 자주 '나'를 넘어선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할 필요를 느낀다. 거의 매일같이 작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나 자신을. 

 나는 나도 모르게 표현했을지 모르는 누군가에 대한 부정적 말투와 표정이 아이에게 스며 그것이 아이의 언어가 될까 두렵다. 가끔 아이와 유치원의 일상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 타인의 모습을 전해 듣곤 하는데 그럴 때 아이에게 건네는 한마디가 신중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의 편이 되어 내뱉고 싶은 본심 '걔는 왜 그러니'를 속으로 삼키며, 중립을 지키며 현명한 말과 행동지침을 건네기 위해 고심했다. 나 역시 엄마의 말들이 마음에 심겨 무의식 중에 언어와 행동으로 드러남을 겪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조언을 건네고 싶었다. 

 이 지역의 이방인(異邦人)으로 머물며 한 사람의 보호자 역할까지 하는 삶은 가끔 내게 매뉴얼 없는 질문들을 던져준다. 식(食) 문화의 경우도 다름에서 빚어진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현재 아이 유치원은 주 2회 도시락, 3회 급식 체제인데, 원의 방침은 음식을 하나도 남김없이 먹도록 하는 것이다. 편식은 건강에 좋지 않고 만든 이의 노고와 환경을 생각하면 방침 자체가 옳다는 것은 인정하나,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괴로워하면서까지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찬성하지 않고 그 음식이 아니어도 필요한 영양소는 다른 곳에서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이 나 개인의 생각이다. 사실 유치원에서 제공하는 식단표를 보면 아이 입장에서는 쉽게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 눈에 띈다. 오이 미역 절임, 매실 후리카케 주먹밥, 브로콜리 요리, 오크라 튀김, 우엉요리, 열빙어치즈가스 등등.. 입에 맞는 요리도 있지만 새콤하거나 달달한 간장으로 간이 되어있을 낯선 요리들을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골고루 먹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먹으려 노력하라고 조언을 건넸으나, 아이는 등원을 괴로워하며 울먹 일정도로 점점 스트레스를 받아 고민 끝에 건의드렸다. 채소는 몸에 좋고, 골고루 먹는 것은 중요하나로 시작하는 문장을 굉장히 노력하겠지만 아~주 이따금 다 먹을 수 없는 날도 이해해 주시라는 결론으로 완곡하게 말씀드리며 나는 이래도 되는 것인지 내 판단에 확신이 없었다. 

 문화의 다름에서 빚어지는 고민도 있었다. 이곳에는 '오미야게((お土産、おみやげ)' 문화가 있는데 여행이나 출장을 다녀오면 지인들과 방문한 지역의 토산품을 선물로 주고받는 문화이다. 이따금 아이가 유치원을 결석하고 여행을 다녀오면 선생님들께 오미야게를 건네야 하는지 그렇지 않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200명 가까이 되는 원생이 있는 유치원에서 혼자만 선생님께 선물을 건네는 것이 튀는 것을 경계하는 이곳에서 과연 괜찮을지에 대한 마음과, 며칠간 여행을 다녀와서 유치원을 결석하고 오미야게조차 준비하지 않고 등원하는 일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이 문제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일상의 크고 작은 모든 고민들을 글로 쓸 수 없지만 때로는 보편적이고 때로는 고유한 고민들이 순간순간 나를 찾아왔다. 고민과 대면했던 시간들은 나를 괴롭게 하기도 했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만들기도 했고, 긴 시간을 들여 답을 찾게 만들기도 하며 나를 변화시켰다. 그것을 겪기 이전과 이후의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나는 그 시간을 통해 아주 조금은 '나'를 넘어선 내가 되었다. 

 앞으로도 많은 고민이 찾아오고 모든 것의 답을 알 수 없는 나는 다시 헤매겠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내가 그 시간을 위해 내면화하고 싶은 것은 '지혜'와 '따뜻함'이라는 것을. 현명함을 담은 진심이라면 결국에는 통하기 마련일 테니. 지혜는 자주 찾아오는 고민들에게 좀 더 현명한 답을 할 수 있도록 내게 지침을 주겠지. 아마 아이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나에게 알려주는 것은 찰나의 순간들 뿐이고, 아이 역시 혼자 무수히 많은 고민들과 혼란을 겪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을 알고 있다. 그 시간들을 부디 잘 넘기기를. 그 시간을 통해 배움을 얻기를. 현명해 지기를. 그 시간을 지나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영롱하고 독특한 본인의 고유한 빛을 가진 아이가 되기를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추억의 포테토 사라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